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유럽여행기, 왜 미국인이 썼을까

[지도와 인간사 10] 강리도에서 민영익 사절단의 여행경로 찾는 법

등록 2018.03.15 15:35수정 2019.02.07 10:11
0
원고료로 응원
a

강리도 유럽 여정 ⓒ 김선흥



'지도와 인간사' 10회를 맞아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최초로 유럽 여행을 했던 조상들의 여정을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되짚어 봅니다. 우리 자신이 여행자가 되어 시공여행을 떠나보는 것이지요.


때는 1883년 11월 어느 날 뉴욕항. 미 해군 선박 트렌턴 호에 갓 쓰고 도포 입은 조선 사람 셋이 승선했습니다. 미국인 한 명도 동행했습니다. 조지 포크 해군 소위(George Foulk, 1956~1893). 당시 포크 소위는 일본어를 잘 할 수 있었고(애인이 일본인),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는 중이었다 합니다. 아마도 일본어로 된 한국어 교본으로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서투나마 한국어를 말할 수 있었던 조지 포크는 해군 사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요. 방미 사절단 민영익 일행의 미국 체류시 내내 동행했던 그가 이번에는 아예 주한 미공사관 해군 무관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a

조지 포크 1884.1.1모습(28세) ⓒ wikimedia commons





이제 한국인들의 면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민영익(1860년~1914년) : 명성황후의 친정 일족으로서 조선 말기 민씨 외척 정권의 핵심 인물. 고종의 특명전권 대신으로서 방미 사절단을 이끎. 처음에는 온건 개화 성향이었으나 바깥세상을 견문하고 돌아온 후로 오히려 보수로 회귀하여 개화파의 적이 됨. 갑신정변 때 개화파에 의해 난자당했으나 미국인 의사 앨런의 치료로 기적적으로 살아남.


서광범(1859년~1897년) : 일찍이 일본, 미국, 유럽 등 선진 문물을 접하고 근대화 사상을 품게 됨. 1884년 12월 김옥균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 훗날 복권되어 학부대신, 주미 특명 공사 역임. 서광범의 인물됨을 조지 포크는 아낌없이 예찬함. 갑신정변 후 위기에 처한 그의 가족을 조지 포크가 은밀히 도와줌(조지 포크의 사신).


변수(1861년~1891년) : 개화파 관료, 정치가, 개화운동가이자 외교관.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농과에 입학해 농학을 전공하고 1891년 졸업하여 한국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생이 됨. 대학 재학 시절인 1890년부터 미국 농무성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음.

민영익과 조지 포크의 세계일주


세계 일주가 이루어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6년 전인 1882년, 미국은 서양 국가로서는 최초로 조선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에 푸트(Foote) 공사를 파견합니다. 푸트 공사가 고종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미국에 사절단을 보낼 것을 제의하자 고종이 흔쾌히 승낙합니다.

방미 사절단은 전권대신(正使) 민영익, 부사(副使) 홍영식, 수행원 서광범, 유길준, 변수, 현흥택, 최경석, 고영철 등, 그리고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미국인 로웰(Percival Lowell)과 그의 일본인 비서 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로웰은 매우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나중에 유명한 천문학자가 되었고 자비로 천문대를 세웠으니까요. 우리가 어린 시절 그 이름을 외웠던 명왕성을 발견한 곳이 바로 로웰 천문대.


방미 사절단이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고별 인사 차 아서(Arthur) 대통령을 예방했는데, 그 자리에 배석한 국무장관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민영익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민영익 공을 포함하여 세 분은 유럽 쪽으로 돌아서 귀국하면 어떻겠소? 동의하신다면 배편과 편의를 모두 미국 측에서 제공하겠소."


