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할 때 나는 가면을 써야 한다

[김찬곤의 말과 풍경 2] 두식이의 '가면'과 정훈이의 '혼밥'

등록 2018.02.02 14:04수정 2018.02.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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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한 아르바이트 전문업체가 대학생 2천200명에게 물었다. 이 가운데 54.1%가 방학뿐만 아니라 학기 중에도 일을 한다고 답했다. 이는 2016년보다 10.4%가 증가한 수치이다. 방학 중에는 하루 6시간~8시간 일하는 학생이 많고, 학기 중에는 4시간~6시간이 많았다.

아침 첫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은 거의 다 알바를 하는 학생이다. 오후 수업에도 결석이 잦은 학생이 있다. 친구에게 물어보면 알바를 한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은 문자를 보내 따로 통화를 하고 직접 만난다. 수업에 꼭 들어오라고는 하지 않는다. 대신 학점을 포기하지는 말고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연락을 끊지는 말자고 한다.

대학생 54%가 일을 한다면 둘 가운데 하나는 공부하면서 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일하면서 겪은 일을 쓴 글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신문과 잡지와 방송이 있는데도 일하면서 공부하는 마음을 쓴 글이나 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작년에 광주대학교 1학년 학생 58명 글을 묶어 책으로 출간했다.

책 제목은 <우리네 마음속에는 이야기가 산다> (상상의힘)이고, 이 책 1부 '일하면서 공부하고'에 실린 글 여섯 편이 아르바이트하면서 겪은 일을 쓴 글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아르바이트하면서 겪은 일이 활자로 출판된 것이다. 이 글 여섯 편에 우리 학생들의 고단한 하루와 서러움과 외로움이 담겨 있다. 아래 시는 광주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1학년 김두식이 쓴 시 '월화수목'이다.

월화수목
오늘은 알바를 가는 날이다.
알바를 할 때 나는 가면을 써야 한다.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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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 학생 58명 글, 김찬곤 엮음, 《우리네 마음속에는 이야기가 산다》(상상의힘, 이 책은 2014년부터 2017년 1학기까지 광주대학교 학생들이 쓴 글 653편 가운데서 가려 뽑아 58편을 엮었다. ⓒ 상상의힘


정훈이의 혼밥

타지에서 온 학생들은 거의 다 기숙사에서 산다. 한 방에 서넛이 살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잘 맞아야 하고, 최소한의 예의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만의 공동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 글을 보면 그게 잘 안 될 때도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한 학기를 보내면 혼자 나가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해 원룸을 얻는 학생도 있다. 광주대학교 전기전공학과 1학년 정훈이가 쓴 시 '밥'이다.

혼자 아침밥을 먹는다.
학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서 혼자 점심을 먹는다.
알바를 간다.
끝나고 집에 오면 깊은 밤.
혼자 저녁을 먹는다.
내일도 혼자 먹는다.

학생들 글을 받아 보면 혼자 살아가면서 겪은 일을 쓴 것이 많다. 아침에 오른쪽 아랫배가 아파 혼자 병원에 가 맹장 수술을 했는데,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전화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하루 내내 속이 안 좋았다. 어제도 라면 오늘도 라면, 이렇게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그때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잘 먹고는 있느냐?" 전화를 끊고 쭈그려 앉아 엉엉 울었다는 시를 읽었을 때는 한동안 먹먹했다. 한 학생은 이렇게 시 끝을 맺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맞추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견뎌 보려 한다. 이 낯선 세상에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윗글에 나오는 학생 이름은 가명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광주드림에는 실었습니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알바 #혼밥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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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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