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보폭을 배려해야 했다

[미련 없이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 1] 생장피드포르~론세스바예스

등록 2018.02.22 10:00수정 2018.03.2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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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힌 생장 순례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유리 ⓒ 차노휘


피레네 산맥을 향한 첫발

전날, 순례자 사무실이 늦게까지 문을 여는지 알았다. 마지막 기차가 도착할 즈음에 다시 문을 열어 순례자 신청을 돕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숙소를 구하기 전에 순례자 사무실에 먼저 들러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 알베르게에 투숙할 수 있다. 또 다른 정보에 의하면 사무실이 언덕 위에 있는데 배낭 메고 가는 사람들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단다. 길 잃을 염려가 없단다. 


오후 10시가 다 되어 도착한 생장은 이방인에게 낯선 어둠이었다. 정보대로 배낭 멘 사람들을 따라갔다. 걸음도 빠르고 일행이 없는 나는 선두 무리에서 걸었다.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은 회갈색 눈빛의 20대 청년이었다. 그는 스마트폰 구글맵으로 길을 찾았다. 긴 다리라 보폭이 상당히 컸다. 마침내 그가 불 켜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 볼 겨를이 없던 나는 당연히 순례자 사무실인 줄 알았다.

그 청년을 뒤따라 들어갔다. 탁자가 몇 개 놓여있는 안쪽 구석에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청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느낌상 이곳이 순례자 사무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순례자 사무실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중년 남자는 그곳은 이미 문을 닫았단다. 이곳도 오후 10시 30분에 문을 닫는단다.

그때서야 나는 다급해졌다. 내가 묵을 방도 있냐고 물었다(내가 잘 침대가 있냐고 물어야 했다. 그렇게 묻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잠깐 망설이던 중년 남자가 있다면서 현금으로 20유로라고 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좋다고 했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담배를 피우던 남자였고 그 뒤로 흑인 여자가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우리 넷은 한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알베르게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알베르게(albergue)는 스페인 말로 순례자들이 묵는 저렴한 숙소를 말한다. 생장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는 동안, 한 방에 침대 두 개에서부터 오백 개가 있는 알베르게를 봤다. 성별 상관하지 않고 들어온 순서대로 침대 배정을 한다. 이곳은 남녀 구분 없이 순례자들만 있을 뿐이다. 공립과 사립이 있다. 공립이 사립보다 싼 편이다.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있다. 여권에 숙박 업소 도장을 받아야 한다. 도장은 성당이나 바 등에서도 찍을 수 있다. 이러한 흔적이 목적지에서 완주증서를 받을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된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같은 알베르게에서 이틀 묵기가 힘들다.    

20대 청년은 리투아니아(첫날 말을 했지만 나는 리투아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출신이었고 골초 남자는 이탈리아(그는 이탈리아라고 말하지 않고 볼차노라고 했다. 볼차노도 본토 발음으로 해서 알아듣지 못했다)에서 온 니콜라, 흑인 여자는 미국에서 온 야니라였다. 야니라의 발음은 익숙하게 들어왔던 미국식 영어발음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말이 통했다.


나는 2층 침대가 있는 방에서 남자와 합숙한 첫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먼저 샤워하고 남자들이 샤워를 할 때 야니라와 나는 베란다에서 수다를 떨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온 길이었지만 잘 곳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마음만은 평안했다. 야니라는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살갑게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녀도 한국에서 1년을 살았다고 했다. 원어민 영어선생이었다. 그녀는 무릎이 좋지 않다면서 너는 함께 걸어갈 친구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녀의 물음은 잠시 나를 망설이게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공간에 있는 네 명 다 혼자였다. 이들 중 누구는 걷는 중에 길동무를 만날 것이다. 나 또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몇 군데를 걸었지만 거의 혼자서 걸었다. 그래선지 걷는 중에는 과묵한 편이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걷는 데에 자신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40~50km를 하루에 거뜬히 걸었다. 야니라는 무릎이 좋지 않다고 했다. 평소에 운동을 한 것 같지도 않았다. 작은 키에 살집이 많았다. 현지 지리에 밝고 걸음이 빠른 동무를 둔다면 26일에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나는 완주에 대한 목적의식 강했고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말 누군가에게 의지할 생각도 없었고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던 야니라는 사람 좋게 웃었다. 같은 방을 사용했던 사람들 중에 굳이 길동무를 선택하라면 회갈색 눈동자 유리였다. 큰 키와 건강한 몸. 그의 눈은 호기심과 목적의식으로 가득 차 보였다. 800km를 걸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고도 80km를 더 걸어서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까지 간다고 했다. 나도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걸어서 갈 계획이었다. 몸집이 큰 야니라는 외모처럼 굼뜬 형 같았고 담배를 연속적으로 피워대는 니콜라는 마른 체형이었다. 어떻게 걸을지 체력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이 모든 우려는 내 오만이었다).

