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청 예술작품 무단 철거 사건의 문제점

[주장] 오펜하임 ‘꽃의 내부’, 도라산역 벽화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등록 2018.01.23 10:41수정 2018.01.23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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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원짜리 문화유산을 소유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이를 멋대로 없애버린다면 과연 이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처럼 편견과 무지에 의거하여 예술작품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부른다. IS가 지난 2015년 5월 시리아 도시 팔미라를 장악한 뒤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고대 유적을 파괴한 것이 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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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있던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 '꽃의 내부'. 지난 2011년 국제공모를 통해 작품을 설치한 해운대구청은 이후 훼손이 심하다는 이유로 지난 12월 철거했다. ⓒ 해운대구청


유감스럽게도 최근 한국 부산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2월 해운대구청은 해운대해수욕장에 설치돼 있던 조각가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 '꽃의 내부'를 철거하고 폐기했다. 지난 2009년 '포토 존'이 될 만한 작품 의뢰부터 2011년 설치까지 8억 원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해당 작품이 고철로 취급돼 용광로로 사라질 때까지 저작자였던 오펜하임의 유족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물론 이 작품 선정을 주재했던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와도 적절한 협의가 없었다.

더욱이 이 작품은 지난 2011년 작고한 오펜하임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는 작품 '거꾸로 세운 집'으로 잘 알려진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다. 공공의 재산인 문화유산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고 논란이 커지자 해운대구청은 지난 1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태풍으로 파손된 작품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있었고 작품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철거 때 별도로 통보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저작권법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소유권자라 하더라도 마음대로 고쳐서는 안 된다. 이 법은 저작자의 동일성유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작품을 구입한 소유자가 저작자 동의 없이 함부로 내용을 바꿀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또한 저작자가 사망한 후에도 그가 생존했더라면 가졌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10년 발생했던 도라산역 벽화 사건과 닮았다. 철거 이유도 당시 통일부와 남북출입국사무소가 내놓았던 논리와 오십보백보다. 당시 이들은 도라산역 벽과 기둥에 설치된 이반 작가의 벽화 15점을 관광객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폐기했다. 그러면서 소유권이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고 주장했다.


'도라산역 벽화 원상회복과 수호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이반 작가는 이들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15년 8월 27일 대법원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가 일부 승소한 원심을 확정하고 정부가 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철거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당시 '도라산역 벽화 원상회복과 수호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예술저작권을 보호할 법과 제도의 정비 등을 촉구했고, 일각에서는 저작권법이나 문화예술진흥법에 저작물 변경에 관한 절차를 명문화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긴 걸 보면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에 소멸된 '꽃의 내부'는 철거되기 전까지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은 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가 관리하고 있었다. 만약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이 작품을 관리했다면 이번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해운대구청 변명처럼 작품이 속수무책으로 '흉물'이 된 일도 애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공공의 재산인 예술작품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해운대구청과 한국사회가 도라산역 벽화 사건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잘못을 답습한 데서 빚어진 참사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더 나은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데니스 오펜하임 #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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