이 제안을 즉석에서 민영익이 받아들이고 서광범과 변수를 동행자로 정합니다. 이리하여 방미 사절단은 귀국시에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부사 홍영식 일행은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출발해 태평양 쪽으로 되짚어 돌아가고, 뉴욕항에서 대서양을 향해 출항한 민영익 일행은 대서양, 지중해, 인도양, 동아시아 바다를 건너 인천 제물포로 돌아옵니다. 민영익 일행의 세계일주는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근세 초 조선의 엘리트들이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둘러 보았던 일의 의미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나라의 명운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민영익 일행의 구체적인 귀로 여정을 알기 어렵습니다. 안타깝게도 세 사람 모두 여행기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한편, 조지 포크의 서한집 <AMERICA'S MAN IN KOREA>을 편찬한 사무엘 홀리(SAMUEL HAWLEY)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1883년 11월 19일 트렌턴 호는 뉴욕항을 출발, 유유히 동쪽을 나아가 6개월 간의 항해를 하였다. 이 배는 아조레스, 지브롤터, 마르세유(포크와 한국인들은 여기에서 육로로 파리와 런던을 여행), 수에즈, 아덴, 뭄바이, 실론,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나가사키를 들렀다. 젊은 한국인들은 늘 조지 포크를 곁에 두었다. 때문에 포크의 한국어 실력이 급속도로 증진되었다."


그들의 여정을 알려주는 유일한 원천 사료는 포크가 민영익 일행과 동행하면서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입니다. 그 내용이 현재 워싱턴 미 의회 도서관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들은 앞서 언급한 포크의 서한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서한집은 1884년 5월 21일 경유지 나가사키에서 보낸 것부터 시작됨).


나그네(글쓴이)는 지난해 여름에 미 의회 도서관(제임스 매디슨관)을 방문, 마이크로필름을 열람하고 그 일부를 촬영해 두었습니다.
 
a

미의회 도서관 조지 포크 자료 열람 ⓒ 김선흥





아래는 1884년 2월 24일자 편지 일부입니다. 수에즈 입항을 앞둔 시점에서 선상에서 쓴 이 편지는 수에즈로부터 제물포까지의 일정을 정리해 놓고 있어 도움이 됩니다(아래 붉은 네모 부분). 그 이전의 일정에 대해서는 산발적으로 다른 편지들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a

포크 서신 미의회 도서관 소장 ⓒ 김선흥





붉은 네모 속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일정표가 대충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에즈 도착 2월 25일
아덴 도착 3월 5일
실론 도착 3월 13일
싱가포르 도착 4월 1일
홍콩 도착 4월 14일
나가사키 도착 4월 19일
한국 인천 즉 제물포 항 도착 4월 26일

 

이 예상 일정은 결과적으로 많이 어긋났습니다. 실제로 제물포에 입항한 것은 5월 31일이었으니까 예상보다 약 한 달 정도 더 걸린 것이지요. 하지만 노선은 변함없었습니다.

강리도로 아조레스 여행하는 법

이제 우리는 민영익 일행이 들렀던 곳의 지명을 강리도에서 확인해 보려 합니다. 범위는 뉴욕항을 출항한 뒤 맨 처음 발을 들였던 대서양의 아조레스 군도에서부터 홍해 연안의 아덴 항에 이르기까지로 잡아 봅니다. 즉 아조레스(포르투갈령), 마르세유, 파리, 런던, 로마, 수에즈, 카이로, 아덴(예멘)등지입니다.


과연 1402년에 제작된 강리도에 이런 지명들이 적혀 있을까요? 결론부터 밝히자면, 런던과 수에즈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글의 맨 앞에 보이는 강리도에서 붉은 표시(화살표와 동그라미)를 한 곳들입니다. 그중에서 지브롤터(這不里法)와 카이로(密思)는 예전에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나머지 지명 중에 비교적 쉽게 해독할 수 있는 것은 마르세유, 로마, 아덴입니다.

먼저 이것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마르세유: 麻里昔里那(중국어 발음으로 '마리시리나'),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이름 '마살리아(Massalia)'와 잘 부합함.
파리: 法里昔(중국어로 '파리시')
로마: 剌沒(중국어로 '라모')
아덴: 哈丹(중국어로 '하단')



아덴과 관련하여 강리도를 연구한 일본 교토대 스기야마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비한어 지역의 번역은 기본적으로 몽고시대의 것을 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위구르 문자식의 표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있다. 예를 들자면... (중략) 아덴을 나타내는 '哈舟'의 머리가 '哈'인 것은 위구르 문자 표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조레스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날의 지도에서 아조레스를 찾아봅니다.
 
