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나 펜스나… '최강대국' 지도자들이 이런 수준?

[황 기자의 한반도 이슈] 리셉션에 다른 약속 잡고, 문 대통령 연설도 안 들어

등록 2018.02.10 15:16수정 2018.03.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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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와 아베 뒤로 김영남과 김여정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뒤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5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회의가 끝난 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이동하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에 있는 두스코 마르코비치 몬테네그로 총리를 오른손으로 세게 밀치고 들어가 28명 정상 중 맨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세계적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마르코비치 총리는 이 일로 유명세를 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단체사진을 찍는 동안 나토 사무총장 외에는 유럽 정상들 중 누구도 트럼프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중에는 모두 트럼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처럼 부각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축하차 한국에 온 미국 행정부의 '넘버2'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이번 방한에서 그에 뒤지지 않는 난형난제(難兄難弟)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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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한·미·일 포토세션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9일 오후 강원도 용평 블리스힐스테이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일본 아베 신조 총리. ⓒ 연합뉴스


그는 지난 9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해외귀빈 초청 리셉션에 단 5분간 머물렀다. 그나마 늦게와서 문 대통령의 연설도 듣지 않았고, 헤드 테이블과 다른 테이블 인사들과는 인사하면서도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악수는 물론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이어 올림픽 개막식 현장에서 남북 선수단의 동시 입장 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과 북측 대표단이 악수하는 장면도 외면했다.

북한 정권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감을 매우 유치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전면적으로 외면하고 있지만 미국이 북한과의 라인을 완전히 끊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공개적으로 "2, 3개의 대북채널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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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지도자들 쳐다보는 미국 부통령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선수 입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 위 두번째부터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도 공동입장하는 선수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가운데, 마이크 펜스 미국부통령(오른쪽 아래)이 제자리에 앉아 남북 지도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9일 리셉션 현장 상황과 청와대 설명을 보면, 펜스 부통령은 선약을 이유로 1시간 전에 불참 통보를 했고 청와대 측은 끝까지 그의 참석을 위해 설득했던 것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의 이같은 행동에 대한 '결례' 비판이 확산되자, 백악관 측은 펜스 부통령이 북측을 '의도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라며 "북측이 정답게 다가왔다면 화답했을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북한인들이 다정하게 펜스 부통령에게 다가왔다면, 펜스 부통령도 화답했을 것"이라며 "북미 간 무관심은 상호적인(mutual) 것으로, 양측의 만남을 주선하려던 한국 측의 노력을 외면한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 축하대표단이 대통령 주최 공식리셉션에 다른 약속 잡아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올림픽 축하를 위해온 대표단이 공식 리셉션을 마다하고 다른 약속을 잡은 자체가 국제 외교 관례상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전에 "북한의 올림픽 납치(hijacking)를 막겠다", "단순히 개막식 (테이프 커팅용) 리본을 자르러 가야 한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의 미디어를 활용한 올림픽 선전 전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기회를 활용할 것이다"라고 예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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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찾은 펜스 미국 부통령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방한 이틀째인 9일 평택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보고 있다. [미국대사관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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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웜비어 위로하는 미국 부통령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9일 개회식 오전에는 북한 여행 중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친 프레드 웜비어씨와 함께 평택 2함대 천안함 기념관을 방문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소개했던 지승호씨 등 탈북자들을 만나 북한에 대해 "자국 시민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굶주리게 하는 정권"이라며 "북한의 잔인한 독재는 '감옥 국가(prison state)'와 마찬가지"라고 맹비판한 바 있다.

이 정도 되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왜 왔느냐",  "북한도 아니고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이냐"는 비판이 전혀 과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리 퇴색됐다 해도 '어떠한 시위 또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전도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금지된다'는 올림픽(헌장 50조) 정신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답지 않은 펜스 부통령의 이같은 행동은, '평창동계올림픽과 대북한 정책은 별개'라는 미국의 입장 하나는 분명하게 보여줬다. 이는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매우 험난할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펜스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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