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5만여명, 후쿠시마는 아직도 '전쟁중'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15] 후쿠시마, 갈 수 없는 고향

등록 2018.02.07 10:54수정 2018.11.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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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마을엔 버려진 소들만 있었어요. 그것 외엔 아무런 소리가 없었고요. 마치 세상이 끝장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람은 사라졌지만, 벚꽃은 계속 예쁘게 피고 있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 후인 2012년 봄, 후쿠시마현 후타바군 도미오카마치(읍)에 다녀온 구호단체 무스부(MUSUBU)의 미야모토 히데미(33·여) 대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도미오카마치의 '요노모리(밤의 숲)'는 사고가 난 원전으로부터 7킬로미터(km) 떨어진 곳에 있다. 7년이 지난 2018년 현재도 이곳엔 사람이 살지 못한다.


방사능 오염 속에 핀 요노모리의 벚꽃 


미야모토 대표는 도미오카 출신인 어머니와 다른 고향주민들을 위해 당시 한 사진작가와 함께 요노모리에 다녀왔다. 정부의 출입허가를 받고 방호복을 입어야 들어갈 수 있는 이 지역은 방사선 수치가 높아 최대 4시간만 체류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찍은 사진으로 후쿠시마현과 도쿄 주변 간토지방 일대를 돌며 이동전시회를 열었다. 황급히 탈출해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후쿠시마 피난민들에게 사진으로나마 고향을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는 쓰나미에 의해서 동네 하나가 다 망가지거나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요, 고향에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재앙을 겪고서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렇게 놀랍지 않아요."


지난해 5월 26일 서울시의 청년지원기구인 청년허브의 '두근두근 설레임으로 후쿠시마를 잇다' 강연에 나온 미야모토 대표는 격앙된 어조로 설명을 이어갔다. 서울 은평구 통일로의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 강연에는 무스부의 스에나가 사야카(36·여) 부대표도 함께 나와 일본어 통역을 통해 40여 명의 청중과 대화했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후쿠시마현 남쪽 바닷가, 서울의 2배 면적에 인구는 35만 명밖에 되지 않는 이와키시 출신인 이들은 원전사고 직후 무스부를 만들어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피해주민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이와키시는 원전에서 50km 떨어진 곳이어서 재난의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원전 지역 피난민이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방사능 오염 등의 우려로 외부에서 물자가 잘 들어오지 않아 시민들이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 무스부는 트위터 등을 통해 필요 물품을 구해서 혼자 사는 노인 등 취약계층을 적극 도왔다고 한다.


떠나자는 아내와 그럴 수 없는 남편, 이혼도 많아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엄마는 아이가 걱정되기 때문에 후쿠시마를 떠나고 싶어한 반면 남편은 직장이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죠. 재난 이후 개인적인 상황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이혼한 가정이 많았습니다."


스에나가 부대표의 회고다. 그는 "우리는 상상도 못 했던 사태 속에서 여전히 정답을 모르고, 정답을 찾을 수도 없지만 날마다 고민하고 답을 모색하면서 살고 있다"며 "이런 상상도 못 했던 사태는 우리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여러분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형 자연재해와 인재가 만든 복합 재난 


이들이 전한 대로, 후쿠시마 원전 주변 지역은 돌아갈 수 없는 폐허가 됐다. 2011년 3월 11일 도호쿠(東北) 지역을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해일)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당시 총리였던 간 나오토(72)의 표현대로 전례 없는 대형 자연재해와 대비를 제대로 못한 인재가 겹친 복합재난이었다.

규모 9.0의 강진과 15미터(m) 높이의 쓰나미는 후쿠시마현 일부를 포함한 일본 동북지역을 초토화하면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원 상실(스테이션 블랙아웃)을 불렀다. 이는 원자로의 노심용융(멜트다운)과 함께 1〜4호기의 연쇄 수소폭발로 이어졌고,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재앙을 낳았다.








'일본 원전은 안전하다'고 되뇌었던 도쿄전력과 정부는 사고 수습에 무능했고, 정보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 예를 들어 원전의 비상전원까지 끊겨 원자로에 냉각수를 공급할 수 없다면 소방차로 바닷물을 끌어다 붓는 조치라도 해야 하는데, 시미즈 마사타카(74) 사장 등 도쿄전력 수뇌부가 원자로 영구손상을 우려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이어졌다.


한 부지 안에 있던 6기의 원자로 중 오래된 순서대로 4기가 터졌고, 이 중 4호기는 가동 중단상태라 노심용융이 없었는데도 연쇄 폭발한 것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낡은 원전의 위험성'과 '다수호기의 동시사고 가능성'을 보여 준 사례로 특히 주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을 연장해서 가동하고, 부산과 울산 일대의 고리원전본부에 원전 10기가 밀집 건설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경고의 의미가 컸다.


