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왜 '강경파' 김영철을 선택했을까

[분석] 대남정책 책임자 전면 등장... 문 대통령 진의 파악·대화 의지 과시

등록 2018.02.22 18:35수정 2018.02.2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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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는 22일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해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대표단을 25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3년 3월, 당시 군 정찰총국장 자격으로 조선중앙TV에 출연해 군 최고사령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는 모습. ⓒ 연합뉴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낼 것이라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민족의 경사'라고 규정하면서 친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특사로 파견하는 등 무게를 싣고 있는 데다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때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고위급 인사들을 보낸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22일 북한이 폐막식 대표로 파견하겠다고 밝힌 김영철도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당 통일전선부 책임자라는 점에서 파견 대상자로 예상된 인사 중 하나였지만, 문재인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인물이기도 하다.

김영철은 중대장급 이상 군사지휘관을 교육하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출신으로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2009년)을 거친 인민군 대장 출신으로 2016년 5월 당 정치국 위원이자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통전부장직을 맡았다. 

천안함 사건 핵심 배후로 지목되기도... 확인은 안돼

그는 국내 일각에서 천안함 사건 등 대남도발을 주도한 핵심인물로 지목받고 있고, '대량살상무기개발 정부 인사'로 우리 정부와 미국 재무부의 금융제재대상에도 올라 있다(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북의 소행이라는 전제 하에 그가 당시 총정찰국장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지목된 것일 뿐 관련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많다. 천안함 사건을 북의 소행이라고 발표했던 2010년 민군합동조사단도 북한 정찰총국장이 천안함 공격을 주도했다고 발표하지는 않았다).

북으로서는 이런 그를 파견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대화 의지를 시험하는 한편, 미국 재무부 제제 대상인 김여정 부부장과 미국은 물론 유엔 제재 대상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의 방남 허용에 이어, 더 확실하게 대북 제재에 구멍을 내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군부 대남 강경파'의 대표 격으로 인식돼 있는 인물이라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북으로서는 대화 의지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과시'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고 강경파'가 국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림픽에, 그것도 남한에서 치러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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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방남 고위급대표단과 기념사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남쪽을 방문하고 평양에 귀환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 등 고위급대표단과 만나 이들의 활동 내용을 보고받고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으로서는 그가 대남사업 책임자라는 점에서 당장은 미국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의미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11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김여정 부부장 등 북한 대표단 초청 오찬에 참석했던 정 전 장관은 "당시 북한의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도 군 출신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달변에 문학작품을 거론하는 부드러운 모습이었다"라면서 "북의 대남도발과 관련해 비판이 나오겠지만, 김영철도 그간 우리 인식과는 전혀 다른 행동과 이미지를 보일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또 북으로서는 지난 10일 김여정 부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총론'식으로 제안한 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담당업무 책임자를 통해 각론을 보완 설명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 측의 속내도 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긴 상황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인 조성렬 박사는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자'면서 조속한 북미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일주일 뒤인 17일에 다시 '지금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대한 기대는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이에 대해 직접 진의 파악을 해야 할 상황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대표단·응원단·예술단 파견실무 누가 했겠나... 김영철 안 만나면 남북대화 불가능"

25일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는 그가  27일까지 머무른다는 점에서 논의 시간은 충분한 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5일에 폐막식에 참석하고 26일 하루 정도가 비게 될 텐데, 이왕 내려온 만큼 한반도 평화, 남북관계 발전과 화해를 위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귀환한 김여정 특사로부터 12일에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 내용과도 연결된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북남관계개선발전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해당 부문에서 이를 위한 실무 대책들을 세울 것에 대한 '강령적인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북에서 '강령적 지시'는 일반적인 명령보다 훨씬 강한 표현으로,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김영철 부장이 대남정책 총괄 책임자라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 그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북으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김영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진행돼온 남북 장관급 회담과 고위급 대표단을 비롯한 예술단과 응원파견 작업이 실무를 누가 총괄했겠느냐"라며 "그를 만나지 않고는 남북대화가 불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대화 등에 대한 북의 상세한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조성렬 박사는 "문 대통령이 김여정 특사와 2시간 20분 이상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북의 대답을 들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1박2일' 아닌 '2박3일' 일정... 청와대 "이방카-김영철 면담 없을 것"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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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통일부 장관(왼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월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를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철 파견'은 대미 관계에서의 메시지도 엿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도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기 때문이다. 조성렬 박사는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의 업무상 김영철 통전부장과 의미있는 만남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실무자들끼리 비공개로 만날 수는 있다"라면서 "북이 25일 일정을 3일이나 앞서서 발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인데,  미국 대표단이 출발 전에 북과 접촉할 수 있는 적절한 인물을 수행단에 넣으라는 뜻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폐회식 방한을 계기로 북미가 접촉할 계획이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불발되기는 했지만 지난 10일에도 펜스 미 부통령과 김여정 특사의 만남이 추진된 바 있다.

한편, 김영철 통전부장이 이전 당 비서인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겸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상대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보다 고위 인사라는 점에서, 우리 측 대응은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맡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과의 면담과 별도로 서훈·조명균-김영철·리선권 라인이 별도로 회동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철 #이방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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