a

대서양 지도 아조레스 ⓒ vacationtogo 홈페이지 갈무리






아조레스는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인데, 얼른 보아도 그 지리적 위치가 중요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미대륙으로 나아가려 할 때, 반대로 미 대륙에서 유럽으로 다가가려 할 때 중간 거점이기 때문이지요. 콜럼버스가 일차 항해를 마치고 후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 거의 죽을 뻔했던 곳이고 찰스 다윈이 새를 관찰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유럽대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서양 한가운데 섬이 과연 강리도(1402)에 나타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글의 첫머리에 놓인 강리도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맨 왼쪽을 보면 이베리아반도 서쪽으로 직사각형의 섬이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붉은 화살표). 이름은 "鷄山"(닭 '계' 뫼 '산', 중국어 발음으로 '지샨')입니다. 영국의 제리 브로턴 교수(Queen Mary University of London)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도 맨 끝(왼쪽)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직사각형이 있다. 이는 영국 제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조레스(Azores)일 개연성이 크다. 아조레스는 프톨레미의 <지오그라피>에서 맨 서쪽의 지점이다. 프톨레미의 지리학이 강리도에 부분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 Jerry Brotton <a history in maps of the world>119쪽 번역



여기에서 프톨레미의 지리정보가 강리도에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언급은 흥미롭습니다. 15세기 조선의 강리도에 2세기의 프톨레미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요?

지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톹레미는 그리스 혈통으로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천문학과 지리학, 광학과 음악을 연구하고 시를 썼습니다. 특히 그의 천문학과 지리학은 그의 사후 무려 1400년간의 장구한 시공간 속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 멸망 이후 프톨레미의 학문적 유산을 물려받았던 곳은 기독교권이 아닌 이슬람권이었습니다. 이슬람 지리학의 영향을 받은 강리도에 프톨레미 지리 정보의 일부가 담겨 있는 까닭입니다. 


한편 서양에서 프톨레미 지리학이 부활한 것은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프톨레미의 그리스어 본 <지오그라피>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부터였습니다. 중세의 서양은 프톨레미의 지리학에 관한 한 1000여 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오그라피>의 라틴어 번역본이 나온 지 100년 후에는 동서양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지도 실물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왜 아조레스를 '닭의 산'이라고 했을까

이제 다시 아조레스 문제로 돌아갑니다. 지샨(鷄山)이 아조레스를 가리킨다는 추정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 견해를 밝힌 학자는 전술한 제리 브로턴만이 아닙니다. 일찍이 1959년에 출판된 니이담(Jeseph Needham,1900~1995)의 역저 <중국의 과학과 문명>(제3권)에서 저자는 이렇게 언급합니다.
 
"(강리도에) 독일과 프랑스가 한자음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아조레스가 나타나 있다. 이처럼 강리도에 풍부한 서방 지식이 담긴 것은 당시 유럽인들의 동방 지식과 사뭇 대조적이다. "


마지막으로 상상을 자극하는 것은 지샨, 즉 닭의 산이라는 지명이 무언가 닭 혹은 새를 연상시킨다는 점입니다. 아마 중국인이거나 중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금방 그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아조레스가 실제로 닭 혹은 새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를 여흥 삼아 조사해 봅니다. 구글을 검색해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아조레스가 아주 옛날부터 새와 유서가 깊다는 사실을 알리는 정보와 뉴스가 다수 나타납니다.

 
"포르투갈어 'açores'는 매의 한 종류를 가리킨다. 포르투갈 항해가들이 맨 처음 도착했을 때 그 새들이 무수히 많이 보여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 과학 잡지 2015년 7월 15일
 
"아조레스는 예로부터 수많은 새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섬에 서양인들이 들어와 살기 전에는 새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1439년 인간의 이주 이래로 여러 종류의 새들이 급속히 사라졌다. 날지 못하는 새 여섯 종류가 멸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아조레스는 조류 학자들에게 여전히 가장 흥미로운 곳이고 유럽의 새 관찰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곳이다." - Biodiversity Data Journal 3



