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달러 주고 '출생증명서' 산 미국, 우리나라는?

[지도와 인간사 8] 강리도,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하다

등록 2018.02.13 13:50수정 2018.03.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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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강리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하여 좀 생각해 보고 시간이 남으면 지명 탐험을 이어가겠습니다.


해외에서 강리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오늘 두어 사례를 좀더 살펴 봅니다. 아래 책 표지를 봅니다(이미지가 커서 둘로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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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판 지도 첩 지리상의 발견과 강리도 ⓒ amaz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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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출판 지도 첩 지리상의 발견과 강리도 ⓒ amazon.com


책 제목이 Atlas de los descubrimientos(아틀라스 데 로스 데스쿠브리미엔토스), 스페인어로서 영어로 옮기면 Atlas of the discoveries. 그러니까  '지리상의 발견'을 보여주는 지도첩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스페인의 역사 학자 Mauricio Obregon Andreu(마우리시오 오브레곤 안드레우).

이 책의 표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지리상의 발견은 유럽인의 전유물 아닌가요? 모든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모든 역사서와 백과 사전이 그렇게 적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 책은 서양 지도 대신에 한양에서 1402년에 만들어졌다는 강리도를 표지에 내세웠을까요? 더구나 스페인은 포르투갈과 함께 지리상의 발견 및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주역인데?

세계적 지리 지식은 15세기부터 이루어진 서양의 대항해 및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하여 확장되었다고 우리는 배워왔습니다. 이러한 통념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강리도입니다. 서양에 의한 지리상의 발견 훨씬 이전에 나온 강리도에 초광역의 지리 정보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역사 책은 거짓말을 해도 장소는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저자 잭 웨더포드가 한 말입니다. 지도는 장소를 담은 그림입니다. 역사책에서는 1488년 처음으로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했다고 적혀 있더라도 그보다 86년 전에 만들어진 강리도에 그게 이미 그려져 있다면 그 책은 설득력을 상실하고 말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책이나 담론보다 지도의 증거 능력이 견고합니다. 강리도로 인하여 세계사가 다시 쓰여지고 있다면 그런 까닭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강리도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 세계 지도의 역사 속에서 강리도가 차지하는 획기적인 위치
- 강리도가 몽골 세계 제국의 역사를 반영하는, 매우 희귀한 거울이자 시각적 사료라는 점


강리도는 실로 몽골 세계 대제국의 지적도이자 토지 대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몽골 제국의 역사야말로 최초의 세계사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 맥락 속에서 강리도의 가치를 음미해 봅니다.

미국에서 판을 거듭해 오고 있는 <세계 역사 탐험(Voyages in World History)>(예일대 Valerie Hansen, 캘리포니아 주립대 Kenneth R. Curtis 공저)는 흥미로운 세계사 연표를 싣고 있습니다. 예전에 잠깐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좀 유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강리도에 담긴 세계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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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연표 강리도 수록 ⓒ Voyages in World History


도표 중에서 동아시아 부분(푸른 횡선)에 주목해 봅니다. 범위를 더욱 좁혀서 1350~1450년(100년 기간)에 집중합니다. 세 가지 사건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1368 명나라가 건국되다
1402 한국에서 강리도가 그려지다
1405-1433 정화 항해


강리도 제작을 명나라 건국과 정화 대항해와 병치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강리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는데 요지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400년대 제작된 첨단 지도. 1400년 경 한국의 지도 제작자가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몽골 통치하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문화 교류 덕분에 많은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중략)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지도는 결함이 많다. 지나치게 한국은 크고, 아프리카는 작으며, 인도는 함몰되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지도는 유라시아 전체를 그린 최초 지도 중의 하나이다. 이슬람 세계와 유럽을 포괄하고 있는 이 지도는 몽골의 유라시아 통일이 지리 지식의 극적인 증가를 가져왔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문헌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춰 생각해 봅니다.

1350~1450년의 100년 기간 중에는 조선 왕조 창건(1392), 한글 반포(1446)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연표는 조선 창업 및 한글 반포는 싣지 않으면서 강리도는 기록하고 있을까요? 세계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사 속에서는 강리도의 사료적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줄여 부르고 있는 강리도의 원 제목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길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역대국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빼고 지도 이름을 줄여 보면 혼일강리지도→혼일강리도→혼일도가 됩니다. '혼일'이 핵심입니다. 땅을 혼융하여 하나로 합쳤다는 뜻입니다. 이 두 글자에 정수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몽골 세계제국의 독특한 세계관이자 이데올로기입니다.

