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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응원단이 '똑똑' 신호 보내요" 패배한 경기가 뿌듯한 까닭

[인터뷰] 남북공동응원단 이원규·김태복·신상현·황성연

18.02.18 17:36최종업데이트18.02.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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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이 18일 오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위스와의 경기에 앞서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응원을 선보이고 있다. ⓒ 유성호


2018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이 18일 오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위스와의 경기에 앞서 경기장을 찾은 학생들에게 응원을 알려주고 있다. ⓒ 유성호


"자 시작할게요~ 목소리 엄청 크게 해야 해요!"
"힘내라! 힘내라!"

18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 앞. 목이 잔뜩 쉰 김태복(34)씨와 초등학생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초등학생들이 한 손에 쥔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외치는 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스위스와 5-8위 순위결정전을 치르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응원하러 모인 이들이었다.

관중들에게 단일팀 응원구호를 알려주고 한반도기를 나눠주는 이들은 어김 없이 남북공동응원단이었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의 주도로 구성된 이들 응원단은 단일팀 경기뿐만 아니라 북측 선수들이 출전하는 알파인 스키 경기장에도 응원전을 펼쳤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응원단의 응원지휘자들을 만나, 그들이 평창올림픽에서 쓰고 있는 '평화 이야기'를 들어 봤다.

벌써 16년째 남북공동응원 나서는 이원규 지휘팀장

이원규 남북공동응원단 총 지휘팀장 ⓒ 유성호




응원단 총 지휘팀장 이원규(44)씨는 남북 공동응원의 산 증인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통일응원단 '아리랑'의 단원으로 참가해 처음으로 북측 응원단과 호흡을 맞췄다. 이후로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7년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의 남북공동응원단으로 활동했다. 그에게 지난 경험과 비교한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 이야기를 들어봤다.

-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에 참여한 소감은 어떤가.
"지금까지 (남북 공동응원단이 경험한) 가장 큰 대회가 아시안 게임이었다. 그랬는데 이제 세계적으로 큰 행사인 올림픽에서 응원을 하려고 하니 긴장이 많이 됐다. 특히나 북측 응원단과 함께 하는 공동응원이 너무 오랜만이다. 2002, 2003년 이후엔 내려오지 않았다. 우리야 북측 선수들이 외롭게 경기하는 걸 그냥 보진 못할 것 같아서 (북측 응원단이 없더라도) 열심히 응원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10여년 만에 북측 응원단과 함께 응원하게 됐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도 많았다."

- 과거의 남북공동응원과 비교할 때 차이점이 있나.
"2002년 경험과 비교하자면, 관중 분들. 그러니까 우리 시민들이 2002년엔 (북측을) 맞이할 준비가 됐던 것 같다. 그 땐 보름 만에 완전히 분위기가 바뀌는 걸 체험했다. 그런데 이번 평창올림픽 같은 경우엔 '아직 시민들이 마음의 준비가 덜 됐구나'싶다. 지난 10년 간 (남북)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땐 6.15 공동선언 후 활발한 (남북) 교류가 있는 상황에서 (북측을) 맞이하니깐 금방 동포애가 끓어 넘쳤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역할을 자임해서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더 마음을 열 수 있도록, 같이 동포애를 느낄 수 있도록 (북측 응원단 등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북측 응원단과 서로 눈빛과 신호 주고받았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단이 18일 오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과 스위스와의 경기에 앞서 경기장을 찾은 시민들에게 응원을 선보이자, 시민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 유성호


- 이번 올림픽에서 북측 응원단과 '통했다'라고 할 만한 일이 있다면?
"큰 경기장에선 서로 눈빛을 던져도 건너편에 있다면 보기 힘들지 않나. 그런데 알파인 스키 경기 응원 때는 달랐다. (북측 응원단과) 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함께 응원했는데 서로 눈빛과 신호를 주고받았다. 여기서 '우리는'이라고 외치면, 그쪽에서 '하나다'라고 외치고. 여기서 '조국'이라고 외치면, 그쪽에서 '통일'이라고 외쳤다. 경기장이 상대적으로 좁았던 덕에 그런 것이 가능하더라. 이심전심. 서로 손짓하면서 응원했던 것들. 우리쪽 응원단도 굉장히 좋아했고, 북측 응원단의 마음도 뜨겁게 느껴졌다."

