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지친 텐트 생활, 이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일상으로 복귀 간절했는데... 포항 지진으로 아픈 이재민을 잊지 말아주세요

등록 2018.02.13 11:16수정 2018.02.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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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쉽게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평화는 빈번하게 위장됩니다. 너무 빨리 안심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평온을 찾아가던 지난 일요일(11일) 새벽 5시 3분, 포항에 3개월 만에 또 다시 규모 4.6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날이 밝기 전의 짙은 어둠을 뚫고 바삐 울려대는 지인들의 생존 확인 연락들은 우리가 아직 '불안'을 놓을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마침, 지난 주 목요일 11.15 포항 강진 이후로 3개월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재민 분들을 만나서 '끝나지 않은 공포'에 대한 얘기를 들었었는데, 이제 다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이 기록은, 평화를 기대하며 '피해 수습'이 끝난 것으로 착각했던 날들의 짧은 기록입니다. 아, 이제 다시 시작이네요.<기자말>

'지진 피해지역 포스코패밀리 봉사활동이 2.1일부로 종료되어 관련 메일을 전달해 드렸습니다. 따라서, 2월 4일 일요일에 예정되었던 지진 피해 이재민 대피소에 대한 봉사활동도 취소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깜깜하던 전화기 화면이 반짝하며 켜지더니 안내 메시지가 울립니다. 오랜만에 일요일에 진행되는 봉사활동이라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깜짝 놀라서 담당자에게 취소된 이유를 물었어요.

"앗, 그래요? (상황이 정리되어 이재민 분들께서) 이제 일상으로 복귀하신 건가요?"

"가장 큰 이유는 포스코 안전사고 수습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외부 활동을 하기에는 워낙 지역 여론이 안 좋기도 하고요. 그리고, 포항시와 정부에서 남은 이재민에 대한 지원 문제를 몇 주 내로 조속히 해결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속된 기관이 포스코와 관련되어 있어서 저희들의 봉사활동은 포스코 패밀리사의 연합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1월 26일에 포스코에서 발생한 노동자 네 분의 질식사고로 인해 지역여론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사고 수습이 지진 이재민 대피소의 봉사활동과 어떻게 관계를 갖는지는 쉽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만, 작년 11월 15일 이후로 거의 3개월 가까운 시간을 고생하신 이재민 분들이 이제는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시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2016년의 경주 지진에 비해서는 잘 갖춰진 대피소라고는 하지만 불편한 체육관 바닥에 설치된 작은 텐트가, 지진으로 망가져버린 '집'을 대신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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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북 포항에서 규모 4.6 지진이 나자 진앙과 가까운 흥해실내체육관에 있던 이재민들이 지진 상황을 설명하는 이강덕 포항시장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같은 포항에서 일어난 재난입니다만, 제가 살고 있는 포항의 남구와 북구의 일상은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남구의 주민들은 일찌감치 회복된 일상의 테두리 안에서 지진의 공포를 잊어가고 있었던 반면, 간간이 전해 듣는 북구의 주민들은 여전히 지진의 공포가 지배하는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셨어요.


분명히 봉사활동 담당자는 '남은 이재민에 대한 지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려고 한다'라고 했는데, 출근을 준비하며 듣게 된 아침 뉴스의 포항지역 단신은 '이주에 포함되지 않은 이재민과 포항시가 대피소 폐쇄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지역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봐야겠습니다. 

'혹시, 목요일 (2월 8일) 점심 식사나 같이 하실래요?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궁금하고요.'
'저야 좋죠. 그런데, 그날 저녁 7시에 도시재생사업 설명회가 있는데, 거기에 와 보는 것은 어때요?'

