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가꿨다, 행복이 찾아왔다

행복의 씨앗은 아주 작다

등록 2018.01.31 16:03수정 2018.01.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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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자마자 분가를 하여 회사를 다니고 사업을 하다가 여의치 않아 살던 집을 팔고 2014년 3월에 복산동 어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분가한 지 23년 만이었다. 그 당시 모든 여건은 최악이었다.


물질은 물론 정신까지 황폐했고, 가장이 휘청대니 가족들도 모두 힘들어했다. 무언가 방향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 원인을 따지자면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변화시킬 계기가 필요했고, 그것을 난 어릴 때부터 살던 집에서 찾고 싶었다. 한 마디로 내 인생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씨앗을 심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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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싹들은 쑥쑥 자랐다 ⓒ unsplash


복산동 집에는 텃밭이 있다. 어머니는 40여 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부터 텃밭을 가꾸셨고, 팔순이 넘으신 연세에도 여전히 텃밭을 가꾸셨다. 하지만 노쇠한 몸이 되다 보니 좋아하는 텃밭 가꾸기가 힘이 들었고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씨앗을 심기 쉽게 밭을 뒤져놓으면 어머니는 여러 종류의 채소를 심고 가꾸셨다. 그러다 보니 내 손으로 텃밭에 무언가를 심고 길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부풀어 있었고, 무엇을 심고 길러본 경험이 없는 나는 모종가게에 가서 생명력이 강한 종자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는, 돼지감자 모종을 10뿌리 사서 심었다. 또한, 상추,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 등의 씨도 뿌렸다. 그 땅을 뒤져 씨를 심는 것은, 내 삶에도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따뜻한 햇살을 받은 땅이 상추 싹을 내었다. 처음으로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연두색 조그만 상추 싹은 겨울은 이제 끝이 났고 봄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텃밭으로 가서 싹들과 눈을 마주치니, 어제는 보지 못 했던 오이 싹이 올라왔고, 가지, 방울토마토, 깻잎이 차례로 싹을 내기 시작했다. 아내를 불러 이런 경이로운 광경을 함께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채소와 더불어 함께 싹을 낸 것이 심지도 않은 잡초 싹이었다. 처음엔 잡초인지, 채소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일일이 가르쳐 주면서

"잡초는 빨리 뽑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이 안 된다. 그러고 잡초 때문에 채소들이 영양 공급을 받지 못해 잘 자라지 못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잡초를 뽑았다. 하지만 날이 더 따뜻해질수록 잡초는 더욱 많이 퍼져 자랐다. 그 왕성한 생명력은 나중에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싹들은 쑥쑥 자랐다. 아침마다 텃밭으로 가서 채소들이 자라는 풍경은 내 가슴속에도 생명력이 쏟아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고 난 뒤 텃밭으로 나가니 상추가 눈에 띄게 커져있었다. 비를 머금고 부드럽게 쑥 자란 것이다.

그 날 아침 상추로 쌈을 사서 밥을 먹었다. '봄의 맛이 이런 맛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오이가 달리고 방울토마토가 달렸다.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열매를 맺은 기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과 밴드에 올렸다.

텃밭의 채소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하게 하는 역할도 멋지게 해내었다. 채소 사진을 본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의 텃밭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텃밭이 없는 사람은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텃밭 가꾸기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인생이 즐거워졌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맞는 씨앗을 심고 가꾸었다. 대파와 양파, 겨울초, 등 텃밭의 생명력은 내 정신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온 성경의 탕자와 같은 나에게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끊을 수 없었던 술을 끊게 되었고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되었으며, 아이들과의 소통도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아 절망 속에 빠져있던 내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복산동 집으로 들어오면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삶이 엉망으로 변해버린 원인이 욕심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텃밭의 채소들은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때가 되니 싹을 내고 열매를 내었다. 다 때가 있는데 욕심이 앞서 난 그 때를 기다리지 못 하고 조급하게 행동하여 일을 그르친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인생이 즐거워졌다. 절대 행복은 욕심에서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텃밭 가꾸는 것도 작은 것이지만 즐거웠고, 봄이 되면 아내와 쑥을 캐러 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의미 깊었다.

일을 마치면 저녁에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과거를 반성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지는 시간은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큰 즐거움이었고, 나를 긍정적인 삶의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나의 이러한 변화는 가족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서 보니 배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일찍 죽더라."

어머니가 불룩한 내 배를 보고 한 말이다.

"영이 잘 되는 것 보고 죽어야할 건데."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그러던 어머니가 변화된 내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해 하신다. 효도는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옥동 거지도 당신보다는 나아."

라는 말을 했던 아내도

"아이고 세상에, 당신이 이렇게 멋진 남자였어?"

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엄마, 아빠는 왜 맨날 싸우기만 해!"

라고 했던 첫째는

"우리 가족은 너무 자랑스러워."

라는 말을 하곤 한다. 가족들의 지지는 더욱 나에게 힘이 되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또한, '부정적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니 작은 재미를 찾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거울보고 웃는 표정 짓는 연습을 하여, 찡그린 얼굴을 폈다. 텃밭에다 연못도 하나 만들어 금붕어와 잉어도 넣어 기르고 있고, 큰 고무통에 수련과 미꾸라지를 넣어 기르고도 있다.

혼자 카페에 가서 글을 적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내와 함께 바닷가 카페에 가서 대화를 나누며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다. 앞으로는 둘째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생활은 너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돈이 꼭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며, 행복은 찾으려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가지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계절이 겨울이라 텃밭은 텅 비어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봄의 햇살이 초록으로 가득 색칠할 것임을 알고 있다. 작은 것에서 소중한 것을 발견하게 해준 텃밭. 텃밭 가꾸기를 하며, 내 삶을 가꾸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고자 했던 나의 생각의 씨앗은 작지만 탐스런 열매를 맺게 되었다.
#텃밭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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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에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들꽃은 이름 없이 피었다 지지만 의미를 찾으려면 무한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들꽃같은 글을 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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