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올림픽 욕보이는 홍준표

[주장] 평양올림픽? 자유한국당의 천박한 색깔론

등록 2018.01.24 11:12수정 2018.01.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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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 국내에서는 '전쟁'을 도발하는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이런 국내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전 인류는 지금 열광 중이다. 무엇보다 평창 올림픽이 평화에 대한 세계인의 기대와 염원을 터질 듯 한껏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0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장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북 단일팀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IOC는 22명의 엔트리를 남북 단일팀에 한해서는 35명(한국 23명, 북한 12명)까지 허용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 정신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았다. 동계올림픽이 더 밝고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이 희망의 행사에 세계를 초대한다. 바로 이것이 평창이 세계에 주고자 하는 평화의 메시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AFP 통신도 덩달아 "평창은 한반도 비무장지대로부터 불과 80km 떨어져 있으며, 남북한 사이 전쟁은 1953년 중단됐으나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현재 휴전상태"라는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이며, '평화 올림픽'의 의의를 힘껏 역설한 바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고 역설하면서,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동참함으로써 '대화를 통한 한반도 위기해소'가 구현되리라는 부푼 꿈을 숨기지 않았다. 불과 한 두 달 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험 속으로 치닫던 위기상황을 환기해보면, 전 세계가 얼마나 절절하게 평화무드로 돌변하고 있나 하는 걸 절감할 수 있을 정도다.

평화올림픽 딴지 거는 일본, 그리고...

하지만 유독 일본만 딴지를 걸고 있다. 예컨대 간도 대학살 및 일본군 성노예를 인정하지 않으며 신사 참배를 즐기는 극우 정치인 중의 한 명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북한이 참가하는 평창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조롱하며 야유까지 퍼부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그간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친일파가 마침내 속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어느 기괴한 정치집단이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외치듯, 충성스럽게 이러한 일본 극우파의 논리를 그대로 직수입하여 '평창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비난하는데 자신을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얼굴에 왕침 뱉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주저 없이 자기 나라를 망신시키는 일에 앞장서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가면서까지, 그들은 또한 '국익수호'를 절규하는 코미디를 연출하는데 게으르지 않다. 자유한국당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 천대하며, 역사적인 인류평화의 제전을 앞장서 주술을 걸듯 저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난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남북 단일팀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기도 한 이율배반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던 정당의 직계후손이다. 2011년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화해와 평화의 상징인 스포츠가 정치나 이념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대회참가를 성인군자처럼 촉구하기도 했다.

망나니들의 칼춤과 기억상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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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받겠다'는 홍준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연 신년 기자회견에서 준비된 회견문을 읽은 후 기자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그러나 지금은 기억상실증을 앓는 중환자가 된 것 같다. 이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현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고, 김정은 독재체제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바로 이 홍 대표가(동일인물임) 2011년에는 '세계육상 선수권대회에 북한이 반드시 참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에 힘을 주며 역설한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우리는 하나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여자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홍준표 대표는 자신의 말을 양말처럼 뒤집고 있다. 가장 열렬히 스포츠를 정치이념의 도구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기회를 이용해 또다시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니 홍준표 대표의 어구를 빌리면, "망나니 칼"처럼 휘두르고 있다.

예컨대 지난 22일 대한민국 제1 야당의 홍준표 대표가 발표한 신년 기자회견문은 그야말로 초딩의 '잡기장' 수준을 면치 못할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좌파 사회주의', '좌파 포퓰리즘', '좌파 국가주의', '좌파 폭주', '좌파 광풍' 등의 기괴한 용어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7700자 분량의 회견문에 '좌파'라는 말을 무려 17번이나 썼고, '주사파'라는 말도 2번 등장했다고 풀이한다. 말하자면 400자에 한 번 꼴로 문재인 정부를 향한 색깔공세용 단어를 등장시킨 셈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촛불시민들'은 특정국가 국민을 선정한 것은 처음이라는 국제적 권위의 에버트 인권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영예를 한껏 드높인 바 있다. 하지만 특히 홍준표 대표는(나경원 의원도 물론) 명예로운 우리 국민의 얼굴에 세계적으로 X칠하는데 앞장서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국제적인 '국민 모독상'이라도 제정되어 있다면, 홍 대표가 당당히 영예로운 금메달을 딸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정치와 색깔

이쯤해서 우선 솔직하게 고백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이 글은 사실 몇 십 년 전부터 우려먹고 또 우려먹은 글이다. 거의 복사 수준임을 부끄럽지만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은 대한민국의 정치라는 게 몇 십 년 동안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나의 이 글처럼 - 특히 '색깔론' 분야에서는 - 우리 정치권도 계속 복사와 표절만 일삼아 왔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색깔'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가령 위계적 신분질서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몸에 걸치는 관복의 색깔 차이로, 지위의 높고 낮음과 직책의 같고 다름을 구별하곤 했다. 그러나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더불어 화려하게 개막된,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색깔은 특정한 사상과 이념을 상징하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빨간 색은 혁명이나 공산주의를 일컫는다는 식으로.

