문화센터 가는 '극성엄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들이 어린 아이와 문화센터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

등록 2018.01.26 15:05수정 2018.01.2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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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사를 보게 됐다. 문화센터 수업의 44%가 영유아 대상인데 사교육 규제의 사각지대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서는 '자녀를 종합인재로 육성하기 위한 필수 코스', '생후 1년이 안 된 아기도 수강 가능', '아이가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방문하는 부모들도 있다'며 문화센터에 가는 부모들을 극성 맞은 부모로 몰아가는 느낌이었다.


2년 전 일이다. 첫째가 14개월이 됐을 때 누군가 우리 아이에 대해 질문했다는 소리를 건너 들었다. "그 집 아이 요즘 공부시켜?"라는 질문이었다는데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아직 걸음마도 서툰 아이에게 공부라니.

문화센터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나서 "그 집 아이 요즘 공부시켜?"라는 질문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갔다. 그 당시 질문을 한 사람도 어린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에 다녔던 나를 조기교육을 시키는 '극성 엄마'로 생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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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오감놀이 11개월 된 둘째 아이가 문화센터에서 꿀벌 옷을 입고 꽃에 있는 꿀(탁구공)을 따고 있다. ⓒ 구진영


최근 '요즘 아기들은 문화센터에 일찍 나가서 비싼 돈을 주고 오감수업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문화센터에 대한 비판은 '비싸다', '어린 나이에 참여한다', '조기교육이다'라는 세 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다.

우선 '비싸다'는 오해는 한 번에 한 학기 수업료를 지불해서 그런 것 같다. 세 달치를 한 번에 내서 그렇지 문화센터는 한 회당 수업료가 9천 원가량이다. 비싸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두 번째, 엄마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가는 이유는 아이와 놀아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도배된 도시에서 아이와 놀아줄 것들이 점점 부족하다. 걷지도 못하는 아이와 놀이터에 가거나 키즈카페에 가도 막상 탈 것이 없다. 결국엔 개월 수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는 문화센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조기 교육을 시키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막상 들여다보면 오해였음을 알 수 있다. 아이가 받는 수업은 학습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센터 수업은 엄청 많은 수수깡을 만져본다거나,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흔들어 본다거나, 벽에 붙어 있는 공들을 떼본다거나 하는 오감놀이로 구성돼 있다. 아이의 학습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에 문화센터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놀 수 있어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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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오감놀이 아이가 큰 콩들을 만져보고 있다. ⓒ 구진영


첫째를 낳았을 때의 일이다. 조리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니 하루 종일 자고, 먹고, 싸고를 반복하며 누워 있는 아이와 할 것이 없었다. 할 일이 없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런 아이를 보다 보면 어느 날은 갑자기 우울해져서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기도 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아이하고 신나게 놀아보자 하는 생각에 '30일 된 아이와 뭘 하고 놀아주면 되나요?'하며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이미 많은 엄마들이 똑같은 질문을 해 놨다.

누워있는 아이와 마땅히 할 게 없으니 스트레칭을 시켜주거나 모빌을 보여주거나 초점책을 보여주라는 조언이 많았다. 조리원에서 낮잠을 자느라 초점책을 안 만든 걸 후회하며 인터넷으로 구입한 뒤 보여줬다. 둘째를 낳고 나서도 하루 종일 누워있는 아이에게 놀아줄 것이 마땅히 없어서 초점책을 보여주며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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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책 아이가 초점책을 보고있다. ⓒ 구진영


누워서 초점책이나 볼까 말까 했던 아이가 뒤집기 시작하고 엄마 무릎에 앉을 수 있는 6개월 정도가 되면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아이가 자라면서 하는 행동은 단순한 동작 몇 개 밖에 없고 그런 아이를 하루 종일 보고 있으면 반복되는 일상에 우울감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육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외출할 거리를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에 가는 것이다.

아이와 알록달록한 장난감을 만지며 신나게 놀고 난 뒤,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조리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마냥 행복했다. 문화센터가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기에 간 김에 장도 보며 하루를 때웠다.

시간이 빨리 흘러가 아이가 빨리 크는 게 소원인 독박육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문화센터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나갔다오면 하루가 빨리 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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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 오감놀이 아이가 알록달록한 수수깡을 만져보고 있다. ⓒ 구진영


생각해보면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엔 엄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를 보며 '아기 예쁘네' 이외에 큰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야 요즘 엄마들이 아이를 키울 때 뭐가 힘든지, 전업맘들은 어떻게 힘들고, 워킹맘들은 어떻게 힘든지 알게 됐다. 

대가족제가 해체된 후, 임신․출산․육아의 책임이 '엄마' 한 사람에게 몰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회 시스템은 따라 와주지 못하니 홀로 아이를 보는 엄마들은 매일 비명을 지르며 살고 있다.

엄마들이 홀로 아이를 볼 때 어떤 것이 힘든지, 어떤 것을 도와줘야 하는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할 때 '문화센터는 극성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가는 곳'이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문화센터 앞을 지나가는 엄마들을 본다면 '조기교육을 하는 극성엄마'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려고 나왔구나 하며 육아에 지친 엄마들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문화센터 #오감놀이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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