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후회하고, 먹고 후회하는 과식의 이유

소비주의로 과식을 이해하는 <과식의 심리학>

등록 2018.01.23 08:35수정 2018.01.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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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을 벗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건만, 벌써 세 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는 친구가 있다.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하든 말든, 꿋꿋하게 제 삶의 방식을 고수하던 그녀. 이번 이사도 역시, 집이 좁아졌기 때문이란다. 물론 집이 제 몸을 줄였을 리는 없다. 짐이 무럭무럭 늘어난 것이다.

그녀의 첫 신혼집은 작지 않았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그녀가 최우선 조건으로 삼은 것은 교통의 편리성도, 건물의 연식이나 깨끗함도 아닌, 오직 최대한의 넓이였다. 맞벌이로 집에서 식사할 틈도 없던 때, 처음부터 대형 냉장고 2대가 꼭 필요했을까. 집은 이내 좁아졌고, 그 다음 집도 마찬가지였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부채는 늘어가고, 출퇴근에 4시간 가까이 소모하게 된 남편의 불평과 그로 인한 다툼이 잦아졌다고 하니, 오지랖 넓은 나는 이 부부를 걱정하고 만다. 부디 새로운 집은 여백이 오래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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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식의 심리학> 책표지 ⓒ 루아크


<과식의 심리학>이라는 제목만 보면, 누군가는 섭식을 절제하고 건강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과식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심리학, 철학, 경제학, 신경내분비학, 역사학, 노동문제, 정부 규제 등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끝에, 결국 사회가 조장하고 있는 소비주의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소비에는 고유한 욕망, 역사, 심리기제가 존재하겠지만, 그 모든 유형의 소비를 자극하고 조절하는 심리기제는 많은 부분 같다는 것이 이 책의 토대를 이룬다.

쇼핑을 하고 돈을 쓰고 먹는 일 모두 우리 문화를 집어삼킨 미친 소비의 일부다.


책에 소개되는 앨리슨의 사례는 남일 같지 않다. 끝없는 소비로 삶이 공허해지고,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소비에 더욱 매진하는 현실. 신용카드를 즐겨 사용하고, 집안을 정리할 때는 수납용품을 사는 것도 모자라 때로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도 하며, 내다버린 물건 대신 옷장을 채울 옷과 신발을 또 구입한다. 취미생활은 시작도 하기 전에 고가의 장비부터 구입한다.


당연한 귀결일까. 체중을 줄이기로 결심한 뒤에는 다이어트 식품과 제품,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돈을 쓴다. 녹즙기, 다이어트 음료, 운동화와 운동복, 피트니스 클럽 회원권 등등. 결국 몸무게를 줄이기로 마음먹은 뒤 더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식품산업이 과체중과 비만의 최대 수혜자라는 말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과식을 조장해 이윤을 창출하고, 사람들은 체중감량 상품의 잠재적 소비자가 되는 끊임없는 고리.

문화이론가 이아니스 가브리엘과 팀 랭이 만든 '소비주의를 이해하는 다섯 가지 틀'이 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도덕 원칙으로서 소비주의 : 선진국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택과 구매는 개인이 자유와 행복 그리고 힘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2.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 현대 국가에 팽배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소비자가 화려하고 멋진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할 자유를 찬양하며, 현대 국가는 초국적 기업을 비호한다.
3.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 소비주의가 자유무역의 동인으로 찬양되며 새로운 소비자를 키우는 일이 경제 발전의 열쇠로 여겨진다.
4. 사회 이데올로기로서 소비주의 : 이는 계급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기 때문에, 물질적 상품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 지위와 위신에 영향을 미친다.
5. 사회 운동으로서 소비주의 : 소비자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통해 가치와 품질을 보호하는 운동 형태로 나타난다.


마지막에 언급된 사회 운동으로서의 소비주의가 가장 성격을 달리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너무 무력함을 지적한다. 여타의 소비주의가 이것을 억압하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활개 치는 소비주의를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국가는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메시지를 퍼뜨리고, 생산자, 판매자, 광고자는 대중의 건강과 복지보다 이윤을 추구하며, 소비자들은 소비의 부정적 영향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주의에 더 깊숙이 몸을 담그게 된다.

현대인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한 앨리슨의 사례를 다시 들어보자.

그녀에게 소비주의적 삶이란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으로 가득한 삶이다. 사치스런 소비가 없는 삶은 그녀에게는 공허한 삶이므로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근본적으로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돈을 쓰거나 소비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곧 실존적 공허를 뜻했다.

저자는 과소비와 과식이 결국 같은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소비주의에 기대 심리적 욕구를 채우려 들면 과소비와 과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을 낳는다. 지나치게 많아진 상품의 다양성, 무분별한 쇼핑, 소비주의는 심리적 불만족을 낳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지나치게 많은 소유물 혹은 소모하지 못한 칼로리가 되어 또 다른 소비를 낳는다는 것.

과식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나 심리적 요인이 아닌 소비주의로서 설명하는 저자의 논리는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소비주의 문화는 물론,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책이 배경으로 하는 곳은 미국이지만, 내가 아는 한국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과식의 모든 책임을 정책이나 식품산업에 돌리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분명히 한다. 우리를 피해자로만 본다면 스스로를 비인간화 하는 것이며, 우리의 행위자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변화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변화는 이 팽배한 소비주의 문화를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스스로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소비자'로 인식하기 쉬운 세상 아니던가. 저자의 말마따나 살아가는 것은 곧 소비하는 것이겠지만, 나의 존재가치를 오직 소비로서만 증명할 수 있다면 너무 서글퍼진다.

식품 산업의 영리함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오니, 보다 나은 섭식과 건강을 추구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제로 칼로리의 허무맹랑함, 집에서 만든 밥의 가치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또한, 행복한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허망한 소비주의를 좇느라 허덕이지 않는다면, 행복만큼은 맥시멈을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과식의 심리학 - 현대인은 왜 과식과 씨름하는가

키마 카길 지음, 강경이 옮김,
루아크, 2016


#과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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