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똑 부러지게 좀 하자

[주장] 성장정책 둘러싼 도돌이표 논쟁 끝내야

등록 2018.02.05 11:51수정 2018.02.05 11:51
0
원고료로 응원
뫼비우스의 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둘러싼 공방을 보고 있으면 끝없는 맴돌기를 낳는 이 구조가 떠오른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세력은 임금을 올리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이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려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간 정부가 기업투자를 전폭 지원했어도 그 이윤이 가계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반작용으로 소득주도성장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눈과 귀를 막고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쪽이나, 그 반쪽짜리 주장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정부나,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서민 입장에선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낙수효과' 없는데 도돌이표 주장으로 발목 잡는 세력

소득주도성장은 분명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자들이 추구해 온 이윤주도성장은 기본적으로 '낙수효과'가 전제돼야 효용이 있다. 기업이 많은 이익을 얻으면 그 상당 부분이 자연스럽게 가계로 흘러내린다는 낙수효과는 그러나 고도성장기가 지난 현실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민소득(NI)에서 자본소득에 비해 노동소득의 몫이 점점 줄어드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하게 나타난다.

국내 대기업들이 수출로 엄청난 돈을 벌어도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과 노동자에게는 그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 중·저소득층의 실질수입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뒷걸음질을 하면서 소비가 위축되니, 경제전반의 구매력도 떨어지고 투자와 일자리도 늘지 않는다. 직장이 있는 사람도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처지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주거, 보육, 교육, 의료 등 생존의 필수 영역에서 복지 수준마저 낮으니 많은 젊은이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상, 즉 양극화는 경제성장의 잠재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공동체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세계적으로도 사회 갈등이 심하고 강력범죄와 혐오범죄가 늘어나는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곳이다. 엽기살인, 여성혐오범죄가 빈번해지고 있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더 심해지면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자 공격 등 '단순무식한' 정책으로 무장한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판에 창궐할지 모른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을 끌어올려 내수 소비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도 늘어나게 만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소득불평등이 초래할 정치·경제·사회적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잠재력이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고, 주거와 보육 등 필수영역의 복지를 확충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 질서를 잡아주는 정책은 이 시점에 꼭 필요하다.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와 재벌의 경제력집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업과 가계, 가계와 가계 사이의 과도한 분배 격차를 줄이는 건 '비정상의 정상화'이자 경제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증세 필요성 솔직히 설명하고 정책 과감히 추진해야  


그런데도 '기업 투자 위축',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 파탄' 같은 반론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데는 정부의 어정쩡한 자세에도 원인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을 덜 받도록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재정 투입을 크게 늘릴 수밖에 없는데, 증세에 대한 정부 태도는 아직 불투명하거나 소극적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약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6%에 한참 못 미치고,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약 26%로 OECD 평균인 34%와 더 큰 격차를 보인다. 이는 '곳간'의 규모가 작아서 정부가 제 할 일을 못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김동연 부총리는 "조세부담률 20%를 넘기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

소득주도성장정책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부자증세'를 먼저 단행해야 한다. ⓒ flickr


정부는 이제 국민 앞에 좀 더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앞으로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먼저 법인세, 소득세, 부동산 보유세 등을 올리는 '부자증세'를 단행해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들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이어 국민이 그 혜택을 피부로 느낀 후엔 중산층도 세금을 더 내는 '보편 증세'로 나아가야 한다. 부자증세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미 호의적이고, 보편적 증세 역시 그 결실이 납세자에게 돌아온다는 확신만 있다면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정부의 솔직하고 의연한 결단만 남았다.

10여 년째 저성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 경제는 이대로 간다면 저출산·고령화 추세와 함께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이런 엄중한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소득주도성장정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소득으로 기업의 매출을 올려주고,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며, 이로 인해 노동자·자영업자의 소득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소득불평등이 줄고, 사회갈등이 완화되고, 정치적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미 사라진 낙수효과를 내세워 빛바랜 이윤주도성장을 고집하는 세력의 눈치는 볼 필요가 없다. 솔직하고 투명하게 국민을 설득해 협조를 얻고, 과감하게 추진해서 성과를 내면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소득주도성장 #문재인 #최저임금 #낙수효과 #경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52세 조기퇴직, 파란만장 도전 끝에 정착한 직업
  2. 2 '875원짜리 파 한 단'은 어디에... "윤 대통령, 세상 물정 몰라"
  3. 3 "대통령이 이상하다" '조선일보' 불만 폭발
  4. 4 "부모님은 조국혁신당 찍는다는데..." 90년대생 스윙보터들의 고민
  5. 5 한국 반도체 주저 앉히려는 미국, 윤 대통령 정신 차려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