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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 여성 후보자 모두 일으킨 맥도맨드의 한 마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소수자와 여성들이 주인공... "문 열고 들어오시라"

18.03.05 16:40최종업데이트18.03.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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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공식 홈페이지엔 시상식 직후 수상자 명단이 올라왔다. ⓒ www.oscar.com 캡쳐


"지금 이 순간, 저와 함께 같은 부문 후보로 오르신 여성 배우들 그리고, 오스카 시상식 모든 부문에 후보에 오르신 여성분들 일어나주세요! 메릴(함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메릴 스트립을 뜻함)! 일어나세요.

영화 제작자, 감독, 작가 분들, 촬영감독님, 작곡가, 디자이너 분들! 모두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자,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또 여러 프로젝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며칠 간 사무실에 가지 마시고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여기 오신 분들께 한 말씀 드립니다. 포용이 옳은 길입니다!" - 프란시스 맥도맨드

<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말에 모든 여성 후보자들이 기립했다. 누구는 박수를 치며 웃어 보였고, 관객들은 이들에게 큰 환호를 보냈다. 4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여우주연상 부문은 어느 해보다 뛰어난 작품과 배우들이 많아 수상자를 예측하기 가장 힘든 부문이기도 했다.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 <셰이프 오브 워터>의 샐리 호킨스를 비롯해 <아이, 토냐>의 마고 로비 등 신구 여성 배우들이 각 작품에서 독보적인 연기를 보였기 때문.

꿈 향한 소수자들의 연대

영화 <쓰리 빌보드>의 한 장면.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주연을 맡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치열한 경쟁이었지만 수상자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함께 그 영광을 나누길 원했다. 위 발언에 앞서 그는 남편이자 영화감독 조엘 코엔과 아들 페드로 맥도맨드 코엔을 언급했다. 참고로 페드로 맥도맨드 코엔은 파라과이 출신으로 지난 1984년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조엘 코엔이 입양한 아들이었다.   

카메라가 눈시울이 붉어진 조엘과 페드로를 포착했다. 이들을 향해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두 사람이 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풍경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 주요 후보자들은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을 폭로하며 시작된 영화계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검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해당 운동을 주도한 '타임즈 업' 측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의상을 통일하지 않기로 했다지만 전야제 등에서 많은 배우들과 영화인들이 검은 계열의 옷을 입었었다. 또한 작품상 등 주요 부문 후보작 절반 정도가 여성에 대한 영화로 채워지고, 흑인들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져 등 일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미술상 시상자로 나선 루피타 뇽과 쿠마일 난지아니는 자신들이 이민자 출신임을 강조했다. <블랙 팬서>로 최근 상업영화에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는 루피타 뇽은 "케냐에서 자라면서 언젠가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꿈을 꿔왔다"고 말했고, 쿠마일 난지아니 역시 "전 파키스탄 출신인데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계신 이민자 분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진행자들도 지지... 오스카를 채운 말들

채널 CGV의 진행자로 나서 국내 중계에 참여한 이동진 평론가도 말을 보탰다. 그는 "영화는 세상이 변하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매체인데 이렇게 여성 영화들이 대거 약진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영화 <머드바운드>의 레이첼 모리슨은 여성 중에선 최초로 촬영 감독상 후보에 올라있다"고 강조했다. 

행사 중반 한 시상자는 "오늘 왠지 흑인들과 소수자의 행사처럼 보이는데 걱정하지 마시라"며 "곧 백인 분들이 많이 받으실 것이다"라는 뼈 있는 농담을 해 관객들을 웃게 했다. 또한 행사 중간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전통에 따라 핫도그를 나눠주는 순간엔 일부가 미국 총기난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각본상을 받은 영화 <겟 아웃> 역시 흑인 감독과 배우들이 이끈 작품이다. 호명돼 무대에 오른 조던 필레 감독은 "제 이야기가 영화로 안 만들어 질 것 같다는 의심이 계속 들어 중간에 스무 번이나 글쓰기를 중단했지만 끝까지 도전했다"며 "주변의 응원으로 다시 시도했고,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볼 것이라 믿었다.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신 관객들에게 상을 바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 부문 후보자들과 관계자들이 한데 모였다. ⓒ www.oscar.com 캡쳐


한편 올해 시상식 사회를 맡은 배우 지미 키멜은 지난해 벌어진 작품상 호명 실수에 대해 언급했다. "마지막 작품상 시상만 남아있는데 이번엔 절대로 틀리지 않을 것"이라며 그는 "작년 일은 유감스러웠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아카데미 최고 영예인 작품상의 주인공은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었다. 앞서 미술상, 음악상, 감독상에 이어 4관왕에 오른 것. 자신의 이름이 적힌 봉투를 받아 "제가 한 번 다시 확인해보겠다"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감격에 차 환하게 웃었다.

그는 "멕시코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외계인 영화를 많이 봤는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님이 '그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기억하라, 전설의 일부가 될 것이다'는 말을 해주셨다"며 "영화를 좋아했던 멕시코 소년이 자라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다. 이런 꿈을 꾸시는 분들에게 판타지를 이룬 얘길 하고 싶다"고 나머지 말을 이었다.

"여기 문이 있습니다. 두드리시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이밖에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영화 <이카루스>는 알려진대로 글로벌 콘텐츠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투자, 제작한 작품이다. 유럽 권에선 극장들 반발로 넷플릭스와 아마존 제작 영화들의 영화제 수상에 대한 반감이 큰 상황에서 해당 작품의 수상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도 주목해볼 만하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
* 작품상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길예르모 델 토로
* 여우주연상 - <쓰리 빌보드> 프란시스 맥도맨드
* 남우주연상 - <다키스트 아워> 게리 올드만
* 감독상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길예르모 델 토로
* 주제가상 - <코코> '리멤버 미'(Remember Me)
* 음악상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 촬영상 - <블레이드 러너 2049> 로저 디킨스
* 각본상 - <겟 아웃> 조던 필레
* 각색상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제임스 아이보리
* 단편 영화상 - <더 사일런트 차일드> 크리스 오버튼
* 단편 다큐멘터리상 - <헤븐 이즈 어 트래픽 잼 온 더 405> 프랭크 스티펄
* 편집상 - <덩케르크> 리 스미스
* 시각효과상 - <블레이드 러너 2049> 존 넬슨 외 3명
* 장편 애니메이션상 - <코코>
* 단편 애니메이션상 - <디어 바스켓볼> 글렌 킨
* 여우조연상 - <아이, 토냐> 앨리슨 제니
* 외국어 영화상 - <판타스틱 우먼> 세바스찬 렐리오
* 미술상 -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폴 D. 오스터베리
* 음향 믹싱상 - <덩케르크> 마크 웨인가르텐
* 음향 편집상 - <덩케르크> 리차드 킹
* 장편 다큐멘터리상 - <이카루스> 브라이언 포겔
* 의상상 - <팬텀 스레드> 마크 브릿지
* 분장상 - <다키스트 아워> 츠지 카즈히로
* 남우조연상 - <쓰리 빌보드> 샘 록웰


아카데미 시상식 셰이프 오브 워터 미투운동 흑은 이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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