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 또 지연... 기차마저 놓칠 뻔했다

[중국 윈난 여행기 1] 인천에서 난징, 쿤밍을 거쳐 리장으로 가는 길

등록 2018.01.22 12:59수정 2018.01.22 12:59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월 6일부터 17일까지 12일간 중국 윈난성 일대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워낙 변수가 많았던 여행이었던 탓에, 현지의 풍경보다는 겪었던 일화 위주로 몇 회에 걸쳐 가족여행기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 기자말

여행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고들 한다. 색다른 문물을 접하며 견문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인 법,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두 발로 걸으며 직접 보고 듣는 것이 더 낫다는 건 불문가지다.


그런데, 난 이 말을 달리 해석한다. 여행은 낯선 환경에 적응해가는 일일진대, 그 순간순간의 경험이 곧 배움이라고 본다. 여행은 돌발 변수의 연속이다.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여행 전체를 그르치는 대형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한 변수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고, 또 다른 선택을 떠올리며 후회도 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여행 첫날부터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대개 교통편이 지연되며 가슴을 쫄깃하게 만든 일들이다. 섣부른 단정일 수도,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저렴한 항공편을 이용할 때마다 겪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장의 연속이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출발이 늦어졌다. 10분이 20분이 되고, 20분이 30분이 되더니 어느덧 한 시간 가까이 기내의 비좁은 의자에 감금된 채 하염없이 시계만 쳐다보았다.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승객들 대부분이 느긋한 중국인들이라서 그런지 큰 동요는 없었다. 지연 출발은 늘 그래왔듯 기내 사과 방송 몇 차례로 퉁쳤다.

출발이 늦어지면 그만큼 주어진 경유 시간이 짧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두 시간이 넘는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했었는데, 순식간에 과연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더욱이 경유지였던 난징국제공항은 국제선과 국내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짐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온 뒤 다시 수속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늘에서라도 속도를 내주면 좋으련만, 지연된 시간과 정비례해 도착 시간이 뒤로 밀렸다. 급기야 승무원을 찾아가 빠듯한 일정을 설명하며 조언을 구했다. 다급해하는 승객이 나뿐만 아니었던 듯 몇몇 불안한 표정의 승객들이 좁은 통로에서 승무원을 에워쌌다. 그저 국내선 탑승 수속을 할 때 배려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고작이었고, 하다못해 낯선 공항의 동선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다.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모여 간단한 협의를 하더니, 내놓은 결론은 허무한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게 해주겠다는 것. 그런 배려를 받고 얼마나 시간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한 승무원은 난징국제공항은 이용객이 적어 탑승 수속에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라며 우리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소한 배려조차 함께 탄 중국인 승객들로부터 받긴 힘들었다. 비행기가 멈추기도 전에 안전띠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승무원은 큰 소리로 앉으라고 외쳤고, 일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태연히 적재함을 열기도 했다. 비행기가 멈추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모든 승객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고 통로는 일찌감치 막혀버렸다.

승무원들이 제시한 대책은 하나마나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제 공항 내에서 뛰는 수밖에 없었다. 난징국제공항이 한산하리라는 승무원의 예상이 부디 들어맞길 기도하는 것 외에는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도 국제선과 국내선이 같은 건물이어서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탑승 수속할 창구를 찾아 부리나케 뛰었다. 언감생심, 화장실은 들를 수조차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천우신조라 해야 하나. 다른 항공편은 수속 창구마다 긴 줄이 늘어섰는데, 우리 창구에는 탑승객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적었다. 하긴 시계를 보니 이미 수속을 끝내고 탑승구에 대기하고 있을 시간이니, 한산했다기보다 내가 늦은 것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수속하는 것보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시간이 훨씬 더 걸렸을 정도다.

참고로, 중국은 국내선이고 국제선이고 보안검색의 강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조차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꼼꼼하게 체크를 한다기보다 비효율적이며 굼뜨다는 느낌이다. 배터리와 외장 하드, 샴푸와 치약도 구별 못하는지 수시로 배낭을 헤집었다. 더욱이 같은 공항 내인데도 입국 수속 때 뒤집은 배낭을 국내선 탑승 수속 때 똑같이 다시 확인 받아야 하는 건 번거롭다기보다 화가 치미는 일이었다. 환승 시스템만 있었다면 아무 필요 없는 절차였다.

