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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장관 기고문] 갈림길에 선 평창, 답은 공존에 있다

격렬해지는 남남갈등... 젊은 세대 위해 기성세대가 해법 내놔야

18.02.13 16:33최종업데이트18.02.1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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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평창동계올림픽을 둘러싼 한국사회 갈등에 대한 제언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인한 남남갈등이 격렬하다. 워낙 이념적 진영정치가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에 대한 인식이 과거 어느 때보다 악화된 탓이기도 하다. 두말할 것 없이 북핵과 미사일 개발이 가져온 결과다.

시나브로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국민 모두가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남과 북의 평화적 공존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는 시각이 더 많다. 그보다 더 보수적인 목소리도 야당과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광범히 존재한다. 그들은 평창 올림픽이 아니라 '평양 올림픽'이라 부르며 북한의 평화 공세에 넘어가지 말라고 연일 정부를 질타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상황이 악화될 대로 된 만큼 지난 9년 동안 이전 정권이 해오던 대로 미국, 일본에 보조를 맞추며 같이 갈 것이냐 아니면 한반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하고 평화체제를 가져오기 위해 무언가 행동에 나서느냐의 갈림길이다.

개막식 다음 날인 지난 10일 필자는 강릉 컬링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티켓 확인과 관람객 안내를 도왔다. 옛말에 일하는 사람 먹는 거 하나는 잘 챙겨주라 했는데,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처우가 좋지 못하다 하여 걱정이 컸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0일 오전 평창올림픽이 펼쳐지는 강릉올림픽파크 컬링센터에서 민간 자원봉사자와 함께 관람객 티켓확인 및 좌선안내 등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필자가 장관으로 있는 행정안전부는 원래 자원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생기면 봉사자들을 조직해 현지로 보내는 데까지가 역할이다. 그래도 도울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직원들을 일단 보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일이 끝난 뒤 봉사자들과 밥도 같이 먹어보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혹자는 올림픽이 끝난 후가 더 문제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평양' 올림픽으로 보는 이들은 미국의 '코피(bloody nose) 전략'이 실행될 것을 예상한다. '평화' 올림픽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대화를 거쳐 마침내 북핵 위기를 풀어가기를 기대한다.

봉사자들에게 올림픽 이후는 어떤 의미일까? 20대나 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이 엄동설한에 일하는 그들은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세계에 한국을 알린다는 소명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봉사 이력이 취직에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들에게 올림픽 이후는, 취직이고 일자리였다.

그들의 작은 타산이 소소하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프라이버시를 '1도' 보장받지 못하는 합숙의 불편함도, 엄마의 '반찬'이 아니라 대량 급식 시스템이 제공하는 '부식'의 건조함도 꾹 참고 이겨내는 그들의 소망을 누가 감히 손가락질 한단 말인가?

지난 4일 강원도 평창 켄싱턴호텔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6일부터 개최될 IOC총회 시설을 준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필자가 보기에 전쟁을 불사하자거나, 북한과의 통일은 무조건 선(善)이라는 식의 주장은 모두 기성세대의 목소리다.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삶이 대단히 곤고하고 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소소한 삶이 안정적으로 영위될 세상을 원한다. 그 세상은 위대한 세상이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열심히 일하다 조용히 늙어가는 삶만큼 위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평화로울 그들의 세상을 기성세대는 건드릴 권리가 없다.

평창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점점 더 긴장을 격화시키고자 한다면 어떡하든 꼬투리를 잡고 흠집을 내고 우기고 비난하면 된다. 평화로 가고자 한다면 그냥 올림픽 그 자체로 보면 된다. 컬링 혼성팀의 분투를 보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분전을 응원하면 된다. 북한 응원단의 응원을 즐기면 되고 젊은 자원봉사자들의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에 미소를 보면 된다. 올림픽은 축제다. 적어도 축제 기간 중에는 우리 모두 즐겨야 한다. 심술을 부릴 게 아니라 여유와 품격을 지켜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는 그 다음이다. 대화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는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정부는 물론 국회와 학계,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널리 지혜를 모으면 된다. 물론 또 논란이 일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김여정 특사에게 이미 답을 주었다.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했다. 여건은 북미 간 대화의 시작과 대북 특사를 통한 의제 조율이 만드는 수순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에 앞서 조성해야 할 여건이 또 있다고 본다. 남남 갈등이 완화되어야 한다. 여야가 그리고 언론이 이 갈등을 완화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젊은 세대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스러운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내가 만난 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은 남과 북의 평화 공존을 바라고 있었다. 취직을 바라고 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평화'다. 기성세대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어야 할 소박한 꿈이다.

모두 평화 때문이다. 정부가 대북 특사를 보내고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서, 북한 정권이 무조건 마음에 들거나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북핵과 미사일을 용인하기 때문도 아니다. 좋든 싫든 상대와 공존할 수밖에 없어서, 소위 선제타격을 해서 한반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리는 비극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또 우리 다음 세대가 누려야 할 평범한 삶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기에 하는 것이다. 평화는 원래 어렵고 답답하고 더디게 오는 법이다. 이제 우리 자식세대의 앞날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현실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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