내 예상대로 다음날 오전 6시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온 사람은 유리였다. 유리와 나는 자연스럽게 순례자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중앙광장에 왔을 때 한 시간 전까지 들렸던 기타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밤새워 기타연주를 하던 곳에 한 남자가 침낭 속에 들어가 있었다.

기타를 치던 남자는 루마니아 출신 노숙자였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만났다. 허름한 차림에 오십대 초반 남자였다. 나는 이 새벽에 이렇게나 열심히 기타를 연주하는 그가 신기했다. 가까이서 보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한쪽에 보따리가 있었다. 내가 가까이 가자 ATLAS라고 적혀 있는 캔 맥주를 내놓았다. 나는 받기만 하고 마시기를 망설였다. 쉽사리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맥주와 기타라. 갈 곳 없는 그가 선택한 것치고는 로맨틱했다. 그것들은 혼자 밤을 새워야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무기였을 수도 있다. 이런 그를 제재하지 않는 이곳의 넉넉함이 좋았다. 나는 그의 기타를 조율해 주었다. 그가 고맙다며 연주를 시작했다. 코드를 제대로 누르지 않아 기타 음도 음정도 맞지 않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솜털 같은 보슬비가 가로등에 환하게 부풀면서 내리는 이른 아침, 아담한 이 도시를 깨우는 사람은 그였다. 그는 누구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나는 순례자 사무실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침낭 쪽으로 갔다. 그에게 선물로 주려고 쿨 스카프 두 개를 배낭 속에서 꺼내놓았다. 그를 흔들어 깨우고는 하나는 그의 목에 걸어주고 하나는 손에 쥐어주었다. 마지막 그와 포옹을 하고는 기다리고 있던 유리와 함께 순례자 사무실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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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만들고 있는 직원 ⓒ 차노휘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보슬비가 그쳤다. 그곳에 붉은 체크무늬 남자가 이미 사무실 맞은편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의 무릎 앞에 커다란 배낭이 있었다. 발가락이 보이는 슬리퍼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순례를 하러 온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게 커다란 쇼핑백에 물건을 넣어왔던 그였다.

나는 아주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했다. 배낭을 가리키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배낭을 따로 준비해왔고 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다가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작가세요?' 그는 하와이 출신이며 고등학교 스페인 선생이라고 했다. 가끔 글을 써서 신문에 투고한다고 했다.

그때 니콜라가 나타났다. 오전 7시에 문을 연다는 순례자 사무실은 십 분이 지나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모두 순례자 사무실 문을 바라보면서 수다를 떨었다. 우리 출발 기념사진 한 장 남기는 게 어떨까? 내가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들 좋다며 어린아이처럼 외쳤다. 유리와 고등학교 선생인 스펜서, 뒤늦게 나타난 볼차노 출신 니콜라. 이렇게 넷이서 출발 기념사진을 찍었다.
 
걷기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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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장에서 피레네 산맥을 향해 걸으며(파란색 바탕에 노란 가리비 문양이 산티아고 표식이다) ⓒ 차노휘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은 전체 여정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에 속한다. 하지만 두 길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나폴레옹 루트(24.7km, 경사로 감안 31.7km)와 발카를로스 루트(24.4km)이다. 나폴레옹 루트는 하루 동안 총 1390m 높이의 피레네산맥을 넘는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가장 길고 험난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나폴레옹이 반도 전쟁 중에 부대를 이끌고 스페인을 드나들 때 즐겨 찾았던 길이자 중세 순례자들이 숲속에 숨은 산적을 피해 선택한 길이다. 또 다른 길은 성 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스페인으로 진군할 때와 초라하게 후퇴할 때 이용했던 카를로스 계곡이 있는 발카를로스 루트이다.

