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난 칼국숫집의 엄격한 철학

캐나다에서 추억하는 나의 단골 칼국숫집

등록 2018.03.06 11:15수정 2018.03.0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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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pixabay


나는 칼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대학 시절 이전까지는 주로 시골집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홍두깨로 밀어 그야말로 '칼'로 썰어낸 진짜 칼국수를 먹거나, 아주 가끔씩 시장에 나가 맛보는 장칼국수가 전부였다.


그런데 대입시험을 치르기 위해 처음으로 왔던 서울에서 맛본 칼국수는 그간의 나의 칼국수에 대한 짧은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나의 입시 기간 동안 안내를 도맡았던 사촌 형님의 손에 끌려 명동에 있는 그래서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그 칼국숫집에서 먹어본 맛은 '세상에 이런 맛있는 음식도 있구나' 할만큼 환상적이었다.

그 이후 나는 서울에 처음 오는 지인들에게 이 칼국수 맛을 보여 주는 것을 내가 해야 하는 서울 구경 시켜주기의 첫번째로 꼽을 만큼 중요하고도 행복한 의무로 생각했다.나의 사촌 형님이 나의 첫 서울 구경 때 그러했듯이.

마지막 손님의 '예언'

최근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등 불세출의 걸작으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천재작가 최인호의 수필집 <가족> 시리즈를 읽다가 칼국수에 대한 글을 접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회사를 다닐 때 자주갔던 또 다른 단골 칼국숫집의 얘기였다.

그 집 주인장의 남편께서 우리나라 헌법의 태두였다는 사실과 그곳이 전직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부터 청와대 생활이 끝난 후에도 줄곧 단골손님이었다는 사실도 새로운 것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끈 것은 그 집 주인의 칼국수에 대한 엄격한 '철학' 이었다.


아들의 도움을 얻어 남편 몰래 차린 칼국수 집을 처음 열던 날, 삶아낸 국수 면발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세 번씩이나 다시 끓였단다. 그 바람에 기다리던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남아 있던 딱 한 사람만이 그 국수를 맛보게 되었다. 이렇게 제대로 정성이 들어간 칼국수 맛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아니 맛보다는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의 그 간절한 마음이 감동을 자아냈다.

마지막 손님이 예언한대로 이 가게는 '대박'을 쳐서 나중에는 양재동과 청계산 입구 그리고 최근에는 무교동 초입 등 10여 군데가 넘는 곳에서 그 맛을 볼 수가 있게 되었고 나는 양재동에 있는 곳에 주로 드나들었다.

이 칼국수는 사골국물을 우려낸 육수가 압권이지만 국수와 함께 먹는 간장에 조린 깻잎 찜이 국수의 맛을 한층 높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 비장의 무기는 묵사발이다. 묵에 조각낸 김치와 부셔낸 김 그리고 참기름 섞어 만들어낸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는 맛이 일품이다. 국수가 나오기 전 묵사발을 하나 시켜 2~3명이 나눠 먹으면 맛난 국수를 기다리는 애타는 시간을 조금 삭혀 주어 그만이다.

음식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데는 음식 맛도 음식 맛이지만, 진심어린 서비스 정신이 더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이 집은 아이가 어렸을 때 데리고 가서 어른 2명분만 시켜도 음식을 서빙할 때 아이용 작은 그릇을 하나 더 덤으로 주는 후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지만, 후한 인심이 먼저 있어야 곳간도 차게 되고 그렇게 선순환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말 설고 물설어 고향 생각이 절로 나게 마련이고 그 중에서도 먹는 것에 대한 갈증이 특별하다. 이민 온 지 오래된 분들의 얘기로는 예전에는 지금처럼 한국 식당이나 한국 슈퍼마켓이 흔치 않아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즐길 수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씩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지인들의 얘기 중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음식 얘기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민자들의 모국음식에 대한 갈증은 한국 음식이 지천으로 깔린 요즘이라고 해서 더 약해졌다고 할 수 없는 듯하다.

그러니 토론토에 아무리 한국의 맛과 향취를 직수입한 원조임을 주장하는 식당들이 여럿 들어서고 그 음식이 한국의 그것 뺨치게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할지언정 한국 방문의 제일 기대감 중의 하나가 맛집 순회가 되는 이민자들의 회귀본능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나도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을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테다. 그날이 오면 음식 기행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고통(?)을 맘껏 즐기고 싶다. 내 맛집 순위 리스트의 맨 위에는 그 칼국수 집이 부동의 1위로 올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민 #캐나다 #한국음식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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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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