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생활용품 기업이 만든 올림픽 광고의 '비밀'

모든 편견을 뛰어넘는 공간, 평창올림픽이 성소수자에게 '환대의 터'가 되길

등록 2018.01.20 20:09수정 2018.01.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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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G-30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 권우성


사람들이 손쉽게 가지는 편견 중 하나는 '게이들은 스포츠를 싫어한다'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성애자들 중에서도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개인적인 차이에 불과하다. 가령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강습에 빠지지 않고 나갈 정도로 수영을 좋아한다. 적막 속에서 온 마음을 집중해 물살을 헤치고 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수영뿐이랴. 자주 하지 않을 뿐 클라이밍이나 장거리 달리기도 내가 사랑하는 운동 중 하나다. 나의 게이 친구 한 명은 퇴근 후에 매일 같이 도장을 찾을 정도로 유도를 좋아한다. 사실 인터넷 게이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신입 구성원을 찾는 다양한 운동 모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손쉽게 남성 동성애자는 스포츠와 거리가 먼 존재라고 생각할까.

혹, 게이들에 대한 전형화된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은 흔히 남성 동성애자가 '여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여성성' 속에 땀을 흘리며 몸을 거칠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 따윈 포함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성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이중의 편견이 만들어 낸 고정관념인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스포츠를 '남자다운 것'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운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남성성의 대척점에 놓인 존재로 여겨지는 게이들에 대해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다. 그래서 외국의 경우 스포츠 스타들 중에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사람이 꽤 많다. 구글에 검색하면 리스트까지 있을 정도다. 가령 2013년 미식 축구 스타 크리스 쿨리버는 인터뷰에서 '우리 팀에 게이는 아무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이야기해 논란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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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들이 살아남기에 특별히 더 가혹한 분야로 남아 있었다. ⓒ pixabay


성소수자에게 엄혹한 스포츠 분야

이런 현실 때문일까. 스포츠계는 오랜 시간 성소수자들이 살아남기에 특별히 더 가혹한 분야로 남아 있었다. 가령 2017년 초 영국 하원의 문화, 미디어와 스포츠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스포츠계가 성소수자 혐오에 대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으며 특히 축구계의 태도는 다른 사회 분야의 것과 매우 엇나가 있음을 지적했다.

여기에 위원회의 의장은 보고서를 발표하며 커밍아웃을 원하는 선수들이 있음을 파악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에 겁을 먹고 있다고도 전했다. 실제로 작년 프라이하우스 관련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캐나다의 성소수자 활동가 케프 세넷은 인터뷰를 통해 '해외에서도 성소수자임을 밝히면 후원을 받을 수 없거나 팀에서 방출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덕분인지, 성소수자 운동의 약진과 더불어 스포츠계에도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 선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성소수자 선수들과 자원봉사자 그리고 관중들이 모여 교류하는 만남의 장도 생겼다. 바로 '프라이드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공간은 2010년 벤쿠버 동계 올림픽 때 성소수자 선수와 스텝들을 환영하고 지역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비롯해 다양한 국제 스포츠 경기 행사에서 프라이드하우스는 열렸다. 하지만 2014년 소치 올림픽 때는 러시아의 반동성애법 시행으로 프라이드하우스의 개최는 무산되었고 이에 많은 국가의 정상들이 항의의 의미로 개막식에 불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평창에서 프라이드하우스를 만날 수 있을까?

곧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 여러모로 이목이 쏠리는 행사이지만 바로 전 동계올림픽에서 열리지 못한 프라이드하우스가 이번엔 개최될지 관심이 높다.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프라이드하우스를 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후원이다. 프라이드하우스를 열기 위해선 공간도 임대해야 하고 운영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센터의 양은오 대표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도움을 받는 게 쉽지가 않다고 한다. 이해는 한다. 성소수자가 방송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풍파를 맞은 EBS만 봐도 겁이 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업과 단체들의 프라이드하우스에 대한 후원이 반드시 '옳지만 결국 손해 보는 일'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거스 켄워시는 커밍아웃 이후에 스폰서들이 등을 돌리고 선수 생활에 타격을 입는 것을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대기업들이 그를 후원하기 위해 접촉했다.

마케팅과 브랜딩 전문가이자 노스웨스턴 대학의 교수인 팀 콜킨스는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다양성'은 스폰서들이 추구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데 켄워시는 커밍아웃을 통해 이를 대변할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훌륭한 선수이자 이미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충족되는 조건이 너무도 많다. 그러니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양성을 옹호하는 마케팅이 이익이 되는 이유

거스 켄워시의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스포츠를 주제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마케팅을 펼쳐왔다. 일례로 2015년, 기네스는 럭비 선수 가레스 토마스가 커밍아웃한 사연을 광고에 담으며 그의 주변에 항상 팀원들이 있었으며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P&G는 평창 올림픽을 겨냥한 광고의 태그 라인을 '사랑은 편견을 뛰어넘는다(#LoveOverBias)'로 잡았는데, 이와 관련한 성명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남겼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세상을 지향합니다. 당신이 누구이건, 어디서 왔건, 누구를 사랑하건, 어떤 신을 믿든지 간에요."

해당 광고에는 계급, 성별, 종교, 성향으로 인해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들을 지지하고 용기를 북돋는다. P&G는 성명에서 또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이 그들에게서 다름을 볼 때 어머니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아 우리는 아이들이 세상의 편견을 뛰어 넘도록 도운 어머니들의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가 그런 어머니들의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보자."

이들의 주된 소비층과 시장에서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매우 탁월한 마케팅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감동적인 광고와 그것이 전파하고자 하는 가치를 듣고 난 후에 과연 P&G를 단지 물건을 파는 회사로만 여길 수 있을까.

이런 좋은 사례가 계속해서 외국에서만 나타날 필요는 없다. 어쩌면 프라이드하우스를 향한 후원과 입장 발표가 우리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프라이드하우스의 성공적인 개최와 좋은 선례가 남길 기원한다.
#성소수자 #스포츠 #평창올림픽 #다양성 #프라이드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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