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국민MC 송해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를 읽고

등록 2018.02.01 08:43수정 2018.02.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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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묵직하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 있다. 읽고 나면 몸과 마음이 뿌듯해오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책이 두껍다거나 종이의 질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책이 무거워 읽는 동안 몸의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게 아니다. 책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이 책이 주었다. 송해 선생의 일생을 오롯이 담아낸 책, 송해 평전 <나는 딴따라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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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딴따라다> ⓒ 스튜디오본프리


영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오민석 저자가 송해 선생을 밀착 마크한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90년이 훌쩍 넘는 삶의 궤적을 복원하고 묘사하고 따라간다. 1927년에 태어나 2018년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 그이기에, 그가 살아온 과정은 동시에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이자 좁게는 대중문화사이다.


'분단 70년의 역사가 그의 몸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악극단 시절에서 한류 열풍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한국 대중문화의 발전사가 그의 얼굴에 그려져 있다.'


오민석 저자는 송해 선생을 대중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다. 그가 '딴따라'인 걸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는데, 오민석 저자는 자신도 딴따라 기질이 있음을 송해 선생을 만나면서 알게 됐단다. 그만의 음주 트레이드마크인 '빨간딱지' 꽤나 마시며 속내를 터놓고 시간을 쌓아온 결과로 송해 선생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그가 송해 선생에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송해라는 사람에게 그는 어떤 다른 것이라도 보았던 걸까.

'송해를 나이 든 사람들은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고, 요즘 사람들은 사회자로 생각한다. 근데 송해는 가수이다. 그것도 정식으로 성악 교육을 받은. 악극단 시절이 그에게 노래만이 아닌 연기와 사회까지 요구한 것이다.'


송해 선생의 삶을 심하게 압축해보면 이렇다.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내고, 1949년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과에 입학한다. 당시는 북쪽에는 좌익이, 남쪽에는 우익이 대세를 이루던 시기였는데 그는 학생 신분으로 선전대 활동을 하며 북녘 땅 곳곳을 유랑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학생 송해는 그 해 12월3일 북한 인민군을 피해 잠시 집을 나섰는데 그 길로 영원히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다.

훗날 '1·4후퇴'로 명명된 피난길에 합류, 해주 연안에서 연평도로, 다시 3일 밤낮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자신의 본명 송복희를 접어두고 '바다 해(海)'자를 따 송해로 이름을 바꾼다. 부산에 도착한 청년 송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군에 입대하게 되고, 통신병으로 근무하다 1954년 8월에 제대, 1955년 그의 나이 28세에 당시 대중문화를 선도하던 <창공악극단>에 들어간다.


악극단에서 단원으로 활동한다는 건 노래 이외에도 연기, 사회 심지어 노역의 1인4역을 한다는 것, 이 시기가 만능 엔테테이너로서의 내공을 쌓는 기간이었다. 악극의 시대가 기울고1960년대 라디오, 1970년대 텔레비전으로 넘어와 주로 코미디언으로 인기를 얻는다. 1974년부터 1988년까지 라디오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명 사회자가 되고,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으로 국민 MC가 되어, 2018년 1월 현재까지 전국을 누비고 있는 국내, 아니 세계 최장수 MC로 활동하고 있다.

오민석 저자는 송해 선생이 가는 곳을 함께 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 과거를 소환할 때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얘기하고, 현재를 관찰할 때는 그가 자주 나타나는 종로 낙원상가의 거리와 방방곡곡 <전국노래자랑>의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한다. 그의 건강 비결인 'BMW(Bus, Metro, Walk)'를 매일 실천하는 모습과 특히 대중목욕탕에서 모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엮이는 현장을 목도하고 기록한다.

30년 이상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는 <전국노래자랑>이지만, 매번 떨려하고 자기만의 의식을 거행하는 진지한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송해 선생에 대한 엿보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나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우리 시대, 우리 대중들의 다정한 오빠이고, 형님이고,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고, 선생님이고, 어르신이다.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 또 있으면 어디 한번 나와 봐라. 이것은 송해 선생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특성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무리 송해 선생이라 해도, 연예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많은 경우 이중적이다. 구순이 넘은 그도 전철을 타고 갈 때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종종 선을 넘나드는 장난을 당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의 대중교통 사랑 혹은 건강관리 습관이 어떤 이에게는 불편을 초래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저자는 그가 겪고 있는 일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을 통해 '국민 MC'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려주려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예능인의 삶에 대한 기록을 성실하게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책이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예인, 스타라는 존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어떤 생각을 실제로 하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수시로 노출이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것은 앵글에 의해 왜곡되고 편집이 된다. 100% 완전히 객관적인 시선은 있을 수 없지만 그럴수록 대중문화는 더욱 기록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그랬듯이, <전국노래자랑>을 다시보기 하는 분 보다는 그가 노래하는 영상을 검색해서 감상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작가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올 해도 무사히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는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는 송해 선생에게 매년 그런 인사를 전해야 하는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제 개인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나는 딴따라다 - 송해평전

오민석 지음,
스튜디오본프리, 2015


#나는 딴따라다 #송해 평전 #송해 #전국노래자랑 #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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