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장의 '자격'을 다시 생각한다

‘내부형 교장 공모제’ 반대하는 한국교총의 ‘자격’은?

등록 2018.01.23 11:59수정 2018.01.23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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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년을 코앞에 둔 고교 교사로서 우리나라 학교의 민주화나 정상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도 교장이고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사람도 교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교장의 권한은 매우 크고 그 권한이 권한을 넘어 나쁜 권력으로까지 행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학교 혁신은 희망의 문화다" 참교육실천대회에 참여한 전교조 경기지부 시흥 지회 소속 교사들, 그들이 바라는 '희망의 문화'로서 학교 혁신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 ⓒ 전교조


교장...학교 혁신 위해 가장 큰 역할 할 수도, 가장 큰 걸림돌 될 수도

엉터리 대통령을 뽑아놓으면 나라가 망가지고 많은 국민이 고통을 당하듯 학교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좋은 교장이 오면 학교가 살아나고 한심한 교장이 오면 학교 구성원 사이엔 균열이 가고 시나브로 생기를 잃는다는 게 내 오랜 경험이다. 최근 '공모형 교장' 제도와 관련한 교육부의 입법 예고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 내가 무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2007년부터 시행된 '교장 공모제'는 '교장 자격증 소지 여부나 연공서열보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나 역량을 평가해 선발함으로써 공교육의 혁신을 이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제도다. 교장 자격증이 있어야만 임명제 교장이 되는 기존의 교장 제도는 그것대로 두고 그것과는 다른 길을 하나 더 더한 이 제도는 ① 교육계 외부 인사에게 교장직을 허용하는 개방형 ②교장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초빙형 ③ 15년 이상 교직 경력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는 내부형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작년 12월 26일 교육부는 '교육공무원임용령'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핵심 내용은 ① 평교사도 학교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내부형 공모 교장에 대한 제한 비율인 15% 규정을 폐지하고 (안 제12조의6 제2항) ② '공모교장심사위원회' 심사위원에 교사들이 30~40% 참여하도록 한다(안 제12조의5 제2항)는 것이다.  

이것이 왜 문제였을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아래 한국교총)는 이 개정안을 '나쁜 정책'이라 못 박으며 반대 운동에 나섰다. 그 이유는 교총의 선전 문구나 성명서를 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한국교총의 '교장 공모제' 결사반대, '무자격 교장' 때문이다?   


'무자격 교장 공모제 전면 확대' 폐지!
'특정 노조 교장 만들기 하이패스로 드러난 제도 전면 확대' 반대!

이 두 문구에서 '무자격'과 '특정 노조'에 방점을 찍고 보면 한국교총이 말하고 싶은 것은  보다 명확해진다. 무자격 교장도 안 되고 특정 노조 출신의 교장도 안 된다...!

먼저 '무자격 교장'이란 말부터 좀 생각해 보자. 이것은 참 묘한 표현이다. 15년 이상 경력의 교사가 공모에 응모해 해당 학교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책임 구성원들에 의해 발탁된 내부 공모형 교장을 두고 '무자격 교장'이라는 건데 이는 저도 모르게 무면허 운전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무자격 교장'은 오랜 세월 점수 따기 경쟁의 길을 통해 가까스로 취득하게 되는 교장 자격증이란 게 없을 뿐 교장으로서 직무수행을 잘 할 자격이 없다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한국교총은 교장 자격증 제도의 코스를 밟지 않은 교사는 제아무리 경륜이 있고, 능력도 있고, 학생과 동료 교사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교장 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10년 전 교장 공모제의 도입 이후 '자격증 없는 교장'들의 직무 수행력과 관련하여 나온 적잖은 연구 보고서들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내부형 공모 교장에 대해 좋은 평가 내린 연구 결과들 외면해서야

2009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의뢰로 나민주 충북대학교 교수가 쓴 '교장공모제의 공모 교장 직무수행에 대한 효과분석' 보고서나 2010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교장공모제 성과 분석 및 세부 시행 모형 개선 연구 보고서,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의뢰로 김이경 중앙대 교수 등이 진행한 '교장공모제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 등은 한결같이 '평교사 출신 내부형 공모제 교장의 직무수행 만족도가 높다'며 '임명제 교장보다 공모제 교장의 직무 수행력이 높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째서 한국교총은 공모제 교장을 '무자격 교장' 운운하며 그 제도에 대해 극력 반대만 하는 걸까?

한국교총의 선전 포스터 한국 교총은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무자격 교장공모제'라 부르며 이는 '나쁜 정책'이라 주장한다. ⓒ 한국교총 홈페이지에서 가져옴


한국교총은 우리나라 최대의 교원단체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단체를 실질적으로 대표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은 교장, 교감을 비롯하여 장학사, 장학관 등 소수의 교육 관료들이라는 건 교사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다들 교장이거나 교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이 중심이 된 한국교총의 공모제 교장 반대는 당연하게도 보인다. 그들로선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도 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평교사가 교장이 되는 길을 많이 터줄수록 자신들의 밥그릇 수가 그만큼 작아질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네들에게도 내부공모형 교장을 신청할 자유와 권리는 엄연히 주어져 있음에도 말이다.

'특정 노조'=전교조 적대시하는 한국교총의 역사적 뿌리

그럼 '특정 노조 교장 만들기' 운운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 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 소속의 교사가 교장이 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것인데 이건 또 왜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교총의 역사를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역사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박근혜-이명박의 새누리당‧한나라당, 김영삼-김종필-노태우의 민자당, 전두환의 민정당, 박정희의 공화당, 이승만의 자유당을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면 한국교총의 뿌리는 어떤 것일까?

