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했는데 농사가 된다고?

[짱짱의 농사일기 17] 자연농업의 기대와 오해

등록 2018.03.07 08:57수정 2018.03.0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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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업은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철학에 바탕을 둔 농사다 ⓒ 오창균


세계 2차대전에서 폭탄의 재료가 되는 공기중의 질소를 화학적으로 고정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농업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비약적인 식량증산의 기술이 되었던 질소비료와 농약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된 농산물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화학비료와 농약의 폐해는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안전한 먹을거리의 대안으로 유기순환농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연적으로 파생되는 유기물의 퇴비를 사용하는 유기농업은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오래된 농업이다. 기후와 토양이 다르고 다양한 문화의 국가와 민족의 고유한 농업의 형태도 유기농업이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퇴비를 순환하는 유기농업이 있다면, 일체의 인위적인 투입을 하지 않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자연순환농업이 있다. 말 그대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농업만이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한다는것이다.

자연농업은 흙을 갈지 않고 풀을 뽑지 않으며 퇴비를 쓰지 않는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화학비료와 농약과 비닐의 사용도 배제하는 무(無)투입 농사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수 있다. 흙을 갈지 않고 풀을 뽑지 않고 어떻게 농사가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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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운은 풀을 적절하게 키우고 관리하면서 겉흙이 보이지 않도록 한다 ⓒ 오창균


준비가 필요한 무경운

흙을 갈지 않는 무경운(無耕耘)은 석유를 동력으로 쓰는 농기계로 흙을 깊이 갈고 잘게 부수는 행위가 토양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관점에서 흙을 뒤집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력으로 농기구를 이용하여 밭을 만들고 보수하는 것은 토양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경운으로 처음에는 밭의 형태를 만들고 농사를 짓다 보면 흙을 움직여서 보수를 할 수도 있다. 씨앗 파종과 모종을 심을 때 수확을 할 때에도 어느 정도 흙을 파내야 한다. 농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 흙을 건드리는 행위는 무경운으로 보는 것이다.

즉, 농기계를 이용하여 밭 전체를 갈아엎는 행위와 농기구로 일정 부분의 흙을 파내고 채우는 것은 경운의 형태와 토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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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을 심거나 수확할 때 농기구로 흙을 파는것은 무경운으로 본다 ⓒ 오창균


경운의 목적은 흙을 갈아서 부피를 늘리고 물과 산소를 순환시키는 공극을 만들어주는 행위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흙을 잘게 부수는 경운의 효과는 일회성이며, 토양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지력(地力)유지를 어렵게 한다.

무경운은 흙속으로 뿌리를 뻗는 식물과 미생물을 비롯한 다양한 토양생물의 활동으로 자연스러운 경운이 되면서 물과 산소를 순환시킨다. 무경운은 토양생태계를 지속가능한 먹이사슬의 순환구조로 만들어서 식물의 양분이 되는 유기물을 축적하고 흙의 지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무경운의 지력효과는 흙의 토성(土性,흙입자의 크기)과 양분의 보비력(保肥力), 물의 보수력(保水力)과 배수력(排水力)의 물리적인 조건을 갖춰야 한다. 또한, 유기물을 분해하여 양분으로 순환시키는 미생물의 토양생태계가 균형을 이룰 때 효과를 보인다.

무경운은 자연적으로 여러가지 조건이 되었을 때 할 수 있어야 한다. 인위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 산과 숲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무경운 농사의 효과를 빨리 볼 수 있는 방법으로는 지력이 어느 정도의 조건에 도달할 때까지는 유기농업의 형태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경운을 하고 퇴비를 넣고 적절하게 풀을 관리하면서 겉흙이 보이지 않도록 유기물을 덮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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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다면 흙에 퇴비를 넣고 경운을 하면서 지력을 높이고 작물을 키운다. ⓒ 오창균


유기물의 순환으로 양분을 만든다

지력을 높이는 퇴비와 작물성장을 돕는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농사가 되는 것은 무경운의 조건이 갖춰진 다음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흙과 작물에 도움이 되는 것을 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유기물과 비료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농업은 밭에서 생산되는 작물의 필요한 부분만을 갖고 나머지는 흙으로 다시 순환시킨다. 토마토,고추의 과채류는 열매만 수확하고 배추와 상추의 엽채류는 이용하지 않는 줄기와 뿌리는 흙으로 돌려주며, 풀은 뽑거나 베어낸 것을 그자리에 놓아준다.

밭을 갈아야 하는 경운을 한다면 필요로 하지 않는 작물의 잔사를 밖으로 버려야 할 것이다. 무경운은 밭을 갈지 않으므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두면 겉흙을 보호하는 덮개가 되고 미생물이 분해하여 양분으로 되돌리는 자연순환이 되며, 흙속의 토양생물의 먹이사슬에서도 양분으로 되돌려진다.

자연순환만으로 지력과 양분이 부족하다면 추가로 보충해줄 수도 있다. 인간과 가축의 배설물은 퇴비화 과정을 거쳐서 흙 위에 뿌리고 유기물로 덮어주며, 오줌과 식물로 만든 액비(물비료)를 작물에 사용한다.

자연농업은 공장식 축산의 오염된 분뇨와 출처를 알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지는 공장식 퇴비가 아니라면 직접 만든 퇴비와 농사에서 나오는 유기물은 흙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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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운 토마토 4년간 흙을 갈지않고 퇴비 없이도 농사가 된 것은 작물의 잔사를 흙으로 되돌리는 유기물의 순환이라고 본다. ⓒ 오창균


풀은 작물성장에 방해가 안 되는 조건에서는 뿌리째 뽑지 않고 베어서 그 자리에 눕힌다. 처음에 씨앗을 파종하거나 모종을 심을 때는 작물이 자리를 잡는 두둑의 풀은 뿌리째 뽑아서 놓아준다. 또는 낙엽과 같은 유기물로 겉흙을 덮어서 풀이 올라오는 것을 막거나 어렵게 해야 작물성장에 유리하다.

작물이 뿌리를 활착한 다음에는 풀과 경쟁하듯이 성장하면서 그늘을 만들어 풀을 이겨낸다. 고랑의 풀은 작물의 광합성에 방해가 안 되는 높이만큼 키웠다가 흙과 가까운 줄기의 밑둥을 베어서 그 자리에 눕혀주고, 작물보다 작은 풀은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자연농업은 다수확 생산의 목적보다는 자연과 공생하는 삶의 철학에 바탕을 둔 농사다. 자연농업은 유기농업의 근간에서 진보된 농업이라는 생각이며, 자연생태계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농사라고 할 수 있다.
#무경운 #자연농업 #유기농업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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