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찾아온 '아파트병', 나를 집어 삼켰다

[엄마의 밑줄] 조해진 소설 <산책자의 행복>

등록 2018.03.19 07:56수정 2018.06.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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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시간을 버티게 해준 문장들에 대한 이야기 [편집자말]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병에 걸렸다. 이름하여 아파트에 너무 살고 싶은 '아파트병'. 작은 트롤리 하나를 겨우 채울 정도였던 아이 짐은 출산 이후 급속도로 늘어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육아 용품이 집으로 배달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20평도 채 되지 않는 빌라. 매일매일 집이 점점 좁아지는 걸 체감했다. 온종일 집에 갇혀 아이와 거실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가끔씩은 숨이 막혔다. 늘어난 짐들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치우고 또 치워도 뒤돌아보면 어질러져 있고 더럽혀져 있는 집이 어떨 땐 괴물 같았다.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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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트롤리 하나를 겨우 채울 정도였던 아이 짐은 출산 이후 급속도로 늘어났다 ⓒ 홍현진


출산 후 건망증이 심해진 나는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는데 이 집에서 뭔가를 잃어버리면 영영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아이가 누워서만 놀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뒤집고 배밀이 하고 기기 시작하면서 집은 더 좁게 느껴졌다.

그즈음 육아 정보를 얻기 위해 블로그를 중독 수준으로 많이 했는데, 블로그에 등장하는 집들은 아이가 있음에도 다들 넓고 깨끗하고 무엇보다 아파트였다. 이런 집에 살면 아무리 짐이 많아도, 아무리 어질러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번화가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맛집과 예쁜 커피숍이 널려 있는 이 동네를, 남편과 나는 참 좋아했다. 하지만 아기띠를 메고 유모차를 끌고 거닐기에는 그리 적합한 동네가 아니었다. 도처에 자동차가 다녔고 공기도 좋지 않았다(길에서 담배는 왜 이리 많이 피우는 건지).

'아파트에 산다면 차 없는 단지에서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지 않을까, 놀이터도 잘 돼있고...'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모든 답답함과 우울함을 집에 투사했던 것 같다. 아파트에 살기만 하면 삶의 질이 확 달라질 것 같았다. 물론 그냥 아파트가 아닌 '좋은' 아파트에 산다면.  


'좋은' 아파트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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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기만 하면 삶의 질이 확 달라질 것 같았다. 물론 그냥 아파트가 아닌 '좋은' 아파트에 산다면 ⓒ unsplash


주변 사람들 영향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은 지인들이 하나 둘 아파트를 사기 시작했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거의 차이 없었고 자고 일어나면 매매가가 치솟아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집을, 이왕이면 투자가치가 있는 아파트를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누구는 몇 억, 또 누구는 몇 억.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의 집을 샀다는 지인들 이야기를 듣고 나면 괜스레 우울했다. 집을 산 지인들 중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들은 거의, 아니 아예 없었다. 부모님이 지원해준 종잣돈에 대출을 얹어서 집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결혼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양가 부모님 역시 그럴 형편이 안 됐다. 평생 아파트에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엄마는 말했다. "우리 딸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거 봐야 하는데..." 엄마는 몰랐을 거다. 부모가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면 그 자식 역시 아파트에 살기 어려운 시대에 당신의 딸이 살게 되리라는 걸. 부의 대물림이 가장 극명하게 재현되는 공간이 바로 '집'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노오력'한다고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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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 집은 내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 홍현진