- 평창올림픽 남북공동응원 때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첫 경기 때 표를 못 구해서 응원 리더 몇 명만 (경기장에) 들어갔다. 관전 비슷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대로 가면 경기가 힘없이 끝날 것 같았다. 경기 종료 5분 남겨놓고 리더들이 계획 없이 관중 앞에 섰다. '이대로 끝낼 수 있습니까? 응원 한 번 할까요'그렇게 외치니깐 관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 같이 '합시다'라고 외쳐주는 거다. '아, 이 분들은 단일팀 응원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같이 만나는 이 자리를 빛내려 왔구나'싶었다. 그래서 5분 내내 관중들과 함께 '힘내라'를 외쳤다. 결국, 8 대 0으로 졌지만 분위기는 우리가 승리한 것처럼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도 다 일어나서 박수 치고. 우리끼리 '그때 일어서길 잘했다. 그것도 안 했으면 경기장에 왔던 시민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돌아갔을 것 같다'고 얘기 나눴다. 그래서 그 첫 경기가 상당히 뿌듯하다."

- 이제 북측 응원단도 남북공동응원단이 눈에 익지 않았겠나.
"(웃음) 그쪽에서도 이제 많은 신호를 보내준다. 거기서 박수 한번 치면, 우리가 한번 치겠다고 '똑똑'이렇게 몸짓을 해준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응원단이 (표 문제로) 한 자리에 모여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일반 관중들은 그런 신호를 받아도 잘 안 되더라. 예를 들어, 단일팀 두 번째 경기 땐 북측 응원단에서 1피리어드 당시 '파도타기'를 시도했다. 옆에 있던 분들이 그것을 잘 못 받았다. 그래서 '북측 응원단이 하고 싶어 했던 것 해보자'고 해서 2피리어드 때 '파도타기'를 돌렸는데 됐다. 모두 관중 덕분이다."

- 마지막으로, 남북공동응원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보나.
"평창올림픽 캐치프레이즈가 '하나 된 열정'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하나 된 평화, 하나 된 통일'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기장 안에서 구현하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경기를 보러 온 분들부터 전 세계인들까지 '우리는 하나'라는 목소리에 공감하게 된다면, 평창올림픽은 경제적·문화적 성공을 뛰어넘어 평화라는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북 공동응원이) 통일이라는 민족의 숙원을 풀어가는 상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작은 통일을 만드는 것이다."

북측 응원단 처음 만난 응원 지휘자 김태복·신상현·황선영

응원단은 이원규씨와 같은 '베테랑'만으로 구성된 건 아니다. '신예' 응원단원들이 훨씬 많다. 그 중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측 응원단과 처음 마주한 '응원 지휘자(리더)' 3인방 김태복(34), 신상현(32), 황선영(25)씨의 이야기도 들어봤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신상현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 유성호

신상현:
"사실 여자 아이스하키 팀 성적이 좋은 건 아니지 않나. 시민들도 그 부분을 많이 답답해하셨다. 하지만 저희가 앞에 나가서 '끝까지 한 번 응원해봅시다'라고 했을 때,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관객들이 호응을 해주셨다. 북측 응원단들과도 눈빛을 마주했다. '이런 응원 같이 해 달라'라고 눈빛을 교환하면 북측에서도 호응을 해줬다. '북측 응원단과 남측 시민들을 우리가 실제로 이어줬구나'라는 걸 느꼈을 때 굉장히 뿌듯했다. 작게나마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나갔다는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 실제로 북측 응원단을 가까이서 보면 어떤 느낌이 큰가?
신상현: "'아, 저 사람이 그냥 북에서 사는 사람이구나'라는 게 솔직한 첫 감정이었다. 응원하다보니까 '다 똑같구나'싶더라. 말이 통하고, 문화가 통하고, 같은 팀을 응원하고 있고…. 첫 만남이지만 친밀감 있게 하나 돼 응원할 수 있어서 좋았다."