이왕 넘을 것. 나폴레옹 루트여야 했다. 우리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한 걸음에 피레네 산맥을 넘을 것 같았다. 니콜라는 순례자 여권이 있다면서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세 명이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그는 감쪽같이 사라졌다(알고 보니 니콜라는 혼자 걷는 것을 좋아했다). 스펜서와 유리, 이렇게 셋이 피레네 산맥을 향해 출발했다.

순례자 사무소와 교구 교회를 지나 자갈로 포장된 뤼 드 라 시타델로 따라 내려가다 아치 길을 지나 니브 강을 건넜다(해발 165m). 스페인으로 가는 고대 관문인 포르트 데스파뉴(Porte D'Espagne)를 지났다. 식수대가 있어 물통을 채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첫 순례길을 시작했다는 기대감과 흥분에 들떠 있었다. 비가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고 흐렸다. 되레 걷기에 좋았다.

스펜서는 걸을 때 스틱을 사용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인사를 건넸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는 우리를 쫓아왔다. 내게 스틱 한 개를 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나는 집에서 스틱을 챙겨 오지 않았다. 현지에서 싼 것을 사서 순례길을 완주했을 때 적당한 곳에 두고 오려고 했다. 도착해서는 굳이 스틱이 필요할까도 싶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벼이 보고 있었다.

190cm가 훌쩍 넘는 두 남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피레네산맥으로 들어섰다. 검은 아스팔트가 고개를 따라 위로 뻗어 있었다. 간신히 아스팔트길만 보이고 온통 안개로 덮였다. 얼마나 계곡이 깊은지,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그 길로 사람들은 걸어갔고 자전거 순례자들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산등성이와 계곡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안개였다. 그것도 산안개. 새벽안개는 날이 밝으면서 없어지지만 산안개는 그렇지 않았다. 영원한 생명을 가진 듯한 안개는 순례자들에게 신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선사했다.

걸음이 늦은 스펜서와는 한 시간을 같이 걷다가 에체베스테아(Etchebestea) 못 미처 헤어졌다. 유리와 둘이서 걸었다. 한 시간 정도 더 걸었을 때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혈액순환이 잘 되는 편이라 한겨울에도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서 옷이 젖기 마련인데, 이곳 안개는 유난히 수분을 많이 포함한 듯 금방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머리카락까지 젖어버렸다. 평상시와 달리 머릿속까지 하얗게 변했다. 배낭도 누군가가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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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 비탈진 숲속 나무 ⓒ 차노휘


요 며칠 연속적으로 긴장을 했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시차적응을 아직 못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파리에서 이틀을 보낼 때 한인 숙박 주인의 이상한 행태 때문이기도 했다. 손님방에 들어와서 쉴 사이 없이 질문을 해대면서 그녀의 외로움을 상쇄시키는 듯했다. 어제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전 처음 남녀 혼숙을 하느라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지금은 지칠 줄 모르고 걷는 유리의 긴 다리와 보조를 맞춰야 했다. 계속된 오르막길은 2m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 무덤이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리는 걸어 올라가다가 나를 보며 건너편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 한 무리의 20대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식수대가 있었다. 반가웠다. 물은 충분했지만 식수대가 있어 쉴 수 있었다.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물을 받고 목 땀을 씻어냈다. 유리가 나를 기다리면서 다시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스펜서의 보폭을 인정해주었듯이 나도 유리의 보폭을, 유리도 내 보폭을 배려해야 했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부담을 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걷기의 철학을 떠올렸다.      

'걷기의 철학'은 맹목적으로 전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걷는 이는 남들로부터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자유롭게 그들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질 수 있다. 걷기에는 멈출 수 있는 자유, 타인을 만날 자유, 그로부터 멀어질 자유가 있으며, 그 본질에는 항상 신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그 신이 어떤 신이든 상관없다. - 세실 가테프의 <걷기의 기적>, 도서출판 기파랑, p.83


그 신이라는 것은 현재 아주 근시안적으로 보자면 오늘 도착해야 할 목적지이다. 오늘 목적지는 유리나 나나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이다. 