그 내역을 풀어 보면, 중화 세계와 비중화 세계,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방, 동서남북, 상하좌우, 종교의 차이 등 그 모든 경계를 허물고 흔들어 하나의 세상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 세계상을 담은 지도가 바로 혼일강리도입니다. 이 점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왜 강리도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지를 알게 됩니다. 혼일 강리도는 우리가 앞으로 이루어야 할 세상의 묵시록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리도 이름에 담긴 뜻

강리도상에서 224개의 서역 지명을 해독(추정 포함)한 스기야마(교토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나라 시기의 문헌 기록을 살피다 보면 금방 이 시대의 독특한 용어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바로 '혼일'이라는 단어이다. '혼연일체'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혼연일체'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걸 가장 확연히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지도이다.

역사상 유일한 것으로서, 일찍이 조선 초 1402년, 조선반도에서 원나라 시대의 두 '원도'에 기초하여 제작한 지도가 있다.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출현한 '세계지도'라 할 수 있는 이 지도의 이름은 '혼강리역대국도지도'이다. 이 지도는 전적으로 중국과 조선 본위의 관점에 의한 것이어서 중화 지역과 조선이 상대적으로 굉장히 크게 그려져 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도의 제목 중에 '역대국도'라는 글자가 들어 있는 것은 원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왕조의 수도가 기록되어 있어서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중화지역에 자세히 기재된 지명들은 모두 원나라 때에 통용된 '로, 부, 주, 현' 등의 행정지명과 일치한다. 이로 보아 이 지도는 원나라 당시의 '현세지도'에 과거 왕조의 수도를 첨가한 지도인 것이다.

지도 전체를 살펴보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즉, 여기에 담긴 지역 범위가 중화와 조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으로는 몽골 고원 및 만주으로부터 남으로는 동남아와 인도양, 서로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에 이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유럽 대륙의 끝까지 펼쳐져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와 비교해 보면 이 지도는 오류가 많다.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은 저 동, 남, 서 세 방향의 바다로 둘러싸인 땅의 모습이 바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라는 점이다.

지도 명칭의 첫 머리 '혼일강리'는 '혼연일체의 강역'을 뜻한다. 도대체 무슨 '혼연일체'란 말인가? 이 지도의 초광역 영역이 보여주듯이 그 함의는 의심할 나위 없이 중화와 비중화 지역의 혼합이다. '혼일'은 우리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세계'라는 말과 개념이 비슷하다. 이러한 세계상을 이루어 냈던 주인공은 당연히 몽골이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몽골 시대 유라시아 지역까지 확대된 거대한 공간을 나타낸 그림일 뿐 아니라 지나간 역사의 유구한 시간을 농축하여 놓은 역사문헌인 것이다." - 스기야마 <モンゴルが世界史を覆す(몽골이 세계사를 전복하다)>의 중국어 번역본<蒙古 顚覆 世界史>126~130쪽 요약


강리도가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한다고 말하면 좀 과장스럽게 들리겠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특히 서양에서 두드러집니다. 근래에 서양에서 출판된 세계사류의 많은 저서들이 강리도를 비중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구글 검색 결과, 최근의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 역사 탐험 (Voyages in World History) / 2016
- 캠브리지 세계사 제 5권 (Cambridge World History) / 2015
- 세계 지도: 열 개의 세계역사 주요 문헌 (독일어, Weltkarten - Weltbilder: Zehn Schlüsseldokumente der Globalgeschichte) / 2015
- 100개의 자료로 본 세계 역사 (History of the World in 1,000 Objects ) / 2014
- 위대한 지도들 (Great Maps ) / 2014
- 12개의 지도로 본 세계사 (A History of the World in 12 Maps) / 2013


하지만 우리가 강리도의 진면목과 가치를 체감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인터넷이나 책자에서 보는 강리도는 매우 축소된 이미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고작해야 실물의 100분의 5 정도입니다. 그걸로는 이 진보(珍寶)의 가치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지도 실물을 자세히 보게 될 때 비로소 예기치 못한 진경(眞景)이 드러나지요. 여기 몇 대목을 불러 오겠습니다.

먼저 황하의 수원.

축소된 이미지만 보아서는 아래와 같은 그림이 숨어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겠지요. 한 마리 거대한 황룡이 조선의 비단 바탕 위에서 생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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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황하 황하 수원 지역 ⓒ 류코쿠대


다음은 중국 산동성을 봅니다.

여기에는 시황묘(진시황 묘), 해신을 모시는 사당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장보고의 유적지도 나타나 있습니다. 붉은 색 네모 안의 왼쪽 희미한 글자는 적산(赤山)이고, 오른쪽의 역시 희미한 글자는 장로산(張老山)입니다. 그런데 적산은 옛날 장보고대사가 해상활동을 할 당시 본거지로 삼았던 바로 그 곳입니다. 지금 적산의 법화원에 장보고 기념관이 있습니다. 오늘날 장보고 유적지를 탐방하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요. 그 오른쪽에 적혀 있는 장로산도 필시 장보고와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축소된 이미지에서는 역시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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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산동성 강리도 산동성 ⓒ 류코쿠대


우리나라의 '출생증명서'

다음은 서울 일대입니다.

