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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가 보여준 가정폭력의 근원, 상상 이상의 메시지

[리뷰] <마더> 인물들의 내면 심리로 분석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들

18.03.03 15:08최종업데이트18.03.0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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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당황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일주일 전 tvN <마더> 속 엄마들의 다양한 모습을 리뷰한 후 다시 마주한 <마더>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엄마들의 다양한 모습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마더>는 너무나 적나라하게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삼촌'(손석구)이 혜나(허율)를 납치해 가두어 위협하는 장면들이 사실적이고 끔찍해서만은 아니었다. 삼촌이 '사이코패스'가 된 사연이 밝혀지면서 벌어진 일들을 다루고 있는 11회와 12회 방영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 폭력과 맞닿아 있었다.

삼촌은 왜 사이코패스가 되었을까?

tvN <마더>의 한 장면. ⓒ tvN


<마더>에서 삼촌이 사이코패스가 된 원인은 어머니의 이중성이었다. "사실 우리 엄마는 두 명이었거든. 좋은 엄마, 나쁜 엄마." 삼촌의 대사처럼 어머니는 음식을 맛있게 차려주는 좋은 엄마였다가, 갑자기 아이에게 화를 내고 더럽다며 공격하는 양가적인 엄마였다. 떠나간 남편에게 매달리며 아이를 홀로 두고 집을 수시로 떠났을 것을 보이는 이 어머니 곁에서 삼촌의 어린 시절은 늘 채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욕구로 괴로웠을 것이다. 어머니를 기다리면서도, 어머니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삼촌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는 짐작조차 안 된다.

게다가 이 어머니는 어느 날 "함께 죽자"고 말하고는, 아침을 맛있게 차려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어 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어린 삼촌은 분명 혜나의 대사처럼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 죽지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성인이 된 삼촌은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투사된 엄마 대신 죽지 못한 '나쁜 아이'인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아이들을 죽인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충분히 타당한 해석이긴 하다. 부모와 아이의 애착에 대한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가장 아이를 힘들게 하는 부모의 유형이 바로 예측하기 힘든 양가적인 행동을 보이는 부모다. 게다가 이런 부모가 학대마저 했다면 아이는 '혼란된 애착'을 형성하고 해결될 수 없는 공포 속에 성장한다. 이 공포를 치유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후에 이를 어떤 식으로 표출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삼촌의 행동들은 아마도 이렇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학대를 받았다고, 모든 사람이 삼촌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속 혜나는 모진 학대를 받았지만,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수진 역시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때문에 어머니의 학대가 있었다고 해서 삼촌의 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아버지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tvN <마더>의 한 장면. ⓒ tvN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가 궁금해졌다. 왜 삼촌은 '엄마'만을 원망했을까, '아버지'는 도대체 왜 원망하지 않는 걸까. 드라마에서 삼촌은 엄마에게 학대를 받았지만, 그를 엄마보다도 먼저 버린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엄마를 괴롭혔을 것 같은 아버지를 그는 왜 전혀 의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삼촌만이 아니다. 수진(이보영) 역시 자신을 보육원에 버린 친어머니를 원망하지만, 어머니와 자신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수진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보육원에 있는 그림들에서도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를 그리워하지 아빠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왜 드라마 속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 엄마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일까? 아마도 '돌봄'은 여성에게만 할당된 것이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신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시간, 여성의 정체감은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져왔고, 이런 시선 아래 형성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가정 안에서 돌봄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여성주의 운동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삶은 아내, 주부, 어머니로서 규정된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돌봄'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라는 것. 가정 안에서 아버지 역할의 부재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 육아에 적극 함께 하는 아빠들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육아 정책은 '엄마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고는 한국에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는 통념일 것이다. 드라마 속 아이들이 아버지의 부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 부분은, '육아는 어머니의 책임'이라는 가부장적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삼촌에게 괜찮은 아버지가 있었다면, 과연 저렇게까지 삼촌이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 아닐 것이다. 아버지의 부재도 분명 책임이 있다.

