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적이기만 했는데 글 한 편이 완성되네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 글쓰기를 위한 메모 방법

등록 2018.01.23 16:01수정 2018.02.2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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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여기서 우리가 고민한 것들은 모두 실제의 글쓰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앞서 얘기했던 것들이 글쓰기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가에는 의구심이 듦이 또한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 써야만 한다. 그래서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령이 없을까, 싶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있다. 물론 이 방법들이란 것이 비법이나 비결이 아님은 잘 알 것이다. 나는 글쓰기에서 비결이나 비법이 없음을 단언한다. 다만 방법론에 대한 작은 귀동냥이 조금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그 용기가 불씨가 되어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한 글쓰기 방법을 여기에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실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어떤 글감이 주어져서 글을 써야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내용을 다룰까, 첫 문장은 어떻게 써야 할까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생각들을 하면 할수록 정리가 된다기보다는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는 게 문제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그만큼 글을 풀어나가는 방법에서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그 많아지는 생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는 방법이 있으니, 그게 바로 '메모로 글쓰기'이다.


메모라는 말에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갖가지 잡다한 생각이나 느낌,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적어놓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맞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메모는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아서 고심하고 있을 때 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메모는 언제 써먹을지는 모르지만 혹시나 해서 하는 것이라면 글쓰기를 위한 메모는 지금 당장 써먹으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다.

자,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에 대한 나의 생각'이라는 글을 써야 한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 글을 무슨 내용으로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다. 대부분의 경우 나름대로 실제든 머릿속으로든 구성하여 글을 써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메모를 활용한 방법은 구성을 하기에 앞서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메모부터 하는 방식이다.

- 지금까지 준비해온 선수들 중 억울한 탈락자가 생길 수 있음
-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함
- 단일팀 구성을 찬성하는 국민들이 있는 반면 반대하는 국민들도 있음
- 평창올림픽 개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준비하는데 차질이 있을 수 있음
- 이런저런 논란이 있더라도 일단 남북 간의 평화 분위기 조성으로 이왕 치르는 올림픽이 성공했으면 좋겠음 (...)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른다. 물론 두서가 없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계속해서 메모하라.

자, 떠오르는 생각을 어느 정도 메모했는가. 그렇다면 메모를 찬찬히 들여다보라. 어떤가. 글감을 처음 마주했을 때보다는 생각이 많이 정리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메모가 두서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메모의 순서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말한 시간 순서든, 내용의 중요도 순서든 메모를 재배치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면 당신은 이미 글의 구성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좋다. 그러면 메모를 재배치해보자. 메모를 배치할 때는 글의 주제를 정하는 것이 효율적인 배치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메모를 통해 대략적인 글 내용을 점검한 터라 주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메모를 통해 글의 주제를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로 정했다. 이 주제에 따라 메모를 재배치해본다.

-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함
- 지금까지 준비해온 선수들 중 억울한 탈락자가 생길 수 있음
- 평창올림픽 개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준비하는데 차질이 있을 수 있음
- 단일팀 구성을 찬성하는 국민들이 있는 반면 반대하는 국민들도 있음
- 이런저런 논란이 있더라도 일단 남북 간의 평화 분위기 조성으로 이왕 치르는 올림픽이 성공했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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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위한 메모 방법(자료사진) ⓒ unsplash


나는 이렇게 재배치했지만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재배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재배치를 하고 나면 보다 자세한 생각(내용)들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그러면 큰 주제의 메모 아래 세부 메모를 하면 된다. 이렇게 말이다.

-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함
‧ 스포츠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단일팀 논의가 이루어짐
‧ 약간의 이견이 있음에도 남북이 쉽게 합의에 이르렀음
‧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남북의 생각보다 더 과감한 결정이 이루어졌음

- 지금까지 준비해온 선수들 중 억울한 탈락자가 생길 수 있음
‧ 남한 선수들은 오직 올림픽만을 위해 준비했는데, 북한 선수들을 참가시키려면 남한 선수들 중 일부는 엔트리에서 빠질 수밖에 없음
‧ IOC에서 통큰 결정을 내려 12명까지 엔트리를 늘림으러써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음
‧ 다만 실제 경기에 참가하는 기회는 줄어들 수 있음

그렇다면 이 메모를 어떻게 글쓰기에 활용할까, 하는 문제가 생긴다. 걱정마라. 일단 세부 내용 메모를 다시 재배치한 후 그대로 나열해보라.

-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함
‧ 스포츠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단일팀 논의가 이루어짐
‧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남북의 생각보다 더 과감한 결정이 이루어졌음
‧ 약간의 이견이 있음에도 남북인 쉽게 합의에 이르렀음


이런 식이다. 그럼 이 메모에서 '-'이나 '‧' 부호를 없애고 그대로 메모를 열거해보자.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함. 스포츠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단일팀 논의가 이루어짐.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남북의 생각보다 더 과감한 결정이 이루어졌음. 약간의 이견이 있음에도 남북인 쉽게 합의에 이르렀음.


그리고 마지막 서술어를 종결형어미(~다)를 넣어 완전형태로 바꿔본다.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스포츠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단일팀 논의가 이루어졌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도 남북의 생각보다 더 과감한 결정이 이루어졌다. 약간의 이견이 있음에도 남북인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이 글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업을 해보자.

남과 북이 대승적 차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 논의는 스포츠보다는 정치적 차원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특히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남북의 생각보다 더 과감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남북 간에 약간의 이견이 있음에도 남북인 쉽게 합의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떤가. 훌륭하지 않은가. 이 글이 잘 썼다, 못 썼다 하는 가치판단은 유보하자. 다만 글감을 받고 막연하던 것이 메모를 통해 훌륭한 글로 진화했다.

물론 좀 노련해지면 이런 수고는 안 해도 잘 쓸 수 있다. 다만 생각이 글의 모드로 정착이 될 때까지는 이런 메모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괜찮을 듯싶다.

글 못 쓴다고 생각만 부여잡고 있지 말자. 그 생각이 메모가 되는 순간, 이미 생각은 메모라는 메신저를 타고 글로 변신을 시작한다. 글쓰기의 어려움, 메모로 극복해보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메모로 글쓰기 #글쓰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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