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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 "다들 망할 거라던 <돈꽃>, 3가지 장면 때문에 선택"

[인터뷰] '막장인 줄 알았는데 명품' 호평 받은 <돈꽃>, 흥행 배경엔 장혁이 있다

18.02.18 18:58최종업데이트18.02.1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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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인 줄 알았는데 명품.' 최근 종영한 MBC 토요드라마 <돈꽃>이 받은 호평 중 하나다. 재벌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출생의 비밀, 불륜, 살인, 복수, 암투... <돈꽃>이 다룬 소재는 분명 세속적이고 전개가 뻔한 막장드라마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이야기를 시작하자 '뻔한 막장'이라는 평가는 사라졌다. 아니,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의 열연과 아름다운 영상, 통속적인 주제 뒤에 감춰진 묵직한 메시지까지.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이 아깝지 않았던 <돈꽃>의 주인공, 강필주를 연기한 배우 장혁을 만났다.

'장혁이 왜 주말드라마를?'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이 아깝지 않았던 <돈꽃>의 주인공, 배우 장혁을 만났다. ⓒ sidusHQ


장혁이 <돈꽃>을 택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주말드라마를 해?'였다. 시청률은 주말, 일일드라마가 더 안정적이지만, 주말드라마에는 올드하고 뻔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주말이나 일일 드라마보다는 젊고 트렌디한 이미지의 평일 미니시리즈 출연을 선호한다. 그래서 장혁이 토요드라마 <돈꽃>을 택했을 때,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다. '장혁이 주말을?'

하지만 물음표는 곧 느낌표가 됐다. 결국 <돈꽃>은 주말드라마의 선입견과 전형성을 탈피했다는 호평받았고, 장혁의 용감한 선택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장혁은 "미니와 주말의 차이를 몰랐을 뿐"이라며 웃음 지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주말드라마가 2000년 <왕룽의 대지>였어요. 그땐 말 그대로 평일에 하냐, 주말에 하냐, 그 차이지, 주말과 미니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도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죠. 그런데 이번에 열에 아홉이 왜 주말드라마 하냐더라고요. 

<돈꽃> 섭외 제안을 받고 세 번 정도 고사를 했어요. 하지만 그건 주말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상황이 맞지 않아서였어요. 그땐 연출자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편성도 몰랐거든요. 결국 대본에 나와 있는 강필주의 세 장면이 마음이 들어 하게 됐는데, 이후 김희원 감독님도 오시고 결과적으로 잘 됐죠."  

장혁이 마음에 들어한 세 장면은 기자에게 사진을 주며 윽박지르는 장면과, 윤서원(한소희 분)에게 돈을 주면서 멀리 떠나라고 하는 장면, 그리고 작품에서 삭제된 또 다른 한 장면이었다. 모두 '강필주스러운' 장면들이었다. 선과 악의 콘트라스트(대비)가 명확하고, 감정이 풍부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 매력적이었다고.

흔한 주말드라마 '공식'에서 탈피하고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돈꽃> 성공의 또 다른 의미였다. 특히 김희원 PD의 아름답고 독특한 연출력은 배우들의 호연과 묵직한 드라마의 메시지를 매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게 만들었다. <돈꽃>으로 첫 메인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김희원 PD의 '입봉' 배경에는 장혁의 추천이 있었다.

김희원 PD '뜻밖의 입봉' 배경엔 장혁 있었다 

영화 같은 연출력으로 주목받은 김희원 PD. <돈꽃>은 김 PD의 장편 드라마 입봉작이다. 그리고 '입봉' 배경에는 장혁이 있었다. ⓒ sidusHQ


"김희원 PD와는 전작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단막극 <오래된 안녕>을 함께했어요. 처음 <돈꽃> 대본을 읽었을 때, 미드 <위기의 주부들>을 떠올렸거든요. 일상적인 상황 안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와 인물들 사이에 감정의 간극들 같은 게 비슷하다고 생각했죠. 막연한 복수극이라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인물들의 애증과 상실감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김희원 감독이 잘 다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되면서 김희원 감독을 B팀 연출로 넣어달라고 했죠. 김희원 감독에게는 '아직 입봉 안 했으면 한 번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게 김 감독의 입봉작이 되어버린 거예요. 전부터 입봉작은 꼭 함께하자고 이야기했었는데, 그게 <돈꽃>이 될 줄은 몰랐어요." 

