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없었다고? 꼭 블랙리스트라고 써야 아나"

조사위 발표에 법조계 반응 "그 자체로 황당해" VS. "행정 차원"

등록 2018.01.23 16:14수정 2018.01.2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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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 flickr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판사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다수 발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법조계는 충격에 빠졌다.

추가조사위는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평소 다수 법관에 대한 여러 동향과 여론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들이 상당수 발견됐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원세훈 전 원장의 항소심 공판에 대해 청와대와 의견을 주고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등이 포함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법원에 원 전 원장의 항소심 판결에 큰 불만을 표시하며 "재고 여지가 있는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고, 법원행정처는 사법부의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청와대에 자세히 설명하자는 입장을 정리했다. 원 전 원장은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2015년 7월 16일, 대법원이 증거 능력 등을 문제 삼아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법원행정처는 일선 판사들의 뒷조사도 진행했다. 법원행정처는 "학생운동 경력과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측면이 있다",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있으며 선동가,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다"는 등 판사들의 동향과 성향을 수집한 뒤 문건을 작성했다.

이에 대해 아직 코트넷(법원 내부게시판)엔 일선 판사들의 글이 올라오지 않았지만, 법원 내부에선 이미 다양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자체로 황당해" VS. "행정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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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지방법원 소속 한 판사는 "황당하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판사가 같은 판사들의 동향이나 파악하고, 그 자체가 엄청난 것"이라며 "블랙리스트가 사실상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판사는 "우 전 민정수석이 대법원 합의체에 넘겨달라는 것도 항소심 판결을 뒤집으라는 뜻 아니겠나. 그런 요구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건 틀림없다"며 "전원합의체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포함돼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이 판결 결과에 의심을 가지면 앞으로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판사도 "원래 나오던 얘기이긴 했지만,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관리 명단에 오른 당시 판사였던 변호사도 "블랙리스트가 블랙리스트라고 쓰여 있어야 블랙리스트냐"며 '판사 블랙리스트가 없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행정처의 관리대상인 박아무개 판사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 변호사에 대해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면은 있으나 선을 넘는 편은 아니다"라는 내용의 문건을 작성했다.

이 변호사는 "예상은 못 했지만 참 영광이었다. 법원행정처가 진보적인 단체인 우리법연구회 등 소속 판사가 아닌 판사들까지 다 관리대상으로 넣었다"며 "원 전 원장에 관한 문건은 심각한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일의 엄중함 잘 알아, 신중하게 입장 정리"

다른 쪽에선 신중히 지켜보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법원 한 관계자는 "청와대 쪽에서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재판부 동향을 파악해달라고 했을 때 그런 거 없다고 거절하는 게 원칙이긴 한데 행정적으로 대응한 게 아니겠나"라며 "외부 의견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0.01%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방법원 소속 한 판사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문건을 만든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고등법원 소속 한 판사는 "원 전 원장의 판결에 대한 의심으로 연결할 건 아닌 것 같다"며 "충격적인 내용이니만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원 전 원장 수사를 진행했던 한 검사는 "지금 공개된 문건은 매우 일부분이다. 향후 계속 보고하겠다고 했고, 훨씬 많은 내용이 남아있어 우려했던 진실이 더 나올 것 같다"며 "우 전 수석이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의장이 양승태 대법원장이었기 때문에 관여를 더 용이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할 게 있다면 철저히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명수 대법원장은 "일이 엄중하다는 건 제가 잘 알고 있다. 자료들도 살펴보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다음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서 말씀드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세훈 #우병우 #양승태 #법원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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