진앙과 가까운 흥해 지역에 살고 계시는 지인께 연락을 드렸더니 도시재생 뉴딜사업 설명회에 대한 안내 문자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공동주택 지원 및 도시재생사업 설명회'라는 것을 보니 지진 피해지역에 대한 정부 대책이나 지역 주민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자리일 것 같아서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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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지역 도시재생 뉴딜 사업 설명회 설명회가 개최되는 흥해종합 복지관의 2층에 올라가자마자, 발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채워진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만큼 이 지역의 도시 재생 및 지진 피해 복구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과 의심을 같이 짐작할 수 있었어요. 여전히 이 분들에게는 포항 지진은 현재형입니다. ⓒ 이창희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오후에 부산에 일이 있어서 회의를 마치고 급하게 서둘러 포항으로 향했지만 설명회에 30분이나 늦어버렸습니다. 부랴부랴 도착해서 뛰어 올라간 2층의 강당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습니다. 벽을 빙 돌아 서 계신 분들을 보니, 아직 이곳에서는 지진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단에는 '흥해지역 도시재생 뉴딜사업 사업설명회'라는 현수막이 걸렸고, 근사한 설명자료가 화면으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40분 정도 이어진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브리핑이 마무리되자, 노란색 작업복을 입은 공무원이 연단에 섭니다. 스스로를 '국장'이라고 소개한 후, 설명회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묻습니다.

작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한 직후, 정부가 의욕적으로 지역 재생을 약속하며 시작한 '도시재생 사업'인 만큼, 강당을 채운 대부분의 주민들이 손을 들고 질문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을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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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지진이후 3개월 도시 재생 뉴딜 사업이라는 것은 과연 포항의 지진 피해 복구에 도움이 되는 사업일까요? 피해자 분들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있는 사업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설명회만으로는 매우 답답했습니다. ⓒ 이창희


질문 1) 매산리 주민입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만,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가 아닌데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로만 들리네요. (이런 식이라면) 주민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하셨는데, 방법은 있습니까? 어떻게 자발성을 유도하겠다는 얘기입니까?

질문 2) 공공 주택에 대한 피해 복구에 1차로 배정된 예산이 50억이라고 소개하셨는데, 지원의 범위가 어떻게 됩니까? 파손된 주택에 대해 미리 수리를 한다면 추후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질문 3) 내용은 그럴듯하게 소개해 주셨습니다만, 실질적으로 피해 주민을 위해 어떤 정책이 펼쳐지는지는 너무나 모호합니다. 혹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만 남발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질문은 쉽게 끝이 나지 않습니다. 설명회 주최 측인 포항시가 속 시원한 답변은 없이,  '믿어달라', '노력하겠다',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달라'라는 식의 성의 없는 대답을 되풀이하는 사이, 설명회는 점차 과열되기 시작합니다. 강당은 어느새 고성과 질문을 말리려는 약간의 몸싸움으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오후 7시에 시작한 설명회는 8시가 되자 서둘러 마무리가 됩니다. 시장을 대신하여 참석했던 부시장을 선두로, 성급하게 설명회장을 떠나는 공무원들을 보니 씁쓸했습니다. 

최근에도 규모 2.0수준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행정적인 압력은 주민들 간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것 같습니다. '지진 피해 복구'에 대한 주민의 진솔한 답변이 듣고 싶어 설명회에서 옆자리에 앉으셨던 이재민분들께 차 한 잔 하기를 청했습니다.


"이젠 저도 대피소에서 사는 것이 너무 지쳐서 집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요. 그런데, 너무 불안해서 들어갈 수가 없어. 분명히 안전진단에서는 (우리 집에) 문제가 없다고 나왔는데, 지진으로 집안 곳곳에 생긴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걸요. 휴우… 대피소 생활, 절대 쉽지 않아요. 몸도 마음도 다 너무 아파. 이재민 가구마다 포항시 재해 대책 위원회에서 멘토가 한 사람씩 배정되어 있어. (멘토?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매일 전화해서 물어봐. 언제 집에 들어갈 거냐고, 왜 안 들어가냐고. 가끔은 이렇게 시달리다 보면, 그냥 어떻게 되든 집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해요. 아마, 이러다가 그냥 들어가게 될 것 같아.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은 힘들고 지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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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이재민 분들과 차를 한 잔 했어요. 계속 한숨을 쉬고 계십니다.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셨어요. 이 분들의 아픔을 이대로 이 분들에게만 넘겨도 되는 걸까요? 계속 죄송했습니다. ⓒ 이창희


대피소를 다섯 군데나 거치고 계시다는 이재민께서는, 솔직한 마음을 쏟아내시는 동안 한숨으로 몇 번이나 말을 멈추셔야 했습니다. 게다가, 2월 10일이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대피소 두 곳도 폐쇄하기로 했다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셨어요.

