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찌질한' 펜스 부통령

[황 기자의 한반도 이슈] '미국 이미지 실추' 비판 피하려고 '막후접촉'까지 공개

등록 2018.02.22 12:24수정 2018.02.22 13:59
23
원고료로 응원
a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만남 불발 내용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끝까지 '찌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얘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일자(미국 현지시각)에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북측이 만나기를 원한다는 보고를 들은 펜스 부통령이 2월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만날 계획이었으나 북한이 회담 2시간 전 일정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원문을 자세히 보면, 기자가 작은 실마리를 잡고 이곳저곳 탐문하면서 쓴 기사라기보다는, 펜스 부통령 측에서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말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작심하고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외교에서는 막후접촉 등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기본 룰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은 것이다. '소시지와 외교는 만드는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외교가의 금언은 그 과정이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그 이후'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a

박수치는 남북, 꼼짝않는 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지난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남북 단일팀 선수 입장에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미국 마이크 펜스 부통령 내외. 뒤는 손 흔드는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 연합뉴스


펜스 부통령은 김여정 부부장과 만나기로 돼 있던 2월 10일을 하루 앞둔 9일, 문재인 대통령 초청 공식 만찬장에서 다른 정상들과는 인사를 하면서, 김영남 위원장만 외면하고 악수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바로 뒷줄에 있던 김여정 부부장과 김영남 위원장을 외면한 것은 물론 남북 단일팀 입장도 앉은 채 외면해버렸다.

'자유 세계의 리더' '세계 최강대국'임을 자랑하는 미국의 지도자라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에서도 비판 여론이 거셌다. CNN은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 실물을 방문하고 탈북자들과 만나는 반북 드라이브를 한 것과 묶어서 "초강대국 이미지를 실추시킨 품위 없고 저급한 행동"이라고 맹비판했고, <뉴욕타임스>도 "압박 강화라는 해묵은 메시지를 들고 간 펜스 부통령과 달리 김여정은 파격적인 화해 메시지를 내놨다"고 했다(관련 기사 : 펜스 부통령의 '뻘짓', 미국에서 어떤 욕 먹나).


미 국무부 "대화를 거부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 강조

<워싱턴포스트> 기사는 이런 비판에 대한 펜스 부통령과 백악관의 '여론 무마 작업용'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 측은, 그의 방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선전장으로 만들려는 북한의 의도를 막는 것이었는데, 북한이 면담 약속을 취소한 것은 그의 의도가 성공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The vice president's office promoted his trip as an effort to combat what it said was North Korea's plan to use the Winter Games for propaganda purposes and portrayed the cancellation of the meeting as evidence his mission was a success.).

미국 정부는 '김여정과의 대화 불발' 폭로를 통해, 대화를 거부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북한의 취소'를 강조하면서 "펜스 부통령은 기회를 잡을 준비가 돼 있었고, 이 만남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강조할 기회로 삼으려 했으나 북한이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라고 밝힌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미국 대화 의지는 확인 돼

a

펜스와 아베 뒤로 김영남과 김여정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뒤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은 다시 한 번 유일 초강대국 답지 않게, 북한과 같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고 있으며 ▲ 그 구체적 라인이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고 ▲ "지금 남북정상회담은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언급에서 나타난 것처럼,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한 북미간 대화가 험난할 것임을 재확인시켜줬다.

동시에 '2월 10일'에는 실패했지만 북한과 미국이 만날 생각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볼 여지도 생긴 것이다.
#펜스 부통령 #김여정
댓글2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