당시 연출자가 <돈꽃>에서 빠지게 되면서, B팀 감독이었던 김희원 PD가 메인 연출을 맡게 된 것이다. 갑자기 입봉 하게 된 김희원 PD에게 처음에는 "입봉하고 싶은 작품이 따로 있을 텐데, 이렇게 돼 미안하게 됐다"고 했지만, 결국 김 PD가 이 드라마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자 "개런티를 따로 달라고 했다"며 웃었다. 김 PD에게 장혁이 요구한 개런티는 "언젠가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안타고니스트(작품 안에서 주인공과 극렬하게 대립하는 인물) 역할을 달라"는 것이었다.

"전부터 평범하지만 안타고니스트인 사람을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보통 '악역'하면 억세거나 하이톤의 목소리로 내지르는 공격적인 캐릭터를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목소리 한 번 크게 내지 않아도 웃으며 이야기해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진짜 무섭다고 생각하거든요."

강필주도 그런 인물이었다. 내면에는 뜨거운 복수심이 끓지만, 차가운 이성과 지성을 무기로 모든 판을 뒤흔든다. 강필주의 차분한 복수는 이따금 처연하기까지 했다. 

"강필주는 딱 그 지점에서 복수하는 사람이에요. 사실 강필주의 목적이 오로지 복수 하나라면 3일 만에 이야기는 끝나요. 청아그룹의 변호사로, 모든 비리를 다 알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하나만 툭 흘려도 다 감방으로 보낼 수 있는데, 굳이 고생할 이유가 없는 거죠. 저는 오히려 강필주가 복수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어요." 

장혁이 찾은 답은 '상실감'이었다. 청아그룹에 들어와 17년 동안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았지만, 어쩌면 "복수 이후의 상실감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다른 인물들이 10개를 생각하면 그보다 많은 20개의 대책을 준비해야 하고, 그들이 뛰어가면 자신은 날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강필주의 시간을 연기하는 동안 "물 위에 떠 있는 고고한 학의 처절한 발길질이 전해지길 바랐다"고 했다.

"상가에 가서 상주가 웃고 있어도, 우리는 그 안에 엄청난 슬픔을 떠올리잖아요. 소리치지 않아도 느껴지는 아픔... 강필주에게 그런 처연함을 담고 싶었어요." 

"강필주가 섹시하다고요? 아니 왜요?" 

17년 동안 복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강필주. 장혁이 그에게 담고 싶었던 건 '처연함'이었다. ⓒ sidusHQ


강필주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지만, 장부천(장승조 분), 정말란(이미숙 분), 장국환(이순재 분)과의 관계 속에서 보여준 다양한 케미스트리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부천이와의 우정과 애증, 질투와 복수심이 얽히고설킨 미묘한 브로맨스는 <돈꽃>의 흥행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장혁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작품 시작 전에 작가님과 이야기하는데, 작가님이 브로맨스를 좋아하신다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강필주와 청아그룹은 철저하게 원수 집안이고, 부천이는 그 집의 아들이잖아요. 브로맨스로 보이는 순간 경천(강필주의 죽은 친동생)이는 뭐가 되나 싶었던 거죠. 강필주가 가진 샘이 마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브로맨스는 진짜 둘 사이에 '사랑'이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게 아닌 법. 밉지만 미워할 수 없고, 죽이고 싶지만 결국은 서로를 지키고 마는 둘의 모습은, 강필주의 복수를 더 안타깝게, 때로 지질한 장부천을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다. 장혁에게 "에로스만 사랑은 아니지 않나.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인데도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필주와 부천이 사이의 감정도 사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이어 "필주가 부천이가 주는 사과를 입으로 받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섹시하다는 사람이 있더라"며 정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섹시함을 의도한 연기 아니었냐"고 묻자, "절대 아니"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지하게 "그게 왜 섹시한 거냐"고 되묻는 장혁의 반응에 기자가 더 당황했음은 물론이다.

싸우듯 경쟁하며 연기... "모두 치열하게 연기했다" 

수시로 "넌 내꺼야", "난 니꺼야"를 외치던 강필주와 장부천. 시청자는 둘 사이의 '브로맨스'에 열광했지만, 정작 장혁은 "브로맨스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 sidusHQ


장혁은 장부천 역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춘 장승조에 대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현장의 '피 튀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는데, 장혁은 "작품 시작하면서 우리 똑딱이(주어진 대사만 그대로 주고받는 것) 하지 말자, 약속된 것만 하지 말고 서로 준비해오자고 했다"고 했다. 

"거의 척지며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순재 선생님도, 이미숙 선배님도, 서로 '어디 해봐, 받아 줄게' 이런 느낌이 아니라 서로의 모든 걸 끌어내면서 연기했거든요. 선배님들도 그렇게 하시는데 후배들이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죠. 다들 빡빡하게 노력했어요. 반칙 없이 싸운 느낌이었어요." 

