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e사람94화

"은행권 채용비리, 금융지주회장들 책임지고 사퇴해야"

[e사람] 허권 금융노조위원장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 자본의 힘 여전히 강해"

등록 2018.02.19 10:57수정 2018.02.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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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남소연



"은행권 채용비리 중심에는 국민은행은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KEB하나은행은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있다고 보는 거죠. 브이아이피(VIP)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반 실무진에선 하기 어렵죠. (회장들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 등 현장에서 그는 이른바 '강성'으로 통한다. 움찔할 정도로 센 발언을 서슴지 않아 같이 있던 사람들이 말릴 정도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아래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허권 금융노조위원장. 현장에서와 달리 차분한 어조였지만, 솔직한 그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은행들이 신입직원 채용 때 일부 지원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정황이 속속 나오면서 금융권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특히 하나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55명, 20명의 이름이 담긴 'VIP리스트'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에 각 지주 회장들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것이 허 위원장의 생각이다. 

"최순실 지시에 회장이 은행 인사에 개입... 있을 수 없는 일"

허 위원장은 "금융감독원에서 밝힌 자료를 보면, 가장 심한 곳이 하나은행"이라며 "(관련 임원들이) 충분히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정태 회장의 경우 채용비리 외에도 여러 비리가 있다"며 "언론을 회유하기 위해 거액을 제공하거나, 최순실 관련으로 은행 인사에 개입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덧붙였다.

'일부 은행은 인사 관련 자료를 자주 폐기해 채용비리 논란에서 비켜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허 위원장은 놀란 눈치였다. 이어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또 허 위원장은 "노조의 지출결의서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서도 보존기간이 5년 정도 된다"며 "하물며 인사 관련 자료의 보존기간이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허 위원장은 노동이사제 등 금융권을 둘러싼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놨다. 

- 국민은행 노조가 우리사주조합 지분으로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회장을 제외하고, 권순원 교수를 이사로 추천하는 내용이다. 최근 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런 주주제안이 힘을 얻고 있다.
"회사 쪽에서 노조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엔 이사후보로 추천된 당사자가 정치적,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추천된 분은 금융전문가이며 학자로서 균형감각을 가지신 분이다. 회사의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위해 이런 분을 추천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불투명한 경영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 생각한다."

- 신한은행 노조도 '노동자 추천 이사제' 추진을 논의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국민은행이 이를 진행할 당시 많은 은행들의 대주주로 있는 국민연금이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은 영향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의견을 모아 추진한다는 얘기는 있다. 이는 은행들 사이에서 올해 상반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한 힘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영계는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지만... 최저임금 논란 보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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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남소연



- 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직접 이사가 되는, 좀더 강경한 방법이다. 이와 달리 노동자가 이사후보를 추천하는 것은 법에도 명시돼있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경영계나 재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재계, 경영계 쪽에선 문재인 정부 들어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쓴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노동조합은 (경영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이미 결정됐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저임금 기준에 상여금 등을 포함하게 되면 오히려 최저임금이 과거보다 덜 인상될 수도 있다."

차분히 답변을 이어나가던 허 위원장의 목소리가 커진 시점이었다. 그는 "자본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며 "(최저임금 영향을) 잘못 이해해 소상공인, 경영계로부터 (노조가) 공격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허 위원장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허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노동존중사회? 아직 첫발도 내딛지 않아...실질적 변화 없어"

"안타까운 것은, 과연 지금 우리나라가 노동존중사회가 됐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문 정부가 지난해 5월에 출범했습니다. 노동존중사회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첫발도 내딛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에서도 '노조공화국'이라든지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단지 문 정부가 노동존중사회를 이끌고 있어 마음으로 느끼기에 뭔가 변화됐나 생각되지만, 실질적으로 정부 관료들과도 얘기해보면 변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 그 동안 금융노조는 핵심성과지표(KPI)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엔 금융연구원에서도 고객만족도, 건전성 등 장기성과지표 위주로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에 힘을 실어줬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였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에서 은행권 KPI를 개선하라고 금융위에 권고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때 KPI 개선 내용을 주요 안건으로 넣을 예정이다. 또 이는 소비자 피해와 관계되는 부분이기도 해서 금융감독원에도 이야기할 계획이다. 금감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은행원들끼리) 경쟁이 심해지면 소비자 피해가 많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 지난해 국정감사 때 현대판 여행원 제도인, 2차 정규직 문제도 제기됐었다. 핵심은 같은 일을 하고도 2차 정규직은 월급을 더 적게 받는다는 점이다.
"기업은행 같은 경우 이런 부분들을 잘 조율한, 성공적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정규직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은행들도 2차 정규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고 있지만, 모두 깊이 고민하고 있다. 금융권은 제조업이라든지 이런 곳에 비해 이 문제가 심각한 편은 아니다.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다 일부는 정규직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은행의 사례가 롤모델로 남아 다른 은행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은행권 희망퇴직이 계속 늘고 있는데, 실적이 좋아져 주주들에게 배당을 더 많이 해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4차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자리가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일자리 이런 부분에 관해서도 노사가 공동으로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금융권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일한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선 인력을 확충할 수 밖에 없다. 노조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회사 쪽에선 인력 운용은 경영진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우리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

"MB정부서 강제추진한 농협 신용-경제분리, 지원약속 어겨...박근혜 정부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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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남소연


이어 허 위원장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지난 2012년 MB정부가 추진한 NH농협금융의 신경분리(농협은행 등 신용사업과 농협중앙회 등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허 위원장은 금융노조 농협은행지부 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신경분리 반대를 위한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었다. 그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것이죠. 강제적으로 도입했습니다. 가장 화가 난 부분이 무엇이냐 하면, 정부가 지원해주겠다는 약속을 완전히 어겼다는 것입니다. (신경분리 때 드는 비용 중) 5조원을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5조원에 대한 이자만 지원해주게 된 것이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직원들이 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박근혜 정부도 사실상 이를 방치한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노무현 정부에선 농협 신경분리에 비용이 많이 드니 이를 2017년부터 진행하자고 했었는데, MB정부가 이를 급히 밀어붙이면서 그 피해를 직원들이 입게 됐다고 허 위원장은 부연했다. 또 이를 방치한 박근혜 정부도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허 위원장은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는 "기존 정권에서 국민들의 세금을 자기 호주머니에 챙긴 세력들이 있었다"며 "국가정보원이 특수활동비로 민간인을 사찰한다든지, 그런 전 정권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허 위원장은 "그런 세력들이 여전히 국회의 3분의 1 이상 남아있고, 그런 점에서 제2의, 제3의 촛불혁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그는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정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분명히 얘기하고 싶다"며 "금융노조도 이런 부분에 주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허권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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