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고 질문할 용기를 주는 영화 <공동정범>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의 가장 근접한 재현

등록 2018.02.04 20:17수정 2018.02.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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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 화재 후 망루에서 탈출한 지석준 씨가 남일당 빌딩 난간에서 추락하기 직전의 상황 ⓒ 빈곤사회연대


하나의 커다란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람들은 사건의 중심으로부터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 고통스러운 순간에 멈춰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의든 타의든 끝없이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바퀴의 가장자리가 목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땅을 구를 때 중심에 가까운 연루자들은 단선적인 시간의 평면을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을 것이다.

2009년 1월 20일 일어난 용산참사는 참혹한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인 관계자뿐만 아니라 목격자 모두를 사건에 연루시켰다. 그날을 상징하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었다. 불타는 망루 위에 떠있는 시커먼 경찰특공대의 컨테이너, 거대한 주상복합을 배경으로 여명 속에 치솟는 남일당 빌딩의 검은 연기. 현장에 달려온 사람들에 의해 또 다른 이미지들이 속속 생겨났다. 1년 가까이 벗지 못한 검은 상복을 입은 남편 잃은 유가족. 영정을 앞세우고 애도와 분노의 눈빛으로 거리로 나선 시민들.

그러나 잘 그려지지 않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건의 중심,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압경찰의 사망에 대한 책임자로서 공동정범이 되었고 목숨을 잃은 철거민들의 죽음의 책임은 법정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용산참사가 있은 지 3년이 지난 2012년에 개봉한 <두개의 문>은 사건의 중심에 밀착해 극한상황을 만들어낸 국가와 경찰조직, 그러나 결국 거기 속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참사 9년이 흐른 지금 <공동정범>은 그 중심점 근처 어딘가에서 진동하며 구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는 이 영화를 통해 가장 근접하여 재현되었다.
     
말할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의 영화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에 동참해온 나는 '진상규명'이란 말의 뜻을 알지 못한다. 적어도 법•제도적 인정과 지위 회복만을 일컫는 말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작년 연말 용산참사 9주기 추모위원 및 <공동정범> 배급위원 모집을 위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았다. 여러 편집본을 이미 보았던 터지만 망루 영상이 나오자마자 터져 나온 눈물이 좀처럼 멈추지 않아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9주기 추모행사 어느 곳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에서야 용기를 내 영화관을 찾았다. 사건이나 영화 관계자들과 무관한 한 사람의 시민 관객으로 영화를 보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용산참사의 사후적 연루자로서 생각을 곱씹었다. 나는 용산범대위 활동가였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의 미덕을 새롭게 발견했다. 청산주의와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내게 이 영화는 다시 질문하고 말을 꺼낼 수 있는 가능성과 용기를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제작 과정 자체가 그랬다. 사람들이 말할 수 있게 했고 들을 준비를 하도록 각성시켰다. 김일란, 이혁상, 이 치열하고 집요한 감독들은 참사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연루된 모든 이들이 듣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때 그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리라 확신하게 되었다. 아직 못다 한, 미처 말해지지 않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모두 말하는 것이 올바르고 가능한 일이 아니더라도 나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이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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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공터로 남아있던 용산4구역의 공사가 재개된 가운데 20016년 1월 24일 용산참사 7주기 추모제가 그 현장에서 열렸다. ⓒ 노순택


다시, 질문할 용기를 주는 영화
  
사실 내 질문은 그날의 망루로부터 비껴가 있기도 했고 망루 자체에 있기도 했다. 2009년 1월 19일 당시 나는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빈곤사회연대에 참여하는 빈민조직 중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이 있었으며 집중집회 같은 일정이 있을 때 함께 하곤 했다. 2008년은 이명박이 추진하고 오세훈이 계승한 뉴타운 개발사업이 절정에 다다른 해였다. 역설적으로 철거민운동 역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2,30년 전 몰아쳤던 개발독재광풍에 견줄 만큼 전면적인 광역 개발이 서울시내 곳곳, 그리하여 수도권 전역에서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울 도심에 남아있는 노후 주거지 대부분이 싹쓸이되는 계획이었으므로 철거민들의 저항도 커졌다. 용산 4구역은 2008년에 구역 지정되어 개발이 본격화되었는데 그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서울 부도심 형성을 기치로 내건 대규모 개발사업의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4월 용산4구역 상공세입자철거민대책위윈회가 구성되었다. 발대식 이후 전철연 주최의 집중집회는 진행된 바 없었다. 망루가 지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통상 전철연의 망루 농성은 오랜 시일을 끌게 마련이니 상황을 지켜보자는 안일한 생각이 전부였던 것 같다. 망루 농성은 인명피해로 이어진 전례가 많았으나 '운동'은 그 피해자들을 '열사'라 불렀고 부상자나 구속자들에게는 별다른 이름이 없었다. 낮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온 동료가 '심상치 않다'고 말하며 용산에서 멀지 않았던 사무실에서 대기하겠노라 했을 때 나는 저녁 강의 일정 후 다음날의 일정을 위해 집으로 갔다.

