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는 마음으로 미륵사지를 찾다

국립미륵사지 유물전시관, '세계유산 미륵사지를 찾아서' 강좌

등록 2018.03.15 08:40수정 2018.03.1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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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국립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 진행되는 문화강좌 프로그램 ⓒ 손안나


국립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지난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세계유산 미륵사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문화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없다. 1월에 있었던 "일제강점기 익산지역 고적조사"라는 강의는 일정을 알지 못해서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2월에 있었던 김현용 선생님의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는 들을 수 있었다.

익산에서 태어나 자라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상경하여 8년의 해외생활을 포함 30년을 객지에서 생활 하다 지난 2015년 다시 고향에 돌아왔지만 난 익산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이었다. 익산이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을 잃을 정도이다. 특히 미륵사지는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내 기억의 미륵사지는 논•밭 가운데 다 쓰러져 가는 탑 하나만 있었다. 소풍 전날 비라도 오면 소풍갈 때 신으려 아껴 놓은 운동화에 황토물이 들어 정말 속상했었다. 소풍 가서 우리는 탑에서 술래잡기를 했었고 무너지는 탑 위를 기어오르기도 했었다. 볼 것도 없는 여기로 왜 소풍을 오는 거냐고 불퉁거리면서 말이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석탑이다. 고대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충실하게 보여주며, 고대건축의 실제 사례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이런 이야기는 당시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매일 보는, 늘 거기에 있는 석탑이 그렇게 가치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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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 해체과정 중 발견된 부처님의 진신사리 ⓒ 손안나


2011년부터 역사공부를 시작 하였다. 그리고 내가 30년 만에 고향을 찾을 즈음 익산은 백제역사지구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보게 되었다. 미륵사지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에 찾아간 미륵사지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유물전시관도 건축되어 있었다.

유물전시관에는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병과 진신사리 그리고 금제사리봉안기를 전시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진신사리를 친견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만약 전시가 서울에서 있었다면 가드라인이 쳐지고 사진촬영은 금지였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석탑을 보수하고 정비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어서 정말 좋은 공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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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팁 해체 중 발견된 금제 사리병. 사리병 안에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었다. ⓒ 손안나


이후 난 고향에 갈 때마다 미륵사지를 찾았다. 내 생애 언제 다시 문화재 복원을 이토록 가까이서 보겠나 싶었고 이 과정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탑하나 복원 하는데 무슨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흉물스런 건물에 탑을 가두어 놓고 무엇 하나?'라는 불평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좋았다. 아이들에게 문화재 복원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눈앞에 보면서 이야기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갈 때마다 한 층씩 올라가는 것을 보며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가슴 뛰며 바라보던 석탑이 이제 완성이 되었다. 건물이 철거되면 내 생애에 다시는 이렇게 가까이서 석탑을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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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정비과정 중 보존처리를 마치고 다시 석탑을 조립하고 있다. ⓒ 손안나


내게 그토록 큰 기쁨이었던 석탑의 보수•정비에 대한 강의 소식을 듣고 열일 제쳐두고 익산으로 달려갔다. 강의를 들으며 연구자들에게 감사하였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존중과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 하였고,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존처리와 구조보강 기술을 개발 하였다는 말에 감동 하였다.

석탑의 보수•정비 과정은 일일이 실험하고 적용해서 최상의 것을 찾아가는 지난한 구도의 과정이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석조문화재를 수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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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동탑 앞에서 설명을 듣는 아이들 ⓒ 손안나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과정은 많은 학술적, 기술적,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 많은 성과도 중요 하지만 아이들과 문화유산 여행을 통하여 아이들과 공부하는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복원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석탑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석탑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

지금은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지만 후에 커서 자신들이 역사적인 장소에 있었음을 깨닫는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되는 과학적 보존처리 과정이 이해가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 아이들에게 미륵사지 석탑은 살아있는 문화유산이 되고 친구가 되어 말을 걸어 올 것이다.

석탑이 보수•정비되는 20년 중 마지막 3년을 연애하는 감정으로 미륵사지를 찾을 수 있게 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강의를 기획해 주신 유물전시관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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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정비 과정에 대한 강의를 듣는 사람들 ⓒ 손안나


3월 28일 계획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 장엄구" 강의도 두근두근 기대에 차서 기다리고 있다.  1,300년 동안 석탑이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제 석탑은 희미한 기억 저편의 잊혀 가는 유물이 아니라 살아 우리와 호흡하는 유산이 되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려는 설렘이 참 좋다.
덧붙이는 글 https://blog.naver.com/hiksanin/221227238809
익산시청 블로그에 올린 글 다듬어서 작성 하였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 석탑 #익산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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