한국교총의 전신은 1948년 이승만 정부에서 결성되어 전교조 창립의 해인 1989년까지 우리나라의 유일한 교원단체로 존재한 대한교련 (대한교육연합회)이고, 이 대한교련의 전신은 조선교련 (조선교육연합회)이며, 또 그 전신은 일제하 조선교육회이다.    

8.15 해방 직후 민주주의와 민족의식에 투철한 교원들이 모여 건설한 자발적 교원단체는 조선교육자협회로서 '교육계의 친일 부역자‧민족 반역자의 추방, 교육 내용의 민주적 혁신, 학부모에 대한 과중한 부담 강요 중단' 등을 주창한 평교사 중심의 교원 단체였다.

그러나 미군정청은 이를 불법화하고 미군정청 문교장관과 교육 부문의 친일 경력자들이 주도하는 조선교련을 급조케 했던바 그것은 일제하 어용 단체인 조선교육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승만 정부 수립 후 조선교련은 대한교련으로 이름을 바꾸지만, 문제는 그 어용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교련이 거대한 유일 교원단체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1960년 4.19 혁명과 함께 태어난 자주적 교원단체로서 한국교원노동조합을 이듬해 5.16 군부 쿠데타가 철저히 탄압‧와해시킴으로써였다.

조선교련에서 대한교련으로 이름은 바꿨지만, 그 어용성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도 아래 추구되는 모든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
"(전두환 5공화국이 표방한) 국민정신교육에 총력을 경주할 것을..."

둘 다 대한교련의 정기대의원대회 결의문 일부로서 전자는 1971년의 것이고 후자는 1981년의 것이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정치권력에의 예속을 분명하게 결의한 셈이다. 회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평교사들의 활동과 참여는 애당초 배제하고 교장‧교감, 장학사‧ 장학관 같은 교육행정 관료와 밀착된 회장단과 사무국 간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랄 수 있었다.

이러한 대한교련에 최초로 큰 위기가 닥친 것은 범국민적‧범교사적 지지 속에 전교조가 출범한 1989년 봄이었다. 대한교련에 대한 평교사들의 봇물이 터진 비판과 탈퇴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이 단체는 다시 이름을 한국교총으로 바꾸고는 평교사에게도 임원이 되는 길을 터주겠다는 등 일련의 변화를 천명했다. 그 바로 직전에만 해도 1987년 6월 항쟁으로 권력에서 물러난 전두환에게 당시 대한교련 회장이 전국의 교육장과 교육회장 322명의 서명까지 받아 7백여만 원짜리 초대형 병풍을 선물했던 단체였다. 

어쨌거나 간판을 바꿔 단 한국교총은 자주적인 교원단체로서 교원의 지위 향상이나 교육 현장의 민주화,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코자 하는 환골탈태의 길을 갔던가?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혁신학교, 일제고사 반대 등 전교조의 정책이나 운동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것이야 생각의 차이라고 제쳐 놓더라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도 일관되게 보여 온 매우 편향된 정치색에 대해선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두 가지 예만 들어보자.

한국교총으로 다시 변신한 후에도 새누리당의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 찬성, 박근혜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도 지지  

2014년 6월 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 교사 출신을 비롯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 (17개 지역에서 13명) 되자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한국교총은 기존의 직선제 찬성 입장을 백팔십도 바꾸어 정부 여당의 편을 들고 나섰다. 또 있다. 2016년 박근혜 정권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밀어붙이자 회원의 절대다수인 평교사들의 의견은 제대로 확인해 보지도 않고 한국교총의 이름으로 그 지지를 선언했다. 이 같은 사례만 놓고 봐서도 한국교총 (정확하게는 한국교총의 회장단이나 중심 간부들)은 교육계의 '적폐'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철회하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박근혜 정권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뿐 아니라 그 숱한 '적폐'들을 한시도 좌시하지 않았지만 교장의 자격-무자격을 말하는 한국교총은 .....? ⓒ 전교조


묻건대 대한민국 교장의 '자격'은 무엇인가? 한국교총은 교장 자격증이야말로 교장의 모든 자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 생각은 다르지만, 만약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총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나는 그 자격증이 진정으로 자격이 있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건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민주적 리더십으로 교사들과 수평적 협력관계를 맺을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열정, 평화 통일 교육에 대한 비전, 인권 교육에 대한 감수성, 부당한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 확보에 대한 의지와 직결되어 있다.

교장의 첫 번째 자격은 '자격증' 보다 민주적, 수평적 리더십 

나는 다양한 연수와 연구를 통해 누적해 나간 승진 점수와 담임과 부장 교사로서의 오랜 경험을 갖추고서 마침내 자격증을 취득한 '유자격 교장' 중에서도 방금 말한 자격을 갖춘 교장이 있다고 생각하고 아쉽게도 그런 교장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문으로는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총도 '무자격'(!?) 내부형 공모 교장에게는 훌륭한 교장 자격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단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안 그러고는 못 배긴다면 나는 공모형 교장의 무자격을 말하는 한국교총의 자격을 종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한국교총의 '특정' 권위주의 정권을 향한 노골적인 편향적 지지와 전교조 죽이기에 나선 정치권력의 폭력에 침묵하거나 동조함으로써 보여온 반교육적‧ 반민주적 행태들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줄여서 종이 신문에도 보낼 예정입니다.
#전교조 #내부형 교장 공모제 #교육 혁신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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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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