피해 복구는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포항시에 설치된 재해 대책 본부의 체계적이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한 행정처리는 불신을 불러오고, 이재민들끼리도 서로가 편을 나눠서 싸우게 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알게 되니, 너무 쉽게 잊어버린 제 자신이 미안하여 조심스럽게 "어떤 점이 가장 아쉬운지" 물었습니다. 

"대책 본부가 제대로 갖춰져서 일관되고 통합된 행정 처리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너무 엉성하고 주먹구구예요. 우리 집에 안전 진단을 몇 번이나 왔는지 아세요? 세 번이에요. 안전 진단에도 분명히 비용이 들 텐데 어디선가 계속 예산이 새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요. 아까 설명회에서 파손된 주택에 대한 복구 예산이 50억이라고 들으셨죠? 그걸로 우리가 다시 우리 집에 안심하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복구가 될까요?"

"대피소를 왜 빨리 닫으려는지 아세요? 우리는 아직 피해가 복구되려면 멀었는데, 다른 분들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 같아요. 시청이 주관하는 피해 대책 본부도 빨리 닫아야 공무원들도 격무에서 해방될 테고, 그들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거죠. 힘들다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왜 대책 본부를 따로 설치하지 않을까요? 피해 복구는 빨리 끝나지 않아요. 우리는 아직도 힘들게 싸우고 있어요. 완전한 복구엔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할 수 없는데, 이처럼 빨리 끝났다고 선언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보가 투명하지 않아요. 우리 집이 안전하다고 하는데, 안전진단 보고서를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없어요. 지열발전소와 지진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있는데,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않아요. 지열 발전을 중단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요? 이런 의문을 제시하면, 아까 설명회에서처럼 얼버무리는 것으로 덮으려고만 해요. 피해자들 간의 갈등의 주된 원인도 결국 정보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인데, 웹사이트에 자료도 모두 공개하고 사용한 예산도 모두 공개하는 게 어렵나요?"

아쉬운 점을 물었을 뿐인데, 그동안 느껴오셨던 문제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옵니다. 체계적이지 못한 졸속행정, 투명하지 못한 정보 전달, 피해자가 아닌 관리자 주도의 행정처리, 방만한 예산 활용과 같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서도 그대로 드러난 모양입니다.

우리는 큰 지진을 겪어본 적이 없는 나라입니다. 2016년 9월의 경주 지진에 이어 2017년 11월의 포항 지진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틀어서도 갑작스러운 일이지요. 준비가 없었던 만큼 대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겠습니다만, 재난은 항상 그렇게 갑작스러운 것 아닌가요? 언제까지 '처음'이라는 변명으로 피해 다녀야만 할까요? 아니면, 내 문제가 아니니 괜찮다면서 외면하실 생각인가요?

지금까지의 우리가 '당한 국민만 억울한' 나라에서 힘들게 살아왔다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 아닌가요? 오늘 만난 세 분의 이재민 분들이 느꼈을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분들의 아픔은 바로 우리의 것일 수도 있고, 불행을 외면하는 것으로는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수 있는 '위험'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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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해 초등학교는 임시 건물로 지어지는 중 포항 지진으로 흥해 초등학교는 파손 정도가 너무 심하여 폐쇄되었습니다. 일부의 기간 동안은 근처의 초등학교로 분산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는데요, 새학기를 기다리며 임시 건물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 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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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주택은 지어지는 중 원래 100채를 짓는 것으로 안내되었던 임시 주택은 현재 37채로 축소되어 건설되고 있습니다. 불안하여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재민들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양인가요? ⓒ 정미영


지진이 발생한 지 3개월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진을 겪지 않은 분들은 이제 충분히 잊을 수 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근처에서 지진을 겪은 저도 연휴에 찾아갈 '평창 동계올림픽'을 생각하며 설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진 피해자분들의 아픔이 이대로 덮여셔는 안 됩니다.

매뉴얼이 없었다면 매뉴얼을 만들고, 일관된 시스템이 없었다면 시스템을 만들고, 믿음을 줄 수 없었다면 투명한 정보 공개가 가능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대한민국은 그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그저 흐지부지 덮는 것으로 끝날까 봐, 이재민 분들의 아픔을 피해자들이 스스로 견뎌내는 것으로 끝내라고 할까 봐 두렵습니다. 이대로 잊히지 않게, 도와주세요.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포항 지진 #지진 이재민 #피해 복구 #사라진 일상 #재난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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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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