오늘날 같은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어떻게 국민대중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주고, 어떻게 그들을 특정의 이념체계로 끌어들이며, 어떻게 그러한 특정한 주의․주장을 대중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것인가가, 항상 급박한 정치적 과제로 떠오른다. 서로 이질적이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구호와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이 우리를 지지한다'고 외치며, 국민의 이름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난투극을 대하게 되면, 이런 가슴앓이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치인들은 지극히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이념적 입장을 압축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편이 무엇인지를 두고 골머리를 썩이곤 한다. 구호, 로고, 의상, 노래, 깃발, 색깔 등등이 그 방편의 주요 품목들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대중동원 수단의 대표격은 역시, 무언지 모르게 늘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창공에 펄럭이는 국기와 하늘에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애국가라 할 수 있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청-백-적색의 프랑스 국기와, 처음에는 반 혁명군 타도를 외치는 군가였다가, 나중에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이에즈'라 할 것이다. 이것들은 물론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 산물이며, 혁명과 공화국을 수호하려는 프랑스 인민들의 피 끓는 열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도 이미 색깔이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불어오는 색깔 선풍은 특이한 색조를 띠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전통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색깔을 밝히라"는 주문은, "꼭꼭 숨겨놓은 당신의 이념과 노선의 정체를 솔직히 드러내라"는 강압적인 요구며, "당신의 색깔이 나와 같은지 다른지를 이실직고하라"는 완곡한 위협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강요와 윽박지름은, 대단히 폭군적이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이고, 흑백 논리적인 독선적 자의식에 뿌리내리고 있다.

음험하고 공포스러운 색깔

'색깔론'이 우리나라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음험하고 공포스러운 색조를 띠는 이유는,  사상의 자유와 이념에 대한 판정이 지금껏 항상, 특히 박정희 시대에 유별났듯이 지배세력의 입맛에 따라 좌우되어 왔던 전통 때문이다. "당신, 사상(색깔)이 수상해!" 하는 한마디 말이, 당사자의 가슴을 얼마나 무거운 바위로 짓눌러 왔던가.

왜냐하면 이 말은 곧 "당신, 맛 좀 봐야 되겠어"로 통했고, 곧 이어서 주위 사람들에게까지도, 소위 '연좌제'에 의해 처절한 박해와 참담한 고난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색깔에 대해 '자신만만해' 하는 세력들은,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굽힘없이 싸워온 개인이나 집단들을 색깔을 빌미로 혹독히 탄압해본 전력이 있는, 냉전․공안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좌파'의 일방적 타도만이 절규되어 왔다. 요컨대 '좌익수'만 있고, '우익수'는 단지 야구장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따름이다.

자유민주주의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어느 정치학 교수는, <한국 정치학회> 학술상을 수여받은 자신의 한 저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적 원칙의 하나로, '관용'(tolerance)을 들고 있다. 한마디로 관용을 "공적인 일에서나 개인적 사안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견해나 신조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집하지 않는 태도"라 규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이질적인 집단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대립은 필연적이고, 그 가운데 어떠한 것도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하는 개별 집단 사이의 타협이 필수적인 덕목으로 등장한다. 이 경우 관용은 대립적인 이해관계의 존재를 서로 인정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통해 그 대립성을 풀어 나가려는 호혜적인 자세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민주주의적 관용의 적(敵)은 광신(fanaticism)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유한국당의 작태나 색깔론은 오히려 '광신'에 가까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에 배치된다. 그것은 광신의 적자(嫡子)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냐, 아니면 국가보안법의 폐지냐 하는 양자택일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와 국보법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상의 어느 누구도 인간의 신념과 양심을 신(神)처럼 절대적으로 판정 내리고, 그리고 그 판단을 반드시 추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독단과 교조가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저 프랑스대혁명 이래 자유민주주의의 꽃으로 기능해왔는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줄기차게 색깔론을 제기하고, 나아가서는 국보법 수호를 절규하는 우리나라의 수구 냉전 세력들이 분명히 충심으로 흠모해 마지않을 미국에도 버젓이, 공산당이라는 것이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들, 구시대적 만행에 몰두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오로지, 양자택일의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요컨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든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박물관용으로 자신들을 박제화 시켜버리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천박한 색깔론으로 트집 잡지 말라

한 정치인이 정신병원 환자들에게 연설하도록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 정치인이 연설을 시작한지 10분 정도 지나자, 뒤쪽에 앉아 있던 환자 하나가 벌떡 일어서더니, 고함을 질렀다.

"이봐,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야? 게다가 억지 트집 잡는 말이 너무 많아. 이제 그만 입 닥치고 앉지 그래!"

그러자 그 정치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병원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을 끌어낼 때까지, 기다리겠소."

"끌어내다니오?"

병원장이 대꾸했다.

"절대 안 되오. 저 불쌍한 친구는 여기 8년 동안 있었지만, 제 정신으로 말한 것은 이게 처음이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지금 시중의 민심은 자유한국당을 '무반당', 즉 '무조건 반대만 하는 당'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자한당은 지금껏,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온갖 터무니없는 구실을 둘러대며, 정부-여당의 발목잡기로만 일관해오지 않았는가 하는 타박의 표현인 것이다.

물론 현재 어느 특정 정당 하나만이 전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사실 자유한국당은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정쟁만 일삼고 있음을 겸손하게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까탈을 부리며 억지로 트집을 잡아, 싸울 구실을 찾는 데만 골몰해온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색깔론'을 최상의 무기로 애용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우파는 선이고 좌파는 악이라'는 독선적 이분법에 사로잡힌, 저급한 색깔논쟁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대대적인 민생대책을 강구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당리당략을 떠나 오로지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재무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옛 성현이 "백성의 음성은 신의 음성"이라 했다. 명심할 일이다.

평화를 향한 꿈에 부풀어 평창 올림픽에 물밀 듯 몰려올 외국인들 앞에서 제발 천박한 색깔론으로 또다시 국격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지 않게 되길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린이처럼 두 손을 모아본다.

덧붙이는 글 박호성 기자는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입니다.
#평창올림픽 #평화올림픽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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