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지옥으로 떠나는 열차, 용산역은 '인간창고'였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①-르포] 강제징용 피해자의 역사흔적을 찾아가다

등록 2018.01.23 15:48수정 2018.01.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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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일제 강제징용 사실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집중 취재합니다. 기획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에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애독자 여러분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https://www.facebook.com/iljenodong/)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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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역은 인간창고였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여기로 끌고와 생지옥 열차에 태웠다. 이런 아픈 역사의 흔적을 기리고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난해 8월, 용산역 앞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웠다. ⓒ 정대희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 그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웁니다."

이 한마디에 부산행을 결심했다.

#장면1. '인간창고' 용산역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서울 용산역은 '인간 창고'였다. 사람들을 노예처럼 수용했다. 일제는 강제 징집한 조선인을 여기로 끌고 와 생지옥행 열차에 태웠다. 수많은 이들이 일본과 사할린, 남양 군도, 쿠릴 열도 등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지난 16일 그 흔적으로 찾으려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챙겼다.

여행자 집합소였다. 용산역에는 여행 가방을 짊어진 사람들로 붐볐다. 이리저리 잰걸음을 옮기는 이들로 대합실이 시끌벅적했다. 수십 년 전,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용산역을 빠져나왔다.

깡마른 몸에 갈비뼈가 드러난 상체. 가느다란 두 다리를 감춘 짧은 바지. 오른손에 쥔 곡괭이. 태양을 가리기 위해 뻗은 왼손. 어깨에 앉은 작은 새 한 마리. 발목까지 뒤덮은 돌무더기.

용산역 앞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아래 노동자상)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김운성(54, 남), 김서경(53, 여) 부부 작가는 이렇게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형상화했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문자를 남겼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에워싸고 기억의 벽이 세워졌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다.

'사죄 없는 과거, 잊지 말자 노동자여'
'우리의 미래는 과거 청산으로부터'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 실현'
'아픈 역사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의 벽돌 사이엔 강제징용 역사를 담은 그림도 새겨져 있다. 카메라를 꺼내 아픈 역사를 형상화한 피사체를 담았다. 노동자상이 강제 철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추진위원회에 노동자상 자진철거를 요청했다. 지금까지 두 차례, 우편물을 보냈다. 노동자상이 '불법 시설물'이라는 거다. 사연은 이랬다.

노동자상은 정부가 세운 게 아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이 주축이 돼 건립한 거다. 제작비도 시민 모금 등으로 충당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상 건립을 거절했다. 용산역 앞 광장은 국유지다. 국토부가 관리하고 한국철도시설공단이 행정집행 권한을 위임받은 땅이다. 양대 노총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내세워 협조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증이나 기부도 거부했다. 지난 2017년 3월 1일, 예정됐던 노동자상 제막식이 취소됐다.

동상이 서야 할 자리에 피켓 든 사람이 섰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상 건립을 거부하자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는 지난해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지난 2017년 8월 12일, 양대 노총은 정부의 허가 없이 노동자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강행했다. 조선아 한국노총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한·일 외교문제와 국유지 내 시설물 관련법을 내세워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거부했다. 용산역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집결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 (지난 2017년) 8월 노동자상 건립을 강행했고, 훗날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철거요청이 왔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철거요청은 똑같이 왔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강제 징용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서다. 용산역 앞 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행정용어상 '불법 시설물'이다. 동상의 발치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살 배인 검은 두 손에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장면 2. 첩보작전 펼쳐 일본에 세운 강제징용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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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전시실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는 강제징용 노동자 모형 ⓒ 정대희


'덜커덩'

기차가 움직였다.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용산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강제징용 피해자들도 이 길을 달렸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징용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기차만 달린 게 아니다. 배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날랐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의 탄광과 제철소, 조선소, 무기 공장 등으로 끌려갔다. 산 넘고, 물 건너 노역을 한 거다.

노동자상도 배를 탔다. 탄광에 가기 위해서다. 지난 2016년 8월 24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본 단바 망간 기념관에 노동자상을 세웠다. 3천여 명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막장에서 노역을 살았던 곳이다.