왜 어떤 엄마들은 남자에게 의존적인가?

11,12회를 보면서 삼촌의 폭력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폭력에 대한 자영(고성희)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남자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자영의 심리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자영의 마음은 삼촌과는 달리, 일반적인 심리학 이론으로는 잘 분석되지 않는다. 여성주의 심리학자 미리암 그리스펜은 <우리 속에 숨어 있는 힘>에서 여성의 심리는 사회적 억압을 전제하지 않고는 제대로 파악될 수 없다고 했다. 자영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마도 자영은 태어나 자라면서 끊임없이 여성은 '남자 없이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의존적인 존재'라고 주입받아 왔을 것이다. 여성은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찾을 수 없으며 남자와 함께 하는 것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미리암 그리스펜은 같은 책에서 '남성적 시선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정체감 안에서 이와 상충되는 자신을 느끼는 여성은 스스로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이 같은 폭력적인 환경에서 여성들은 많은 심리적 문제와 정체감 혼란에 빠지며 때로는 자신의 아이를 때리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이런 환경에서 여성들은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분노를 다양하게 억압해 왔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주체성을 부인하고, 의존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는 사회 환경. 이 환경 자체가 여성에겐 분노를 일으키는, 그러나 그 분노를 표현조차 할 수 없게 하는 폭력인 것이다.

아마 자영이 겪어온 이와 같은 가부장적 문화는, 그 자체로 자신의 정체를 사라지게 하는 폭력이었을 것이다. 이런 폭력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낼 힘을 잃은 자영은 남자에게 의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억압한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아이를 학대하면서 표출한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죽이겠다는 남자에게 동조하는 선택까지 하고 만다. 자영뿐 아니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삼촌의 어머니 역시 자신을 버린 남편의 마음을 돌리는데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동시에 아이를 향해 자신의 억압된 분노를 폭력으로 나타낸다. 물론, 이 어머니들의 선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어머니들이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따져보면 이들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임을 알 수 있다.

만연한 폭력 그리고 희망

tvN <마더>의 한 장면. ⓒ tvN


드라마 전체를 덮고 있는 <마더>의 음울한 분위기, 그리고 11, 12회에 부각된 삼촌의 폭력성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가부장적 분위기와 이로 인해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나 현실적이고도 끔찍하게 느껴졌던 폭력에 대한 묘사는 가부장적 질서와 폭력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것인지 느끼게 해준다. 힘과 위계질서에 의해 유지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은 희생자가 된다. 하지만, 모든 여성들이 희생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신(이혜영)과 수진은 남자 대신 자신의 인생과 아이를 선택해 모성의 긍정적인 힘을 보여준다. 이 둘은 위기의 순간에 침착하게 대응하며 문제를 해결해 간다. 홍희(남기애) 역시 비록 아이를 위해 인생을 바치긴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남성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한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엄마가 되지는 않았지만, 기자로서 당당하고 공정하게 위기에 대응해가는 영신의 셋째 딸 현진(고보결)도 자신의 인생을 소신껏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여성들의 모습은 남성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여성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모성의 본질, 아동학대, 그리고 사회적 폭력에 대해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드라마 <마더>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성 스스로 만들어낸 희망이 가부장제의 폭력을 걷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이를 통해 위계질서와 힘의 논리에 의한 약자에 대한 폭력이 더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 드라마를 쭉 시청하면서 혜나 말고 배우 허율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혜나가 겪는 신체적, 정서적 폭력이 너무나 생생해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감정에 이입되어 연기했을 아직 어린이인 허율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폭력은 직접 당한 것이 아닌, 간접경험만으로도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아무리 연기라고 하지만, 간접 경험보다 더 강하게 그 정서를 느꼈을지도 모르는 아역 배우 허율이 부디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송주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마더 가부장제 폭력 페미니즘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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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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