7년 지난 지금도 원자로 내부 접근 불능, 오염수는 '콸콸' 







후쿠시마 참사는 7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평가된다. 정상적으로 수명을 다한 경우의 폐로도 30~40년이 걸리는데,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아직 사고 상황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박종운(54) 교수는 지난 3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후쿠시마 사고로 녹아내린 원자로 안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상태"라며 "로봇을 집어넣어도 고장 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그 안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없어 폐로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계획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에서 인근 바다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도 여전히 '통제불능'이다. 교도통신 등 일본 국내외 보도를 종합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 원자로 주변에 흐르는 약 1천 톤(t)의 지하수 중 수백t이 고농도 오염수와 섞여 매일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가 후쿠시마 근해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수입 금지를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무능과 무책임,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형 민간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2011년 3월 11일 쓰나미로 인해 원전의 전원이 상실되는 사고가 났을 때 정부에 즉각 정보를 제공하고 사고수습에 나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비용감축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던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은 사고 발생 이튿날 지방 출장에서 복귀한 후 한 달 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수주입 등에 대한 결정을 제때 내리지 않고, '노심용융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라' 등 사고은폐에 급급했던 그는 여론의 비난에 시달리다 그해 6월 퇴진했다.


사고 발생 1년 6개월 후인 2012년 9월에는 일본 원자력시설의 안전 규제를 담당하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보안원이 폐지됐다. 닛폰TV 등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폐지 당시 원자력안전보안원장은 "지금까지 원전 안전신화에 안주해 온 것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로 인해 규제 상의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원안위는 사고 이전 '일본 원전시설은 안전하기 때문에 현행의 대비책에 특별히 추가적인 대책을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평가해 사업자들이 안일하게 대처하도록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탈원전 정책 폐기, 재난지역 해제하는 아베 정권 


그런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베 신조 정권의 정책이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지난 2012년 12월 총선을 통해 재집권한 후 민주당 정권이 세웠던 '2030 원전 제로' 계획을 폐기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 직후 가동 중단한 원전을 2015년부터 단계적으로 재가동하고 있다. 또 지역사회 재건을 목표로 원전 재난지역의 피난지시를 서둘러 해제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반경 20km 이내인 가쓰라오무라에 내린 피난 지시를 2016년 6월 12일 북동쪽 일부만 제외하고 대부분 해제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난 지시 해제는 2014년 4월 다무라시 미야코지 지구, 같은 해 10월 가와우치무라 일부 지역, 2015년 9월 나라하마치에 이어 네 번째다. 일본 정부는 방사성 물질 제거 작업이 완료되고 주민 생활을 위한 환경이 어느 정도 조성되는 등 피난 지시 해제 기준을 충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 국내외 탈핵활동가들은 이 조치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16년 11월 후쿠시마 원전에서 약 28~47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타테 마을을 집중 조사하고 돌아온 다국적 그린피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팀에 따르면, 피난지시 해제로 귀향할 이타테 주민들이 향후 70년 동안 받게 될 공간 방사선의 누적 피폭량은 39~183mSv(밀리시버트)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자연방사선과 사고 직후 피폭량, 귀환 후 내부 피폭량 등을 제외한 공간방사선 피폭량만을 고려한 수치로, 일생 동안 매주 흉부 엑스레이(X-ray)를 찍으며 사는 것과 비슷한 양이라고 그린피스 측은 설명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자연방사선(공기, 지표, 음식, 건축물 재료 등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방사성물질이 내뿜는 방사선) 외의 추가 피폭을 연간 최대 1mSv(밀리시버트) 이하로 제한해 관리한다.







장다울(40) 그린피스 한국사무소 선임캠페이너는 "일본 정부가 설정한 제염 목표는 시간당 0.23마이크로시버트인데, 한 지역의 평균적인 방사선 수치가 낮아져도 지역 안에서 방사성 물질이 평균 수치의 100배가량 농축돼 있는 '핫스팟'이 존재한다"며 "이타테 마을에 갔을 때 비닐하우스 옆을 따라서 핫스팟이 주루룩 측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반경 내에 방사성 물질이 고농축 돼 피폭당할 가능성이 있는 '핫스팟'이 있는데도 이에 대한 정보제공 없이 안전하다며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해제하게 되면 해당 지역에서 떠나온 주민들이 매달 10만 엔(한화 약 100만원)씩 받고 있던 주거 지원금도 1년 뒤 끊기게 된다. 장 캠페이너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없는 피난민이 경제적인 이유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문제"라고 비판했다.

후쿠시마현청에 따르면 원전사고로 인한 피난민은 사고 발생 1년여 후인 2012년 5월 16만4865명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2017년 10월 현재 5만4579명이 여전히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후쿠시마 #일본 #원전 #탈핵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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