성곽 모양의 테두리 속 붉은 바탕에 '朝鮮'이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고색 창연하지만 선명하고 힘이 있습니다. 세계 지도상에 최초로 새겨진 '조선'입니다. 미국인들이라면 이런 지도를 나라의 출생증명서(Birth Certificate)라 부를 겁니다.

세계속의 출생 증명서! 미국은 'AMERICA'라는 이름이 최초로 새겨진 지도를 무려 1000만불을 들여 독일로부터 구입하였습니다. 발트제뮐러 지도로 1507년에 독일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이 지도는 종적을 감추었다가 약 500년 후인 1901년 독일의 한적한 고성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미국은 이 지도를 오랜 교섭과 거국적 모금을 통해 사들였습니다.

'아메리카의 출생 증명서(America's Birth Certificate)'라는 별호가 붙은 이 지도는 미국 의회 도서관 본관(제퍼슨 홀)에 영구 전시되는 영예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 지도가 특별한 영광을 누리는 가장 중요한 까닭은 AMERICA라는 일곱 글자 때문입니다. 지금의 미국 땅에 새겨진 것도 아니고 브라질 땅에 새겨져 있지만.
 
우리도 '조선'이 최초로 새겨진 세계 지도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걸 사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그 가치나마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계 속의 우리나라 출생 증명서는 강리도입니다. 그것도 굉장한 우량아의 출생 증명이지요.

터키의 경우는 16세기에 자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지폐에 새겼습니다. 'Piri Reis(피리 라이스)' 지도라 하는데 지도 전체는 전해 오지 않고 파편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걸(파편) 지폐에 새긴 것입니다.

1929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 지도는 후손을 잘 만난 덕에 지폐에 새겨질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이에 비하면 우리의 강리도는 후손을 잘 못 만난 경우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국내 유일의 세계사 연표 책자나 국사 사전에는 강리도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메리카의 출생 증명서로 불리는 발트제뮐러 지도 및 터키의 지폐에 등장하는 피리 라이스 지도에 대해서는 나중에 긴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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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서울 강리도 서울 ⓒ 류코쿠대


다음은 저 멀리 남부 아프리카입니다. 남아공의 드라켄스버그 산맥과 오렌지 강(중간에서 왼쪽 대서양으로 흘러듬)이 표현되어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우 상단의 꽈리 모양은 나일강의 수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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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아프리카 남 아프리카 ⓒ 류코쿠대


이상 몇 군데를 둘러 보았습니다. 이처럼 강리도의 실물을 들여다 보면, 인식을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실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디지털 복원본을 통해 실물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들은 류코쿠 대학 도서관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가져왔습니다.

강리도에서 카사블랑카 찾기

이제 지명 탐험을 해 봅니다.

카사블랑카를 강리도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카사블랑카 하면 영화가 떠오르죠? 과연 이 멋진 도시의 이름이 강리도에 나타나 있을까요? 카사 블랑카(Casa Blanca)는 하얀(blanca) 집(casa)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라 합니다. 15세기 포르투갈 점령시에는 포르투갈어로(Casa Branca)로 불렸다는군요. 15세기 이래의 서양식 지명 카사블랑카가 1402년의 강리도에 나올 리 없겠지요.

그 이전의 원주민 지명은 혹시 나와 있을까요? 북아프리카 원주민은 베르베르족(Berbers)입니다. 그들은 이 도시를 안파(Anfa)라 불렀다 합니다. 뜻은 '자존심(self-respect)', '위엄(dignity)'이라는군요. 지금도 카사블랑카 시내에 '안파 로(Anfa Boulevard)'가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아래 붉은 동그라미 안에서 안파(Anfa)를 찾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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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 카사블랑카 강리도 카사블랑카 ⓒ 교토대


阿尼法! 중국어 발음으로 '아니파(Anifa)'. 카사블랑카의 옛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뜻밖에도 강리도에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의 지명이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히 혼융 지리정보라 아니 할 수 없겠지요.

베르베르족은 고유의 언어와 문자,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우리가 베르베르 족을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국(City of God)>과 <참회록>으로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베르베르족이었고, 세기적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도 베르베르족(부모가 알제리 출신). 만일 지네딘 지단이 15세기에 한양에서 만들어진 지도에 자신의 종족어 지명 '안파'가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다음 호에서도 지명 탐험을 이어가겠습니다. 카사블랑카에서 지중해 건너 맞은 편으로 건너가 지브롤타를 탐험해 보겠습니다.
#강리도 #베르베르족 #카사블랑카 #세계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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