나는 앞서가려는 유리를 불렀다. 혹시 초콜릿 있냐고 물었다. 단 것이 먹고 싶기도 했지만 내 배낭에는 음식이 없었다. 어제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오늘은 슈퍼마켓이 문을 열기도 전에 출발했다. 오전 여섯시에 알베르게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했다. 바게트 빵과 커피, 우유, 주스 등이었다. 비상식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다보면 바가 있겠지 싶었다. 유리는 초콜릿 대신 허리 색에서 길쭉한 캐러멜 한통을 꺼내주면서 다 가지라고 했다. 나는 두 개만 꺼내고 건네주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나자고 했다.

유리는 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갔고 마침내 안개 소실점 속으로 사라졌다. 안개는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능선 아래에도, 능선 위에도 안개가 있었다.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는 실루엣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띄엄띄엄 순례자들이 길을 걸었다. 갑자기 한기가 들었다. 멈춰 서 있으니 땀이 식었다. 나는 배낭 어깨끈을 들었다 놓는 걸로 출발 신호를 알렸다.

세이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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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피레네 산맥 계곡을 노닐고 있는 양떼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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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에서 만난 양치기와 양치기 개 ⓒ 차노휘


얼마나 걸었을까. 능선 너머, 능선을 따라 아주 요상한 화음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안개에 가려 실체가 없고 소리만 난무했다. 여기에서 들리는가 싶으면 저기에서 들리고 솔로인가 싶으면 합창이 되어 화음을 만들어냈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개바다였고 그 한가운데 나만 홀로 서 있었다. 혹시 세이렌(Seiren)의 노래 소리가 아닐까. 상반신은 여자이고 하반신은 독수리 모습을 하고 있는 영혼의 목소리를 내는 바다의 요정. 뮤즈 멜포메네와 강의 신 아켈로스가 낳은 딸. 그녀는 지중해의 한 섬에 살면서 감미로운 노래로 지나가는 선원들을 갯바위로 유혹하여 목숨을 잃게 했다. 

나는 세이렌 소리에 갇힌 어부가 되었다. 안개 바다 속에서 오롯이 들리는 화음. 그것은 허전한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낯섦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발아래가 둥둥 뜨는 듯했다. 배낭은 무게를 더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름들을 불렀다. 유리, 니콜라, 스펜서, 야니라. 당신들은 어디 있나요? 무릎이 좋지 않은 야니라와 이야기꾼 스펜서와 수다를 떨면서 느긋하게 산맥을 넘어올 수도 있었다(나는 목적의식이 너무나 강했다). 앞서가는 유리를 붙잡아도 되었다(나는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했다). 왜 나는 혼자인가. 아무런 메아리가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만 난무했다. 

사방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안개 속 길이 이스트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내게 다가왔다. 드디어 세이렌이 요술을 부리면서 내 목숨을 걷어가려나? 꼼짝 없이 서 있는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앞을 주시했다. 시야가 열리더니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났다. 양떼였다. 양떼가 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목에 방울이 달려 있었다. 그것의 흔들림에 따라 댕강댕강 달랑달랑 소리의 강도가 달라졌다. 그들은 내게 곧바로 쳐들어오지 않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길 밖으로 벗어났다. 양떼 꽁무니에 양치기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양만큼이나 큰 개가 그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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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에서 만난 소떼 ⓒ 차노휘


이곳은 그야말로 거대한 고산지 목장이었다. 푸른 목초가 자라는 산등성이로 자유롭게 양떼, 소떼들이 한가로이 거닐었다. 양철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 무슨 음악회를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워낭 소리였다. 거대한 하얀 황소가 또 거대한 워낭을 목에 두르고 움직이면서 리듬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의 물결을 만들며 계곡 아래를 점령했다.

푸른 산. 부드러운 능선. 깊은 계곡. 짙은 산안개. 끝없는 오르막길. 무거운 배낭. 누가 몸이 무거워 눈썹까지 밀고 싶다고 했던가. 소리가 멀어졌고 또 다시 정적이 뒤따랐다.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신중하게 안개 속을 헤쳐 갔다. 화살표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온통 기울였다. 그렇게 이십분을 올라가자 길 양쪽에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아래에는 비탈진 숲이었다. 비탈진 숲속 나무 허리까지 안개가 끼어 있었다. 하지만 산등성이를 따라 평지에 나 있는 오솔길 너머에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그때서야 앞서가는 사람과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세이렌의 노래 속에서 벗어난 오디세우스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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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 안개바다에서 빠져나왔을 때 바라본 오솔길 너머 파란 하늘 ⓒ 차노휘


덧붙이는 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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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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