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무현 정부만? 박정희 때도 교과서에서 '자유' 뺐다

과거 국정교과서 분석해 보니... 박근혜 정부도 '민주주의'라고 적어

등록 2018.02.04 17:47수정 2018.02.0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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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월 3일자 보도 내용. ⓒ 인터넷 갈무리


"과거 3차 교육과정(1973~1981)과 5~7차 교육과정(1987~2009)의 국정 국사 교과서는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교과서 집필 기준이 처음 생기면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조선일보> 2월 3일자 보도)

"교육부까지 나서서 왜곡된 역사적 관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틈만 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 궁리만 하고 있는 것 같다."(자유한국당 4일 논평)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위와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4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들과 기자가 과거에 나온 국정교과서를 입수해 직접 분석한 결과다.

앞서 지난 2일 2020학년도부터 중·교교생이 배울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몇몇 매체와 보수 야당에서는 '헌법적 가치 훼손'이라고 주장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부 이전의 국정 국사 교과서는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단원명 대부분 '민주주의'라고 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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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 시절 <역사> 교과서. 소단원 명까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고 적혀 있다. ⓒ 윤근혁


먼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등 40여 년간에 걸쳐 나온 국정교과서의 대단원과 소단원의 제목부터 살펴 봤다(표 참조). 이 대단원과 소단원은 교과서 본문보다 2~5배가량의 큰 글씨로 표기됐다.

단원명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 전까지 모두 '자유민주주의'란 용어 대신 '민주주의'란 말을 썼다. 오히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때 나온 교과서에서만 '자유민주주의'란 용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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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민주주의' 서술 단명원 조사표. ⓒ 윤근혁


다음엔 본문 내용을 살펴봤다.

박정희 정부 시절 3차 교육과정에 따라 나온 교과서 본문에 '자유민주주의'란 말은 없었다. 오히려 단원 개요(295쪽)에는 다음처럼 적었다.

"우리 사회는 6.25 사변 후에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교과서는 본문 학습개요(297쪽)에서 "안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린 독재 정치의 시련이 닥쳤다"고 적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 4차 교육과정에 따라 나온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이 교과서는 '2. 민주주의 발전의 새 전기'(168쪽) 단원 본문에서도 '민주주의'란 말을 썼다. 다음 페이지 '(1) 민주주의의 성장'이란 소단원에서도 본문에 "(자유당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마저 함부로 어기는 처사와..."라고 썼다. 자유민주주의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자유'라는 말도 '자유당'이라는 고유 명칭을 쓸 때만 나왔다.

박근혜 정부도 못 버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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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대통령 시절 고교<역사> 교과서 서술 내용. ⓒ 윤근혁


노태우 정부 시절에 나온 5차 교육과정 교과서 중 '민주정치의 발전' 단원의 해당 부분(171쪽, 181~182쪽)을 살펴 본 결과 '민주(주의)'란 말은 9번(단원명 포함) 나왔고, '자유민주주의'란 말은 1번 나왔다. 그나마 이 용어는 민주당을 설명할 때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회·경제적 발전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였다.

특히 이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강조하며 '복면집필'을 주도한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이 참여해 만든 것이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나온 6차 교과서에서는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 단원의 해당 부분(202~203쪽)에서 '민주(주의)'는 5번(단원명 포함), '자유(민주주의)'는 2번 나왔다.

'자유'란 표현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에 나왔다. 또 다른 '자유' 표현은 "이승만 정부는... (중략)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반공을 강조하였다"는 부분에 나온다. 하지만 이 내용 뒤 이승만의 '독재정치' 비판 내용으로 이어진다. 이승만을 비판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였다.

이후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 나온 교과서들은 이전 정부 교과서 표현방식대로 '민주주의'란 표현을 이어갔다. 2007년 처음 생긴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시절 공고되고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적용된 2009 교육과정부터 '민주주의'란 표현이 '자유민주주의'로 바뀐다. 이명박 정부는 집필기준 작업 과정에서 기존에 쓰인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변경했다.

당시 집필기준 작업에는 이명희 교수 등 이른바 '뉴라이트' 인사들이 참여했다. 한국현대사학회 활동을 주도한 이 교수는 '친일독재 미화' 지적을 받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대표 집필한 인사다.

재미있는 것은 편찬기준에서까지 '자유민주주의'로 쓸 것을 강요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민주주의'란 말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쓰고 있다는 것.

'Ⅶ.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 대단원의 중소 단원 제목이 '자유민주주의'는 1번 나오는 반면 '민주주의'는 3번('민주화' 1번 포함) 나왔다.

"'민주주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교과서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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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낸 이른바 '박근혜 국정교과서'(고교<한국사>) 단원과 소단원 페이지. '민주주의'란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 윤근혁


이런 현상은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관련 페이지 246쪽과 276쪽, 278쪽을 살펴 본 결과 '민주주의'란 표현이 7번('민주' 포함) 나왔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은 4번('자유' 포함) 나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교과서 278쪽에 실린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표로 그린 부분이다. 집필진은 우리나라가 22등을 차지한 이 표를 교과서에 삽입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조사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해 작성하는 지수의 정식 명칭은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다. '자유민주주의 지수'라고 쓸 경우 전혀 다른 자료가 되기 때문에 표현을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를 분석한 역사 교사들은 "박정희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교과서 단원명과 본문에 일관되게 써 온 표현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라면서 "따라서 노무현 정부 때 기존 교과서의 내용을 '자유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고쳤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고 지적했다.

백옥진 역사교사모임 회장은 "복지와 인권, 자유를 포괄하는 민주주의란 용어를 이명박 정부 들어 뉴라이트 세력의 요구에 따라 갑자기 자유민주주의라고 협소화시킨 것"이라면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교과서 용어인 '민주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로 쓰자는 것은 국제 추세에 어긋나는 주장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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