다음날, 그러니까 2009년 1월 20일 아침 7시 20분경, 현장에 있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불이 크게 났고 사람들이 죽고 있다고, 아니 처음에는 다 죽었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덜덜 떨며 그의 말을 받아 단체문자를 거듭 수정해 발송하는 한편 현장으로 바로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재개발로 인해 변두리 임대주택으로 밀려난 주민들을 출근 전에 만나기 위해 가던 길이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였다. 한 명을 인터뷰하고 나와 더는 진행할 수 없다 싶어 중대용산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355일 이후 장례를 치를 때까지 그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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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4일 용산4상공철거민대책위원회가 발족식을 진행했다. 용산참사 생존자인 이충연 위원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 빈곤사회연대


수없이 질문했다. 나는 왜 그 소식을 듣고 나서도 아르바이트를 한 건 하고 갔는가. 당장 달려갔다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날 동료의 우려를 듣고 나는 왜 그곳에 함께 가지 않았는가. 위험성을 예견했다면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 처음 망루 농성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로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까. 광폭한 개발에 대해 그렇게 거리에서 경고하고 다녔으면서 점점 뾰족한 곳으로 내몰리는 개발 지역의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는 없었을까. 질문하고 합리화하는 일도 반복되었다. 나는 개입능력이 없었잖아. 나는 젊은, 여자잖아.

또한 그 질문과 관련된 집중 활동을 하게 되었다. "왜 망루인가요?", "망루농성을 왜 (함께) 하게 된 건가요?" 참사 피해자들을 향한 여러 차원의 공격자들도 같은 질문을 했으므로 그것은 방어의 의미이기도 했다. 그 문제에 관해 당사자를 대변해(사실은 그들의 얘기를 정확히 전한 것이 아니니 그것을 대변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글을 쓰고 선전물을 만들어 알리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 직접 묻기도 했다. 안쓰러워 물은 적도 있고 술김에 항의조로 물어 시비가 붙은 적도 있다(정말로 물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묻지 못했다).

그건 나에 대한, 내가 가담하고 지지해온 '운동'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답을 찾으려면 폭력적인 개발에 저항하는 뭔가 다른 양식의 운동과 연대의 가능성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수 백 명의 철거민들이 한데 모여 즐겁게 구호를 외치고 노래도 부르며 집회와 행진을 했던 2008년 10월 주거의 날과 한때 '골리앗'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망루가 세워진 2009년 1월 19일은 내게 완전히 다른 시대적 사건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에 고양시 풍동, 오산시 세교에도 있었고, 용산참사가 있은 후 농성을 해제한 용인 어정에도 망루는 있었다. 오랜 세월 세입자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 법제화되는 과정에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나는 헤매며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공동정범>이 묻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답을 찾아가라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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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세계주거의 날 주거권공동행동.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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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8일 주거권공동행동 행진을 함게 하는 순화동 철거민 지석준 씨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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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6 국제행동의 날에 주거권운동네트워크는 주거권행동을 조직하였다. 이 사진 안에는 용산참사 망루농성으로 구속되었던 철거민, 용산4구역 철거민회원들, 그리고 고 이상림 열사의 모습이 담겨있다.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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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6 국제행동의 날 주거권행동_ 이 사진에는 용산참사 생존자인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 용산4구역 철거민 김성환,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이원호 사무국장 등의 모습이 담겨있다. ⓒ 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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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6 국제 행동의 날 주거권 공동행동 "개발보다 인간을" ⓒ 빈곤사회연대


질문과 응답의 가능성을 여는 이 영화가 제시하는 문법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권리 밖으로 내몰려 쩔쩔매는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 권리를 둘러싼 일상적 인식과 훈련이 부족한 우리는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될 계기에서 휘청이고 갈등한다. 갑작스럽게 삶터나 일터나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내몰린 사람들의 억울함은 법•제도상의 미약한 지위보장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턱없이 부족한 물질적 보상에 분노에 휩싸인다.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몰두하게 된다. 힘을 합쳐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사건 사고나 또 다른 갈등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강조해야 할 것은 밀려나고 쫓겨나 막다른 길에 몰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는 좁다는 것이다.

영화 <공동정범>에는 그 모든 갈등이 담겨있지는 않다. 그러나, 용역깡패와 새까만 경찰들이 좁혀오는 포위망 안에서 망루 4층으로 내몰린 참사 생존자의 말에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여러 차원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그보다 더 높은 데가 있었으면 올라갔을 거예요."

