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지배하는 사회,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28] 최종심 선고일은 '삼성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될 수 있을까

등록 2018.02.13 10:54수정 2018.02.1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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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 이희훈


한낱 고등학교 2학년 학생과의 내기에서 보기 좋게 졌다. 지난해 여름, 수업시간에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실형 선고 여부를 두고 한 아이와 재미삼아 내기를 했다. '1승 1패'로, 아직 대법원의 판단이 남아있긴 하지만, 많은 아이들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교사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삼성이라지만, 촛불 혁명으로 서슬 퍼런 정권조차 쓰러뜨린 마당에 이번만큼은 실형 선고를 피할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상급심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내기는 싱겁게 끝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도 그는 한사코 결국엔 전가의 보도처럼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될 것이라 우겨댔다.

그는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삼성의 시대'가 그리 쉽게 저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에겐 'KOREA'보다 'SAMSUNG'이란 단어가 훨씬 더 익숙하다면서,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5년짜리 비정규직'인 정권 앞에서 순순히 머리를 조아릴 그들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장은 곧 삼성이라는 것이다.

"삼성이라는 두 글자는 저희에겐 하나의 '로망'이에요. 요즘엔 졸업생 중에 누군가 삼성에 취직하면, 학교 교문에다가 경축 현수막을 내걸기도 하잖아요. 삼성병원이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기관이고, 저희 사이에서 '삼성대학교'라고 부르는 성균관대학교가 공고한 학벌 서열에서 'SKY'를 넘보고 있는 것도 삼성의 힘을 빼놓고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죠."

아닌 게 아니라,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보 면 장래희망을 '삼성에 취직하는 것'이라고 선선히 말하는 경우를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만한 효도가 어디 있겠느냐며 부모님 가슴에 '삼성 배지'를 달아드리고 싶다고 넉살 좋게 말하는 아이도 봤다. 거칠게 말해서, '삼성맨'이 될 수만 있다면, 누구 말마따나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아이들이 예나 지금이나 줄을 섰다.

그는 아예 우리나라는 '삼성 공화국'을 넘어 '삼성 제국'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맨'들이 사회의 곳곳에 진출해 여론 형성을 주도하던 시기를 지나 이젠 국가와 헌법조차 '삼성'을 위해 존재하고 봉사하는 단계에 와있다고 꼬집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1등과 동의어가 되었다면서, 그는 이를 '대한민국의 삼성화'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당장 아이들끼리 토론을 벌일 때도 삼성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삼성의 주장이 담긴 글이나 통계자료는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토론 준비 자료다. 자료의 출처가 삼성경제연구소라면, 토론 과정에서 반박 불가의 논거가 되기 일쑤다. 심지어 정부의 발표보다 삼성의 예측을 신뢰한다는 아이도 있었다. 가히 학교에서조차 '삼성이 그렇다면 그렇다고 믿는' 세상이다.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아이들

언제부턴가 아이들도 삼성이 내는 세금으로 국가를 운영한다고 생각하고, 삼성이 무너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국익이 훼손될 거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아이들의 입에서도 무시로 튀어나온다. 지금까지 숱하게 들어온 친기업의 논리가 세대를 넘어 변함없이 전승되고 있는 셈이다.

올해 대폭 인상된 최저 시급을 두고도, 적어도 아이들에게선 환영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개중엔 방학 동안 알바를 직접 경험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편의점에서 잠시 일한 적 있다는 한 아이는 사장님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면서, 최저 시급이 인상된 꼭 그만큼 알바 자리가 줄어들 게 빤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에게 가맹점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이윤을 일부 양보하면, 인상된 최저 시급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대기업이 손안의 이익을 포기할 것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선진국이 되었을 거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대기업은 손댈 수 없으니, 없는 사람들끼리 푼돈이라도 슬기롭게 나누는 게 현명하다는 인식이다.

언뜻 우리 사회에 보내는 냉소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대기업이 여태 보여준 불합리한 행태를 눈감아주고 외려 두둔하는 논리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의 이야기에 대다수의 아이들이 호응한다는 점이다. 알바가 같은 처지의 다른 알바를 걱정하기보다 사장님의 고충을 더 헤아리고, '갑 중의 갑'인 대기업의 횡포에는 한없이 관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일했다는 곳은 범삼성계열의 편의점이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유일한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밖에 없죠. 어른들이 그런 천박한 사회를 만들어 놓고선, 저희더러 어린놈이 돈만 밝힌다며 손가락질할 건 아니라고 봐요."

"10억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손에 그 절반인 5억만 쥘 수 있다 해도 저는 기꺼이 몇 년쯤 감옥에 갈 수 있어요.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연봉이 3천만 원 남짓이라는데, 5억이면 15년 넘게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하는 액수잖아요. 어차피 취직하기도 어려운데, 감옥을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삼성 제국'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종일 돈 이야기만 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촌철살인의 비유는 이미 진리로 자리매김 됐다. 다음 생이 있다면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다거나, 돈 많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게 유일한 소망이라는 아이들 앞에서 교육은 이미 갈 길을 잃었다.

내기에 이긴 아이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선고한 판사를 얼핏 두둔하기까지 했다. 그도 판사이기 이전에 사람인데, '삼성 제국의 신민'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관의 양심과 논리가 아니라, 그가 지닌 '상식'으로 판결을 내린 것일 뿐이라며, 파면 청원 같은 여론의 뭇매는 분명 그에게 지나친 요구라는 이야기다.

대법의 최종심 선고일, 삼성 제국의 대관식 될까?

'삼성 제국'의 가치관을 가슴에 품고 사는 충직한 일원으로서 '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삼성은 영원하다'는 현실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주상 같은 사법부의 판결조차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과거 전대미문의 총수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사면도 삼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대통령조차 눈치를 보는 마당에 일개 판사에게 기개를 바라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주지하다시피, '재벌 개혁'은 지난 촛불 혁명 때 가장 많이 등장한 구호 중의 하나였다. 시민들은 국정농단에 책임을 물어 적폐 청산 1순위로 재벌을 지목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이 끼어들자 '재벌도 공범'이라는 주장이 순식간에 '재벌도 피해자'로 둔갑해버렸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순순히 공인해주었다.

이제 마지막 대법원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항소심 판사의 파면을 촉구하는 청원에 최단시간 20만 명 돌파라는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내기에서 이길 것을 자신하고 있다. 항소심 판사는 기껏해야 '판서'고, 대법원의 대법관들은 의정부의 '정승'으로 비유하면서, '삼성 제국'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그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식'대로 판단한다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아직 내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의 말마따나, 대법원의 최종심 선고가 '삼성 제국'의 황제 대관식이 될지, 아니면 '대한민국의 삼성화'를 막거나 최소한 늦출 수 있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물론, 내기에서 이기든 지든 '삼성의 시대'가 쉽게 저물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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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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