탑승권에 적힌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간신히 탑승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도 탑승구가 열리지 않았다. 역시나 지연되고 있었다. 괜히 마음 졸이며 허겁지겁 뛰었다는 어이없는 후회가 밀려왔다. 추운 겨울,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뛰었지만, 탑승구 주변에 삼삼오오 모인 중국인들은 느긋한 얼굴로 이방인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기내에서의 대기도 그대로였고, 출발할 때처럼 지연된 시간도 1시간으로 얼추 비슷했다. 전 항공편의 지연을 다음 항공편의 지연으로 해결하는 꼴이 됐다. 이제는 기차 출발 시각을 연쇄적으로 걱정해야할 처지가 됐다. 그나마 여유 시간을 네 시간 정도로 충분히 두어서 크게 우려할 만한 건 아니었지만,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쫄깃해진 가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예정보다 두 시간을 넘겨 쿤밍국제공항에 내렸다. 다행히 두 시간의 여유가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공항에서 기차역으로 가는 길은 가까우면서도 멀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언뜻 보면 지하철 노선이 십자형으로 두 개이지만, 갈아타는 곳은 여럿이다. 쿤밍 지하철에 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a

지하철역의 보안검색대 중국에선 공항은 물론, 기차역, 지하철역, 버스터미널 등 공공시설 곳곳에 보안검색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용객이 많은 시간대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 서부원


설명하면 이렇다. 수직선처럼 뻗은 1자형 노선인데도 1에서 10을 가려면 5쯤에서 갈아타야하는 식으로 노선이 구분되어 있다. 이는 도로교통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에 지하철이 뒤늦게 도입되다보니 생겨난 혼선으로 보인다. 그래선지 각 지하철 노선의 기점과 종점이 동서남북 하나같이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연결된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두 번이나 지하철을 갈아 탄 후 기차역에 닿았다. 시간적 여유는 있었지만, 국내에서 인터넷으로 좌석을 예약한 승차권을 미리 건네받아야 해서 바삐 움직였다. 받고 나면 기차역 주변의 근사한 식당에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식사를 근사하게 해볼 요량이었다. 이때의 만찬을 기다리며 두 차례의 기내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몹시 허기가 졌다.

아뿔싸. 역시나 여행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작은 사치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지하철역의 표지판을 따라 지상으로 나갔지만 그곳에 기차역은 없었다. 거듭 확인해도 지하철역의 이름은 분명 '쿤밍기차역(昆明火車站)'이었는데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이 꺼진 채 육중하고도 흉물스럽게 남아있는 옛 기차역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a

쿤밍 기차역 지하철역은 가짜다? 쿤밍 기차역을 가려면 당분간 지하철을 이용해선 곤란하다. 적어도 이 정도의 정보는 지하철역 안내판에 공지되어야 마땅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소개글은 없었다. ⓒ 서부원


그렇다면 낯선 여행자들을 위해 지하철 노선도에 꼼꼼하게 안내하는 것이 당연할 테지만, 그런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었다. 되레 어리둥절해하는 여행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상술만 가득할 뿐이었다. 불 꺼진 옛 기차역 주변에는 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신역으로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며 돈을 버는 낡은 자가용과 구닥다리 삼륜차들이 밤중인데도 줄을 서 있었다.

미터기가 없다보니 흥정은 기본, 부르는 게 값이었다. 다급해하는 표정을 들켰던지 죄다 턱없는 가격을 불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애초 시간에 쫓기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거래였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도움을 청할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당황한 빛이 역력한 같은 처지의 여행자들이 줄을 이어 두렵지는 않았다.

의도한 대로 흥정이 끝나자 그들은 누구보다 친절했다. 그들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불 꺼진 옛 기차역사는 새로 문을 연 기차역의 후문 격으로,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연결 통로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까닭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역에 내려 걸어가긴 힘들고, 택시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다. 애초 지하철보다는 공항버스를 타야했다는 거다.

천신만고 끝에 기차역에 도착하니, 기대했던 여유 시간은 처음 4시간에서 고작 20분으로 단축되어 있었다. 근사한 저녁식사는커녕 승차권을 건네받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설상가상 창구마다 늘어선 긴 줄을 보니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다짜고짜 대합실 직원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고, 그 덕분에 간신히 예약한 야간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기차에서 파는 컵라면과 주전부리로 만찬을 대신한 뒤 객실 침대에 몸을 눕히고 나니 마음 졸였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흡사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하루였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경험이라면 경험일 테니, 헛되이 보낸 시간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내일은 또 어떤 변수가 기다리고 있을까. 잠에서 깨면 리장(麗江)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a

리장역에서의 아침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새벽 리장역. 윈난성과 티베트를 잇는 차마고도의 기점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 서부원


#윈난 여행 #항공편 지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