이처럼 아조레스의 이름이 새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지샨(鷄山)'은 절묘한 작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조레스와 음가(z와 S)를 공유하고 있는 데다 새를 결부시켜 지은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고유명사의 한역에 있어서 음과 뜻을 결합하는 중국인들의 작명술이 발휘된 결과로 보입니다(강리도는 한반도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중국인의 한어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이 떠오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조레스의 '조'를 반영하여 '조산(鳥山)'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중국어로는 鳥를 '냐오' 라고 발음합니다. 전혀 발음이 다릅니다. 아조레스의 발음과 새를 융합한다면 역시 '지샨(鷄山)'이 적합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추론이 맞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서양 중심의 역사에서는 포르투갈이 아조레스를 1430년대에 처음 발견했다고 합니다. 현재 포르투갈령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강리도에 아조레스가 '지샨'으로 나타나 있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그 섬의 새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음을 추측게 합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였을까? 이와 관련하여 고고학자들은 아조레스 군도에 포르투갈인 이전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고고학적 증거를 발견하였고 이에 따라 그들이 과연 누구였는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가빈 멘지스는 <1421년 중국에 세계를 발견하다>라는 책에서 아조레스를 정화 항해시 중국인이 발견하여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강리도 상의 '지샨'은 그보다 시기적으로 앞섭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조레스 군도를 놓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세기에 한양에서 작성된 지도에 그 섬이 표시되어 있고 더구나 그 한자 이름이 새와 연동되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점이 아닌가 합니다. 강리도에 아조레스가 새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지샨'으로 표기된 배경에 대하여 나그네는 이렇게 막연한 추측을 해 봅니다. 즉, 이베리아반도가 8세기부터 수 세기 동안 이슬람 문명권이었으므로 아조레스 군도가 일찍이 이슬람 세계에 알려졌고(새가 무섭게 많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그 결과가 강리도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강리도의 섬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이유


이제 관점을 달리하여 강리도상에서 섬의 지리적 위치에 대하여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점은 고지도를 보는 법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아조레스 군도는 실제로는 멀리 서쪽 바다에 떠 있으나 지도에서는 반도 위쪽에 바짝 붙어 있습니다. 이는 지도 제작자가 섬의 위치를 잘 몰라서 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15세기의 지도 제작자라고 가정을 해봅니다. 저 멀리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을 지도에 표시하려고 한다면, 아주 곤혹스러운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정확한 위치에 표시를 한다면 섬을 중심으로 상하좌우의 많은 공간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처럼 종이나 컴퓨터 상에 그린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당시는 귀한 비단에 그려야 했습니다.

그 옛날 머나먼 섬의 위치를 비단을 낭비하면서까지 정확히 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만일 그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점령 혹은 식민지를 삼기 위해서였다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먼 섬을 굳이 제 위치에 표시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지도 제작자는 머나먼 섬들은 포기해 버리거나 아니면 잡아 끌어와서 지도 여백 어딘가에 표시하려고 할 것입니다. 표시를 할 경우에는 구도적 측면을 유의할 것입니다. 지도에서 구도는 항상 중요합니다. 화가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제반 요소를 감안하면서 강리도상의 지샨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베리아반도 북쪽 방향 안쪽으로 여유가 있는 공간에 배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간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구도를 세심히 고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베리아반도 아래쪽 해상에 표시할 경우를 상정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강리도의 아조레스 하나를 놓고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강리도로 한국인 최초의 유럽 여행 일정을 되짚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상상력에 바람을 불어 넣어 보았습니다.

만일 15세기의 어떤 여행자가 유라시아 동단의 한반도에서도 강릉(오른쪽 네모)이나 평창(붉은 화살표)에서부터 서단의 이베리아반도에서도 아조레스나 지브롤터까지를 보여주는 지도를 찾고 있었다면 조선의 강리도가 답이었을 겁니다.
 
a

강리도 강원도 강릉과 평창 ⓒ 김선흥





다음 호에서는 당시 서양의 세계지도들을 강리도와 대조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지명 탐험을 이어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AD

AD

인기기사

  1. 1 조국 잡으려다 사면초가... 독이 된 윤석열의 입
  2. 2 윤석열 최악의 시나리오
  3. 3 고 최숙현 동료들 "팀닥터가 '자살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4. 4 '세계1위 한국라면' 보도의 깜짝 놀랄 반전
  5. 5 유별나게 꼿꼿... 지금 윤석열의 태도가 의미하는 것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