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돈번 아들의 '한턱'... 눈물이 났다

내 안에 공존하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

등록 2018.02.24 17:27수정 2018.02.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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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사회적 시스템 중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유용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코업'(Co-Op)이다. ⓒ unsplash


아들이 첫 페이체크(PayCheque)를 받았다. 회사에 들어가서 일한 일주일치 급여를 받은 것이니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내가 캐나다에 와서 2주일 동안 파트타임을 하며 처음 받았던 것보다는 훨씬 큰 돈이라 학생 입장에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아들은 이제 대학교 1학년, 아직 만 18세다. 세상을 향해서 조금씩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거다. 한편 대견하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하다. 품속에 있던 게 엊그제인데 이젠 제법 남자다운 모습을 갖춰가는 아이. 운전을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코업, 참 유용한 시스템

캐나다의 사회적 시스템 중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유용한 것 중의 하나가 소위 '코업'(Co-Op)이다. 일종의 인턴십 같은 과정인데 주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 공부도 하면서 관련 분야 직장에서 일을 하며 실제 경험을 쌓는다. 당연히 보수도 받게 되니 꿩 먹고 알 먹고, 가재 잡고 도랑도 치는 셈이다. 대체로 학생들이 학기와 학기 사이에 일정기간(3~4개월) 일을 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외에도 일종의 수습기간 명목으로 정식 채용을 하기 전 근무하는 것도 코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학생들이 하는 코업은 학교마다, 전공마다 그 기간과 의무사항 여부가 달라서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 코업 과정이 특별히 강조되는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엔지니어링 전공인 학생들은 4개월씩 대여섯 번의 코업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그러니 강의를 듣는 수업 8학기와 코업 6학기를 합쳐 도합 14학기, 학기마다 4개월씩을 곱하면 전체 56개월, 거의 5년이 돼야 졸업이 가능하다. 중간에 방학이라는 게 따로 없이 사이사이 짜투리 시간에만 토막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그저 시간이 남아돌아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내 대학 시절과 비교할 때 좀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문제는 이 코업도 결국은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호하니 고학년일수록 코업 찾기가 좀 더 수월하고 1학년 첫 코업이 가장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도 1월 초에는 몇몇 같은 과 친구들이 이미 코업이 확정이 돼 회사에 출근하고 있는데 자신은 몇 번의 면접을 보고도 아무런 성과가 나지 않아 답답해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1월 중순쯤 자기 전공과 연계되는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 첫 월급을 받게 된 것이다.

"아빠가 음식 마음껏 시기킬 원했는데..."

아이는 나와 아내에게 저녁을 사겠다며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토론토에서 꽤 알려진 한식당을 찾아갔다. 아이가 기분 좋게 한 턱 내려는데 분위기 깨지 않도록 고기와 냉면 그리고 된장찌개까지 곁들여 푸짐하게 먹고 아이의 임시 거처인 회사 근처 아파트로 차를 몰고 갔다. 눈이 내리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배도 부르고, 음악고 좋고, 아들이 운전하니 더욱 좋네" 하며 눈 내리는 하이웨이 400의 풍광을 느긋이 즐기고 있었다. 한참을 운전하며 가던 아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빠, 제가 첫 월급을 타서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 마음껏 시키길 원했는데 아빠는 그런 것 같지 않아. 다음에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나와 아내를 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식하려 할 때마다 "왜 쓸데 없이 밖에서 돈을 쓰느냐"라면서 외출을 거부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거였다. 그리곤 그런 것이 부모님들 마음인 것을 이해는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맘이 좋지 않았던 엄마 아빠의 마음이 지금의 자기 마음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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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나와 아내에게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봤다고 했다. ⓒ pexels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내 기억은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을지로에 있는 우체국이었는데 연말연시에 몰리는 우편물 처리를 위해 대학생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첫월급으로 몇만 원을 받았던 것 같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어머니 빨간 내복과 아버지 가죽장갑을 사서 부모님께 달려갔었다. 아버지는 그 가죽장갑을 오랫동안 애지중지 아끼며 착용하셨다. 그해도 눈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빙판이 된 을지로 인도에서 미끄러지며 출퇴근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아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의 말이 공명이 돼 마음 속을 계속 울렸다. '아! 내가 나도 모르게 아버지 어머니 흉내를 내는구나.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굳이 배우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체득한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이리 기분이 개운치 않은 걸까?'

2주 남짓 회사생활을 했을 뿐인데 아이는 훌쩍 성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반면 나는 내가 의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자꾸 예전의 아버지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그 와중에 나는 마치 바톤을 넘겨줘야 하는 주자처럼 아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 주차장에서 헤어질 때 아이는 나를 꼭 끌어 안았다. 키 큰 아이 어깨너머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눈 사이로 아버지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나는 언제 아버지를 이렇게 안아 드린 적이 있었나?' 눈이 내 눈 속으로 들어가며 자꾸 녹아 내리고 있었다.
#캐나다 #이민 #코업 #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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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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