그들은 극심한 공포 속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앞다투어 망루를 탈출했다. 극한상황에서의 미담을 기대했는가? 나는 그런 미담을 앞세운 참사의 후일담에서 이중적인 감정을 느낀다. 망루를 짓는 순간부터 화재 발생까지 만 하루 동안 용역과 경찰의 위협에 시달린 사람들이었다. 추위와 공포에 얼어붙은 이들이 쉴 새 없는 물대포를 맞아가며 소화기 분말이 자욱한 망루 안에서 새까만 특공대가 타고 있는 컨테이너의 위협을 목도하였고 불이 났다. 그 누가 어떤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망루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4층의 창문에서 마구잡이로 자기 몸을 던졌고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며 손에는 모두 같은 상처가 났다.

애초에는 피해자들 간의 갈등을 다루려면 좀 더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가 먼저 탈출하고 화재 발생과 탈출의 순간에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거듭 보면서 깨달았다. "그게 아니다"라는 것은 이미 그들 스스로 알고 있지만 그들이 그 순간의 고통과 번민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절체절명의 상황에 내몰린 순간의 선택이 그들 눈앞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각성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우리 모두는 아니었을까. 아픔과 분노의 중심점에서 응어리를 풀 가능성을 보아야 앞으로 나아가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 이야기를 그들은 어디에 가서 할 수 있었을까.
   
<공동정범>은 그들을 말할 수 있게 했다. 이 영화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다시금 사건의 '중심'을 확인케 하고 '운동'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영화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던 내게 놀라운 일이었다. "영화가 뭘 할 수 있어?"와 동시에, "이런 영화를 만들 거면 제대로 해야지"라는 이중잣대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파고든 이 사람들의 뚝심이 놀랍다.

<공동정범>은 묻는다. 당신,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용산참사에 대해. 피해자들에 대해. 혹자들은 <두개의 문>에 비해 진상규명을 위한 정보나 단초가 보이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두개의 문>이 당시의 진압작전이 어떤 비극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면 <공동정범>은 농성중인 철거민들이 어떻게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몰려갔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 순간,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정보를 누가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수많은 말과 표정, 눈빛에 너무 많은 정보가 담겨 있지 않은가.

혹자들은 단결과 분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혹평을 하기도 하나 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더, 어디까지 보여줘야 당신의 상상력은 그제서야 발동을 하는가요?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쓴 채 옥살이를 하고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공포, 고통 속에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도 선동되지 않는다면 불감증이 아니신가요?

<공동정범>은 인터뷰가 대부분인 영화다. 두 시간 가까이를 인물들의 말로 끌어가면서도 높은 몰입도를 주는 구성력이 놀랍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영화가 있었을까 싶다. 이 영화를 통해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각자의 감상은 제각각일 것이라 생각된다. 지난 1월 29일 압구정CGV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관객이 총 네 명이었다. 각기 다른 감상평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 한 명씩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은 확장가능성이다. 용산참사의 피해자 몇 사람을 특정하여 특정 시기의 특정 기억을 둘러싼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무한히 확장 가능하다. 이것은 참사의 피해자를 바라보는 관습화된 시선 속에서 발생하는 고통 간의 차별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 시선 자체가 자본주의적 관계의 위계를 품고 있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누가 더 피해가 큰가 하는 값어치 척도는 노골적으로 말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참혹한 일을 함께 겪은 이들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재난대응은 일상의 훈련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목격했다. 그 훈련이란 비단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맺음,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포함할 것이다. 이 영화가 담은 이야기들은 기존의 사회적 가치나 관계의 윤리 문제 등에 있어 경계를 허무는 상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공동정범>은 용산참사가 과거에 닫힌 사건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사건으로서 확장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열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상상할 때 그 가능성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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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6일 주거권공동행동 행진 모습.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은 용산참사 생존자 김재호 씨다. 역시 공동정점으로 수감되어 있는 동안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만화로 그려 <꽃피는 용산>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용산참사 이후 용산4구역 현장 투쟁 당시 위원장을 했던 노안나 씨다. 이 참사의 피해자 범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된다. ⓒ 빈곤사회연대


우리는 모두 이 사건의 중심으로부터 퍼져 나온 동심원에 속한 연루자라고 생각해보자. 그 외연이 깎여나가거나 너무 많은 이물질이 달라붙거나 하면 그 중심 또한 이동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점은 사건의 중심에서 홀로 튕겨져 나가던 사건 당사자들을 다시 중심으로 모아내고 이 동심원의 외연을 넓히는, 즉 파장을 넓히는 대중적 호소를 강력하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정범> 상영관이 줄고 있다고 한다. 안 보신 분들 어서어서 보세요. 여러분 여러 번 보세요. 달리 보입니다.   

"피해의 진원지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일수록 피해의 진실에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하려 노력하고, 피해의 진원지에 가까운 이들일수록 용기를 내 가혹한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증언자(표현자)는 '표상의 한계'를 넘어서는 증언(표상)에 도전해야 하고 독자는 스스로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려 애써야만 한다. 더없이 어려운 일이지만, 참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다."
- 서경식, 시의 힘 중.  

#공동정범 #용산참사 #연분홍치마 #김일란 #이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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