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것도 서러운데... 국제 매매혼의 민낯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를 읽고

등록 2018.02.02 10:14수정 2018.02.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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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체류 외국인이 공식적으로 200만명을 돌파하였다고 한다. 거리를 걷다보면 자주 보이는 동남아시아인들, 중국인들, 중국계 한국인들을 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우리가 노력해서 보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주변적 존재'들은 그 수가 많든 적든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기 마련이다. 책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를 통해 '주변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그들이 겪는 미세한 일상부터 구조적인 문제까지 한국인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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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저자 김현미 ⓒ 돌베게


첫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제 매매혼'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고착화된 한국 내에서는 경쟁에 도태된 한국 남자들이 많이 양산되었는데, 국제결혼은 이러한 민족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두되었다는 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낙후된 젠더 개념은 방송으로나, 책으로나 이들 이주 여성들을 '순종적 어머니상'의 틀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박병관씨는 베트남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던 도중, "너 왜 나랑 결혼해서 한국에 왔냐?" 그랬더니, 스물두살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외국에 가서 사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박병관씨는 스무 살이나 어린아내가 "당신이 좋아서 왔다"라는 대답을 하리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아내의 당당한 태도에 '놀랐다'고 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돈만 있으면 베트남 또는 외국의 여성을 선택하여 인생의 동반자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책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부모에게 송금함에 따라 베트남 아내의 순종적 모성애가 발현될 수 있다고 나온다. "송금은 국제결혼한 남성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표현된 책의 한 구절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다.

'송금으로 맺어진 사랑'은 베트남 아내에게 시부모 모시기, 청소와 요리, 집안일을 포함한 가내 재생산 활동, 출산과 육아라는 인구 재생산 활동, 한국어 습득을 포함한 문화적 재생산 활동들과 더불어 사회통합이라는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결혼 이주자가 되도록 요구한다.

두 번째로, 가구 공단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불법 이주노동자 '라이'가 지탱해내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내가 만든 상품은 박스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쓰여 나가죠. 불량이 전혀 없어요. 내가 사장님께 이거 내가 다 했는데. "메이드 인 코리아 그리고 네팔 '불법사람'이라고 써요" 했지요.

국내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베테랑 숙련공이자 불법 이주자들이다. 이들은 입국하자마자, 여러 가지 잡일을 해가며 생을 연명해간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구직정보도 적다보니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을 하게 되고,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다량의 유해물질이 쏟아지는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한다. 노동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환경에서 살기도 한다.


라이씨도 그러한 노동자들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운동과 관리로 몸을 유지하며, 월급도 제때 받는다. 게다가 그는 매우 특별한 사례다. 많은 수는 저임금에 월급 몇 개월치를 깔아놓는 일종의 '보신금'을 강요받고, 임금을 떼이기도 한다. 건강이 나빠지면, 병원보다는 본국으로 보내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렇게, 불법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저임금 폭리를 지탱해줌과 동시에 나름의 제 2의 인생을 갖추어 가지만, 한국정부는 복지 사회 통합비용을 대폭 확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드러내기 보다는, 언제든지 국외로 추방될 수 있는 '불법' 노동자로 규정짓는다.

세 번째로, 같은 한국말을 하지만 너무 머나먼 한국계 중국인, 조선족 이야기다.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보다는, 조선족의 범죄를 다루는 폭력 영화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장기매매, 보이스피싱, 강력범죄를 연상하는 단어는 대부분 조선족들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불편한 공식이 만들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내 동북삼성은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보이스 피싱 조직이 모두 조선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기획자는 중국인과 대만인, 한국인인 경우가 많고, 이들의 조직이 조선족을 하층 조직원으로 동원한다.

책에 등장하는 조선족연합회의 총무는 "자본주의 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수룩해서 잘 속는다"라고 말한다. 젊어 고생하여 노후대책을 하리라는 꿈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이들 또한 결국 '실패'한 이주자가 된다. 이주노동자로서의 성실함, 악착같음, 부지런함, 근검절약은 한국인이 고안한 다양한 파생상품과 사기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위의 사실처럼, 조선족은 쉽게 '사기' 칠 수 있는 대상으로 범주화 되어 있다. 그들 또한 한국을 돈버는 땅으로 단순화 한다고 한다. 더불어, 이주기간이 최장 5년 동안 허용되기 때문에, 이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일에 손을 벌리다 보면 '신종사기'에 노출 될 확률도 크단다.

안타깝게도, 내부구성원들을 지탱해주던 사회주의 공동체 감성마저 집단적 피해의 단초가 된다. 미개하고 두려운 집단으로 규정된 이들은, 미주나 유럽지역의 동포들과 달리 영구적 자유왕래의 권리마저 없다고 한다.

북한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한국어가 통하는 조선족. 그들은, 한국을 문화적, 심리적 귀속감을 지니며 '제 2의 집'으로 여긴다. 점점 늘어나는 조선족의 인구도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말투, 외모,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국의 고용허가제로 선택받은 '운' 좋은 뭉크졸씨의 이야기를 통해, 원칙과 계획이 부재한 이주노동자 정책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고용허가제는 명단만 보고 노동자를 뽑으니 관상을 보고 뽑는 거나 마찬가지죠. 기술에 대한 신뢰도도 그렇고, 관리의 어려움도 있습니다. 또 고용허가제에서는 건설이면 건설, 제조업이면 제조업 등 그 분야로 와야 하니 산업별 업종간의 이직이 어렵죠. 노동자에게는 기본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죠.

고용 허가제는 개개인의 경력과는 상관없는 한국어 능력시험에 따라 지원 범위가 제한받는다(책에서는 변별력이 없는 시험이라고 강조 한다). 더불어, 위처럼 고용주와 외국인 노동자 간의 매칭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노동자와 고용주 둘 다 답답한 상황이 초래된다. 더군다나, 쌍방의 이질적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한국식' 문화만을 강요하는), 이들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만다.

대안으로 '다문화적 환경'을 만들어낸 사업장을 예시로 든다. 노동자의 국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걸고, '이중언어'로 이들에게 사업장을 설명해 주고 심지어 내국인 노동자들에게 '차별방지'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농촌에 위치할 경우, 기숙사와 운동시설 및 오락시설, 위성 tv를 설치하여 이들이 한국문화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내 이주자를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근접성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정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연결망이나 사회적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주류문화중 하나라고 인정하고 통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주의 시대'를 맞이한 한국사회는 나름의 원칙으로 대응해 나갔다. 다문화 환경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도 분명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주자들을 아직까지 '피해자' '소수자' 또는 '침략자'라는 정치적 범주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국가는 '호의적 방관'으로 이주자들을 객체로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100년만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강제 이민의 역사가 수없이 숨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부독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은 중국, 일본, 독일,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정치적 재기를 꿈꾸거나, 국가의 복원을 염원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많은 수가 타국에서 탄압을 받거나 또는 죽거나 다쳐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서러운 이민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들이기에, 오늘날에 한국으로 편입되는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공정한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난다"라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어딜 가든지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착취'가 존재하는 안타까운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이주민과 함께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꼭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김현미 지음,
돌베개, 2014


#이주민 #노동자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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