녹록지 않았던 20년 배우 생활. '20년 경력'이라는 건 그만큼 대중에게 노출됐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매번 자신을 갈고 닦으며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으면 버텨야만 했다. 자신이 버틴 시간보다 두 배, 세 배 긴 시간 배우로 활동했던 선배들의 여전한 치열함을 보며 장혁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모든 선배님들께 예의를 갖추지만, 모둔 분들을 존경할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이 분들은 정말 존경심이 절로 드는 분들이세요. 그냥 '정말란' 그 자체였던 이미숙 선배님과 연기하는 것도, 대본 리딩하며 듣는 이순재 선배님의 젊은 날 이야기도 너무 좋았어요. 

저는 제가 선배들의 사랑을 받은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해요. 신인 때 선배들한테 혼도 많이 나고, 욕도 많이 먹었거든요. 너 호흡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연기 그렇게 하면 안 돼... 긴장 됐지만 많이 배웠죠.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에요. 후배들에게 지적하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저는 선배들의 애정을 받으며 연기한 세대고, 때론 그 애정을 후배들에게도 주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내 의도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친구를 향한 애정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승조는 애정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였어요. 저는 분위기를 만들어줬고, 승조는 정말 열심히 준비해왔어요. 덕분에 장부천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돈꽃>을 통해 확인한 것, 그리고 배운 것 

여전히 '뜨거움'을 가진 배우 장혁. 그는 그 뜨거움의 원천을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이 주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함이 바로 오늘의 장혁을 만들었다. ⓒ sidusHQ


<돈꽃>은 장혁에게 '내가 여전히 이렇게 뜨겁구나' 확인한 드라마였다. 한 번도 편한 마음으로 연기해본 적 없다는 장혁. 경력이 쌓이고 실력이 늘면 어느 정도는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혁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이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함이 오늘의 장혁을 만든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저는 프리랜서예요. 월급이 없으니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늘 안고 살아요. 배우한테 다음이라는 건 없어요. 이번에 잘해야 다음이 주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니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할 수밖에 없는 거죠."   

배운 것도 있다. 

"재밌는 건, 이 드라마는 망할 걸 각오하고 시작했다는 거예요. 다들 망할 거라고 했어요. '주말드라마는 그렇게 찍으면 안 돼', '주말드라마가 어려우면 사람들 안 봐'라고들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편성도 난항이었고요. 하지만 전 이미 하기로 했잖아요. 김희원 감독이랑 '즐겁게 망해보자'고 했어요. 어차피 망할 거 미드나 찍어 보자, 막 갔죠. 

근데 <추노> 때도 그랬거든요. 4부쯤엔 감독님까지 교체될 뻔했어요. '사극을 왜 그렇게 해?', '사극 그렇게 만들면 안 돼'... 근데 반응이 왔죠. 주말은 이래야 해, 사극은 이래야 해... 전형성을 깨면 진일보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실패하면 타격이 크니까 다들 굳이 도전하지 않고 머물죠. 근데 그러면 퇴보하는 거거든요. 이거저거 다 잊고, 그냥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그거 하나만 보고 '한 번 제대로 망해보자' 한 작품들인데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던질 수 있는 이야기라면 다른 생각은 하지 말자, 라는 걸 배웠죠." 

장혁은 연기를 향한 여전한 '갈증'을 고백하기도 했다. 운동선수가 꿈이었던 학창시절, 친구 따라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19살 소년이 배우가 되기까지는, '한 번 가 본 현장에서 맛 본 즐거움과 연기의 행복"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배우. 이미 자타공인 '믿고 보는 배우'지만, 주어지는 역할을 연기하며 만족하기 보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싶다고. 이런 갈증은 자연스레 직접 작품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번졌다.

"배우로 20년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위에 제작하는 친구, 글을 쓰는 친구들이 생겼어요. 그 친구들과 작품을 함께 개발해보려고 해요. 우선 생각한 건 시라소니 캐릭터를 영화 <갱스 오브 뉴욕> 느낌으로 그리는 건 어떨까 하는 거예요. 서울 종로와 명동, 만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액션도 보여주고, 이민자와 토박이의 갈등을 액션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아직 구체화 된 건 아니고, 아이디어 정도지만요. 직접 제작자가 되면 갈증이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연기를 향한 여전한 '갈증'을 고백한 장혁. 이런 갈증은 자연스레 직접 작품을 제작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번졌다. ⓒ sidusHQ



장혁 돈꽃 강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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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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