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사라진 학생, 교사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폭력 교사'였다 ②]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아이들, 폭력에 안전지대는 없다

등록 2018.03.18 15:07수정 2018.03.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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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가 되자 한 여자 학생이 교실에서 사라졌다. 두려웠다. 교사라는 사실이. ⓒ pixabay


*이전 기사 : 피멍 들도록 맞아봤는데... '폭력교사'가 돼버렸다

폭력의 단절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2학기가 되자 한 여자 학생이 교실에서 사라졌다. 학년 부장이 전학을 갔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다 한 달 쯤 지나서 알게 되었다. 수시로 가족에게서 성폭력을 당하던 아이였다는 것을.

그때야 눈앞에서 없어진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학교를 띄엄띄엄 나오고 바짝 마른 작은 키에 주근깨 낀 얼굴에는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던, 표정 한 번 짓지 않던 아이. 수업 중 넋 나간 듯이 초점 없는 시선만 굴리다 쉬는 시간에 스르르 사라져 나를 당황케 하던 아이.

두려웠다. 교사라는 사실이.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성폭력에 대해선 무지했고 가정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차라리 현실감이 없었다.

아이가 겪었을 세상의 부조리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아이 앞에서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 '학생 표정이 그게 뭐냐?', '왜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지 않느냐'며 매를 드는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한심해 보였을지 생각하니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뒤로 교직 생활은 '교사들의 경험과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인생 공부에 가까웠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를 피해 도망 다니며 사는 모자, 아버지의 폭력에 치를 떠는 아이, 가난해서 소풍을 못 가는 아이, 사업이 망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아이.

사춘기 청소년들의 언어로는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이 보이기 시작하자 더 이상 매를 들 수도 거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위태로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교육이란 이름으로 또 다른 상처를 얹지만 말자'고 다짐했다.

반면에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학생들이 매를 맞고 벌을 받고 모욕을 들으면 교사는 몸이 편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인줄 알면서도 표면적·일시적으론 문제가 해결되는 듯 보였다. 사회도 그런 교사를 선호했다. 학부모들은 학부모 면담 시간에 나에게 수시로 요구했다.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세요."
"매를 들어서라도 영어 성적 좀 올려주세요."

다시는 첫해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데 너무 막막했다.

'혁명이란 매우 급격하고, 급진적이고, 완전한 변화를 일컬을 때 사용하는 단어로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를 깨뜨리고 무언가를 사유하거나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는 것' - <나쁜 페미니스트> 중에서, 록산 게이

록산 게이의 말처럼, 나에겐 혁명이 필요했다.

'교육적 폭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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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미친 듯이 교육 철학과 교육 방법에 관한 책을 읽고 연수를 쫓아 다니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 pixabay


언제부턴가 미친 듯이 교육 철학과 교육 방법에 관한 책을 읽고 연수를 쫓아다니기 시작하는 나를 발견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무지한가' 깨닫는 겸손의 과정이었다. 책 속의 문장들을 읽을 수는 있으나 이해를 할 수 없어서 속이 탔다. 책을 잘게 잘게 씹어 먹어서라도 소화해 내고 싶었다.

'비폭력적 교육과 생활지도'를 앞서 실천하고 있는 교사들의 연수를 찾아다녔다. 3박 4일 동안 제천 간디학교에서 합숙하며 열리는 "교육철학" 연수도 들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가 읽었던 책들의 저자들에게 듣고 묻고 깨닫는 '새로 태어남'의 시간들이었다. 함께 고민하는 교사들이 전국에 퍼져 있다는 확신에 더이상 외롭지도 않았다.

'학교 붕괴'와 '교육 불능' 시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종종 옛날처럼 맘대로 체벌을 쓸 수 없어서 벌어진 일이라 주장했다. 반대로 나는 아직도 학교에 '교육적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존재하기에 학교 붕괴와 교육 불능의 시대를 부추긴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다.

호주 멜버른에 살면서도 가끔 지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다. 중학생에게 매를 댔다가 부모가 법적 책임을 묻는 교사의 경우도 있고, 고3 자녀가 담임에게 부당한 폭력을 당해도 당장 내신이나 생활기록부 작성, 대학 입학 원서 작성 등을 고려해 속만 끓인다는 부모의 하소연도 있다. 심지어 요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교사들의 폭행 사건들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10여 년 넘는 현장 경험과 나름 열심히 매달렸던 교육철학에서의 이상은, 폭력 없는 멜버른의 교육현장을 보며 드디어 확신으로 다가온다.

폭력에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

현재 한국을 강타하는 미투(MeToo) 운동에서 보듯이, 강간만이 성폭력이 아니라 성추행이나 성희롱도 성폭력인 것처럼, 폭력도 교육적 폭력(체벌)과 나쁜 폭력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그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것이다. 폭력을 통해 학생을 선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더 나은 방법을 고려하기보다는 계속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METOO #호주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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