"첩보작전을 펼쳤죠."

조선아 한국노총 국장의 말이다. 일본에 노동자상을 세우기 위해 양대 노총이 비밀 작전을 펼쳤다. 노동자상을 배에 싣고 관계자들은 항공편으로 나눠 일본 교토 북부 단바지역으로 향했다. 보안을 위해 언론에도 이 같은 소식을 숨겼다.

하지만 비밀 작전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최종진 민조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일본 오사카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본 정부가 입국을 불허했다. 다행히(?) 제막식은 예정대로 열렸다. 강제 징용의 흔적은 이렇게 일본에 세워졌다. 

#장면3. 일장기 앞에선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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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 정대희


'주르륵~'

소녀상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지난 16일 부산은 비가 내렸다. 부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초당역에서 내렸다. 5번 출구를 빠져나와 길을 따라 걸으니 '일본 위안부' 소녀상이 보였다. 하얀 털모자와 숄. 노란 리본이 달린 빨간 목도리. 알록달록한 양말. 소녀상은 이렇게 일본 영사관 앞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여기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웁니다."

손지연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소녀상 옆 몇 뼘 사이로 강제 징용 노동자상이 세워진다. 일장기 앞에 강제 징용이 흔적이 들어선다.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의 이야기다. 1월 24일, 건립특위는 이곳에서 강제징용 노동자상 선포식을 열 예정이다.

#장면 4. 산 위에 세워진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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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내걸린 강제동원 피해자들. ⓒ 정대희


"어디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가자는 말에 택시 기사가 반문했다. 부산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92m 산 위, 일제에 끌려간 소녀와 노동자의 강제 징용 흔적이 있다. 이번엔 취재수첩을 꺼냈다.

'782만 7355명'

역사관 4층에 내걸린 숫자다. 조선인 강제동원 총수다. 일본이 작성한 통계를 분석한 수치로 중복 동원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소녀상은 여기에 빠져 있다. 사각형의 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특히 '위안부' 피해 등 반인륜적 전쟁범죄에 대한 명부나 통계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대략적인 피해 규모조차 추산하기 어렵다."  

전시실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동자들의 강제징용 증언을 담은 영상과 알림판이 나왔다. 강제동원 피해자 '윤병열'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그는 강제징용을 이렇게 설명했다.

"갈 적에는 아가씨도 데려가고 총각도 데려가고 막 야단 나니께.
 일하러 갈 적에는 잔댕이(허리)에다 혼백을 짊어지고 들어간다고 그랬어.
'당꼬베야(다코베야'. 거기 가서 살다가 고생이...아이, 말할 것도 없어.
가스 터져서 죽고, 또 천판(갱내의 천장) 떨어져서 하나는 죽고..."

5층 상설전시실로 향했다. 모형으로 꾸민 일본군 '위안소'를 발견했다. 문이 열린 방안을 들여다봤다. 한 평 남짓한 방에 침대와 세숫대야가 있다. 몇 발자국 내딛자 벽면에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그날의 기억'이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떴다. 옥상 추모탑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와 맞닿은 내용이었다. 대일항쟁기위원회가 발행한 <들리나요? 열두 소녀의 이야기> 한 구절은 이랬다.

"14살에 끌려갔는데 너무 어려 손님을 못 받는다고 많이 맞았어. 바닷가에서 사촌과 같이 납치됐는데, 그 애는 일본군 총 맞아 죽었어. 이런 말은 아무한테도 안 하고 죽으려고 했는데, 너무 억울해서! 돌아와서는 시집도 못가고 평생 고생하며 살았어."    

저녁 6시 10분, 폐관시간을 넘겨 역사관을 빠져나왔다. 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의 역사 흔적을 찾아 떠난 길, 노동자와 소녀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5월 1일, 부산에 강제징용 역사현장이 더해진다. 부산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이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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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내걸린 조선인 강제동원 총수.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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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운동을 합니다. 모금에 참여하고픈 시민들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을 클릭해주세요. 1만 원 이상 모금에 참여하시는 시민은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단체는 10만 원 이상인 경우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 #강제징용 노동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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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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