황선영: "응원을 같이 하다 보니 서로서로 합이 자연스럽게 맞아가는 과정이 있다. 이렇게 당연하게 만날 수 있는 사이인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만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응원단 활동 시작 전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놀랐거나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신상현: "아시안게임이나 다른 때는 (응원단) 좌석이 확보됐다. 덕분에 우리가 모여 앉아서 규모 있는 응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올림픽이라 그런지 자리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규모 있는 응원을 못하게 돼) 많이 당황했다. 그러다보니 남측 관중들과 함께 응원할 방법을 찾고 노력했다. 지금 생각하면, 관중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응원으로 만들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게 더 큰 응원이 아니겠나."

김태복: "'북측 응원단과 우리가 어떻게 호흡을 맞출까'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TV에서 보면 북측 응원단이 엄청 현란하게 응원하잖나. 거기서 그렇게 하면, 사실 우리는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응원 구호는 우리랑 거의 똑같더라. 첫 번째 경기 때는 (호흡을) 좀 못 맞췄는데, 두 번째 경기 때부터는 같이 호흡을 맞출 수가 있었다. 관중 분들도 응원보단 경기를 보러 오신 분들이니 '함께 하실까'싶었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한반도기 흔드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우시고, '우리는'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다'라고 외쳐주시고... '관중 분들이 단일팀을 이렇게 지지하고 응원하시는구나'를 느꼈다."

"기진맥진한 응원단에 물 쥐어준 시민, 덕분에 신발 벗고 달렸다"

- 응원전 중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태복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 유성호

김태복:
"많은 분이 동참하도록 열심히 응원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앞에서 응원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를 수 있다고, 경기 관계자 분들이 제지하시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관중 분들이 '좋은 걸 왜(막아)', '일본이랑 경기하는데 응원을 왜 막느냐'고 해주셨다. 관중들과 함께 호흡 맞출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극복된 것 같다."

- 관중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일은?
황선영: "마이크도 없고, 뭐도 없으니까. 앞에서 큰 소리를 질러야 하잖나. 그래서 목소리가 다 쉬었다. 목이 쉰 친구들이 많은데, 그 중에 체구가 작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지난 한일전 때 1피리어드가 끝나고 기진맥진 옆에 쓰러져 있었다. 관중 분이 물 쥐어주시면서 '이거 먹고 힘내라'고 해주셨다. 덕분에 2 피리어드부터 그 친구가 신발도 벗고 맨손으로 진짜 응원을 열심히 했다. 나중에는 목소리가 완전히 아예 안 나오게 됐는데, 관중 분이 (응원구호가 적힌) 피켓을 먼저 보시고 외쳐주시더라. 함께 해주시는 열성적인 관객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다."

- 남북공동응원단, 시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나. 또 당부하고픈 말은?

황선영 남북공동응원단 지휘자 ⓒ 유성호

황선영: "(웃음)가장 큰 목표는, 남과 북이 합을 맞춰서 응원을 잘 이뤄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응원을 하면서 점점 자연스럽게 합이 맞아갔다. 또 우리 응원단뿐만이 아니라 관중 분들과의 합도 맞아가는 걸 봤다. 공동응원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관중 분들도 응원단과 함께 목소리를 맞춰 응원하기에 경기가 더 재미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신상현: "우리가 응원하는 이유는 스포츠 교류를 통해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남북관계를 떠나서 올림픽 본래 정신이 그렇다.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응원단을 더 알려주셨으면,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앞으로 다른 국제경기나 스포츠 교류의 장이 열렸을 때도 이번 기억을 떠올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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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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