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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가 '힐링 영화'로만 읽히지 않았으면

[리뷰]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18.03.07 15:18최종업데이트18.03.0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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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했다. 나는 아내와 개봉 일에 맞춰 관람했다. 영화는 만족스러웠다. 이야기는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도 내 마음에 의미 있는 파동을 만들었다. 언론에도 <리틀 포레스트>에 대한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 영화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힐링'이다.

영화는 도시 멀티플렉스에 앉아 관람한 사람들에게 포근함을 주었다. 음식과 자연이 담아낸 청춘들의 이야기는 딱딱한 마음 어딘가를 치료하기에 충분했다. 왜 우리 마음이 힐링이 되는지 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 스포가 있으니 알아서 피해가시길 바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알고 봐도 재밌는 신기한 영화다.

# 이웃

음식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이어준다. ⓒ 영화사 수박


영화 초반, 서울에 살던 혜원(김태리 분)은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의성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집부터 눈길을 끈다. 대문이 없다. 원래부터 없었는지, 있었다가 없앴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회상씬에서도 없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없었다. 담벼락도 낮다. 집 마루에 서면 벽 너머가 보인다. 하지만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혜원이 길을 가다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한다. 할머니들은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시고 혜원은 곤혹을 치른다. 어떤 장면에선 한 할머니가 길가에 의자를 내놓고 주무시고 계시자, 혜원은 조용히 그 앞을 지나간다. 그러고 보면 마을에서 혜원을 알고 있는 건 고모와 친구들뿐만이 아니다. 우체부도 혜원을 알고 있다. 나 같은 도시인에게는 이 모든 게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알고 있는 이웃이 있던가? 이웃이라면 경계하고 보는 게 도시에서 사는 지혜가 아니던가?

# 음식

이 영화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건 음식이다. 수제비, 배추전, 밤조림, 파스타, 아카시아 튀김, 떡볶이, 양파 구이 등 다양한 먹거리가 나온다. 음식의 재료는 땅에서 수확한 것들이다. 음식 주변으로 사람이 모이고, 사람을 이어준다.

특히 과거 혜원의 엄마가 만들어줬던 크림 브륄레는 따돌림으로 속상한 혜원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혜원에게 토라진 은숙의 마음을 열리게 한 것도 이 음식이었다. 음식이 관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는 곶감을 보며 혜원에게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진짜 맛있는 것은 겨울에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영화에선 곶감뿐만 아니라 막걸리, 식혜, 고사리 같이 오랜 기다림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소개된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레토르트 식품이 늘어나는 것과는 정반대다.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덜' 중요한 식사는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생존을 위한 음식 말고, 관계를 위한 음식이 될 수는 없는 걸까?

극 중 인물들은 자연과 협업하는 지혜를 배우고, 뿌린 만큼 거두는 정직을 배우는 것 같았다. ⓒ 영화사 수박


# 자연

영화의 배경은 자연이다. 생명이 배경이다. 덕분에 자극적이지 않고 포근하다. 겨울부터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계절은 성실하게 자라고 변한다. 벼 사이에 자란 잡초마저 성실하다. 자연이 성실하게 변하니 사람의 삶도 성실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자연을 닮아가고 그 안에서 조화롭다. 다양한 날씨가 있어야 씨 뿌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연 덕분에 일하고 쉬고 먹는다. 엄마는 혜원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이곳에 심고 싶었다. 그러면 훗날 혜원이 힘든 역경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의 배경에 생명과 초록이 있는지 돌아본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의 배경 속에 살면 나의 감수성은 어떻게 될까? 집에 있는 작은 라일락 하나 잘 키우지도 못하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 소비

장을 보려면 자전거를 타고 30~40분을 가야 한다. 장을 보고 오면 2~3시간이 훌쩍 지난다. 마음을 먹고 가야 하는 거리다. 장터에 가기 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살지, 얼마를 가져갈지, 장바구니는 무엇이 적당한지 고민한다. 장보기 전에 신중한 만큼, 물건 하나를 살 때도 기쁨이 생긴다. 장터에 없는 물건은 구할 수 없다. 있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없는 대로 살아야 한다.

불편하지만 소비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음을 배운다. 어떤 물건이든 집에서 주문하고 인터넷으로 해결하는 도시와 다르다. 주변 대형마트를 다 들려서라도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 물건과 함께 "없으면 사면되지"라는 생각도 얻는다. 소비를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걸까?

# 노동

영화 속 재하(류준열 분)는 농사짓는 것이 자신에게 맞다고 말한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고 거짓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날씨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듯 성실한 노동이 있어야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노동을 숨죽이고 지켜본다.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영화 속 엄마와 혜원이 먹고 있는 토마토가 더 맛있게 보이는 이유는 성실한 노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은 자연과 협업하는 지혜를 배우고, 뿌린 만큼 거두는 정직을 배우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땀 흘린 만큼의 수확을 거두지 못해서가 아니던가? 땀 흘리지 않는 누군가가 수확을 독식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노동과 땀을 푸대접하는 현실이 문득 슬퍼진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다만 이 영화가 힐링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았어"라는 감상을 넘어 영화관 밖 우리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귀농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도시의 삶도 긍정할 지점이 있으며, 영화가 표현하지 못한 농촌의 어려움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의미 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생명의 감수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포레스트로 일상을 채워가길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힐링이자 저항의 영화다.

리틀포레스트 힐링과저항 생명 정직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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