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8번 출구, 삼성 경비원은 나를 가로막았다

860여일 넘긴 반올림의 투쟁, 저의 무심함이 미안했습니다

등록 2018.02.19 20:45수정 2018.02.1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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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일인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순실 게이트로 시대가 시끄럽고 어수선했던 시절,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상대로 한국회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정의당의 한 의원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 값에 대해 삼성이 얼마나 치졸하게 굴었는가를 질타하였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은 그처럼 주목받지 못한 채 청문회의 한 장면으로 지나갔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반올림은 아주 오랜시간 투쟁했습니다.

대표적인 일례로 영화를 만들었고,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장을 860일이 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삼성을 상대로 한 농성장이 이토록 오랜시간 유지될 수 있었다니, 지난 뉴스들을 돌이켜보니 새삼 신기하고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계기는, 삼성 이재용의 석방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재용씨가 실제로 삼성 승계를 위해 뇌물을 공여한 것보다 일방적 강요였다는 것이 석방의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발적 의사와 무관하게 박근혜 또는 최순실의 강요에 의해 막대한 수혜를 입은 행운의 사나이인 겁니다. 이런 황당무계한 판결이 사실 그렇게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삼성의 후계자가 구치소에서 353일의 수감생활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정의가 성립된 거 아닌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두번째 계기는 제가 며칠 전 겪은 경험담 때문입니다. 저는 강남역 8번 출구에 있는 삼성 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에 잠시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860여일을 넘기며 오랜 시간 투쟁한 곳을 단 한 번도 들르지 못했던 그간의 저의 무심함이 갑작스레 미안하고 죄스러웠습니다. 

잠시라도 들려 인사를 나누고자 그곳에 갔습니다. 저는 다시 8번 출구로 내려왔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를 다녀간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존의 8번 출구가 공사중이라 삼성사옥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임시 출구를 지나가야 하고, 또 지나가려고 보면 지하의 커피숍 등 상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농성장에 들리기 전에 보았던 삼성사옥 지하 상가 베이커리에서 딸에게 줄 빵과 케이크가 생각나,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경비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제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저에게 행선지를 물어보았고, 저는 커피숍으로 가는 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경비는 다시 저에게 왜 하필 여기 커피숍으로 가느냐고 다시 가로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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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8번출구 앞 반올림 농성장 ⓒ 반올림


날 가로막은 경비... "아까 천막에서 나오셨잖아요"

그때서야 저는 눈치를 챘습니다. 저는 황당했지만, 다시 왜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까 천막에서 나오셨잖아요."

네, 저는 농성장에서 나온 사람이었기에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삼성 사옥 지하 상가를 자유로이 드나들었습니다. 저는 다시 제가 어느 커피숍으로 가는가는 제 자유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불쾌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멈추지 않고 저에게 자신은 질문할 권리가 있고, 제가 진짜 커피숍으로 갈지 불확실하다 했습니다. 저는 조끼를 입지도 않았고, 머리띠를 두르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추운 겨울날 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삼성사옥 지하 상가 건물에서 혼자 무엇을 할거라 생각한 걸까요? 그리고 누가 그분에게 저의 행선지를 묻고, 그것을 의심할 권리를 준 걸까요? 제가 그분에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거라 말하자 그분은 자신은 그냥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길을 비켜줬습니다. 그러면서 말하더군요. 앞으로도 그 농성장을 나온 사람들에게 계속 이렇게 물어볼 것이라고 말입니다. 

실랑이가 십여분 정도 지속되고 난 뒤 저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제가 그곳을 들렸다는 걸 알고, 또 저를 따라와 붙잡았을까요?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목격하고 제 뒤를 밟은 걸까요? 그리고 또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제 행선지를 묻고 또 되물었을 수 있었을까? 누가 그에게 그런 행동을 지시 혹은 허락해주었을까요?

온갖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누군가 제게 그러더군요.

"그럴수도 있지. 그건 그 사람 일이잖아."

삼성 농성장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민간인의 뒤를 밟고, 그의 행선지를 감시하는 게 당연하고, 경비업무의 고유한 업무가 되버린 삼성제국을 주변 지인들조차 자연스레 받아들이더군요.

삼성 이재용은 서울 구치소를 나오면서 언론에게 국민들께 죄송하고 본인을 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부렁인걸 알면서도 자신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을 이처럼 대접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2월 5일 석방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설 전날에 말입니다. 

국회 청문회에서 삼성 반도체 노동자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의 회사의 경비는 대관절 누구의 명령을 받고 다른 사람의 뒤를 밟고 불심검문을 한 걸까요?

저는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를 이유로 삼성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물론,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정을 받아들일지도 불투명한 사안입니다. 그래도 저는 항의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테러범도 아니고 경비들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거구의 몸도 아닙니다.

그런 저의 앞길을 가로막고, 의심하며 비아냥거림을 일삼지 않던 삼성의 경비는 아마도 삼성으로 인해 직접 피해를 받은 피해자들에게도 그랬을 겁니다. 저는 그 피해자들이 떠올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는 단순히 삼성의 지시를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를 그렇게 대접하라고 한 삼성을 엄벌해야 합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죄를 지은 자에게 죄를 묻지 않고, 피해를 입은 사람을 길거리로 내모는 이 세상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하루에 단순히 일어난 해프닝으로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삼성의 피해자들이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이 글을 보는 시민분들께 요청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남역 8번 출구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반올림 농성장에 가서 인사라도 나누신 뒤, 꼭 삼성 지하상가를 거쳐 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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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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