아이를 낳기 전, 집은 내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후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면 어떨까 묻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지, 집에 저당 잡힌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집이 주거지가 아니라 투자의 수단이 되는 거, 그거 불로소득 아니냐고. 적어도 나는 거기에 편승하고 싶지 않다고. 좋은 집, 좋은 차 말하는데 그게 대체 왜 중요하냐고. 나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아파트는 더 우습게 봤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우뚝 서 있는 아파트들을 볼 때면 저렇게 개성 없이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삭막한 건물에서 왜 다들 살고 싶어 하는 걸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마구잡이로 아파트를 짓고 모두가 아파트를 욕망하는 '아파트 공화국'이 된 한국을 개탄한 것은 물론이다. 내가 그들 중 한 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존은 스스로 해결하되 세상이 인정하고 우대해주는 직업에 연연하지 말라고, 눈 가린 말들처럼 정해진 트랙을 달릴 필요 없다고, 종강 즈음이면 한 학기를 정리하며 그녀는 학생들에게 말하곤 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지키는 한 어떤 형태의 가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늘 확신에 차 있었고 그 말의 무게를 책임질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에게 남은 선생으로서의 마지막 말은 존재와 신념을 모두 부인하는 배교자의 언어였다. 그 언어는 종종 새벽의 편의점 안에서 손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끊임없이 그녀를 돌려세워 광대의 의자에 앉힌 뒤 그녀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들을 바닥에 널어놓고는 조롱하듯 손가락질하는 거칠고도 악센 손들... 아직 새벽의 한가운데였다." - 조해진, <산책자의 행복>, p.106(전자책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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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에 수록된 <산책자의 행복> ⓒ 창비


조해진 단편 <산책자의 행복>(조해진 소설집 <빛의 호위>(창비) 수록작)의 주인공 미영은 20년 가까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강사였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철학과가 통폐합되면서 미영은 일자리를 잃는다.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어머니의 병원비까지 부담하며 생활고를 겪던 그는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한다.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속된 세계로의 편입'을 비난하던 그는 극한의 가난 속에서 '품위'를 지키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편의점 사장을 보며 '그의 그늘 아래를, 아늑한 침대와 자족적인 식탁을 남몰래 탐하'는가 하면(p.117, 전자책 기준),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손님이 들어오면 혹시나 자신을 아는 학생일까 초조해한다. 그가 학생들에게 확신에 차서 내뱉었던 말들은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온다.


'끊임없이 그녀를 돌려세워 광대의 의자에 앉힌 뒤 그녀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들을 바닥에 넣어놓고는 조롱하듯 손가락질하는 악센 손들...'(p.106, 전자책 기준)

아파트병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이 문장도 함께 내게로 왔다. 과거의 내가 쉽게 내뱉었던 말들이 '배교자의 언어'가 되어 내게 돌아오고 있었다. 좁은 집을 보며 나보다 더 속상해한 건 양가 부모님들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도와줬어도 이거보다 좋은 집에 살 수 있었을 텐데... 날날이(아이 별명)도 넓은 집에서 뛰어놀면 얼마나 좋겠어.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 늘 미안하다."

미안해야 할 건 부모님이 아닌데, 나는 애꿎은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다. '분수에 안 맞는 비싼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 내 모습이 딱 그랬다. 과거의 내가 봤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을 종류의 인간, 그게 지금의 나였다.  

아이를 낳고 변한 걸까. 아니.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속물적이고 끊임없이 타인과 내 처지를 비교하고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처음에는 '아파트병'에 시달리는 내가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니까.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내 밑바닥을 봐서 다행이라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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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결혼하기 전까지 9년간, 서울에서 이사만 8번을 했다 ⓒ unsplash


'아파트병'이 호전되기 시작한 건 우연히 본 어느 인터넷 기사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힘겹게 학업을 병행하는 대학원생 이야기. 그걸 보며 취업 전까지 한시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었던 대학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으려고 장학금에 목을 맸던 기억도... 청춘의 낭만도 무모한 도전도 내 20대에는 없었다.

대학 입학 후 결혼하기 전까지 9년간, 서울에서 이사만 8번을 했다. 지방 출신이었던 나는 자취를 했는데 하숙집부터 시작해서 원룸, 셰어하우스, 고시원, 반지하... 그때는 그저 구조가 네모 반듯한 집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역시나 자취를 했던 남편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90년대 초에 지어진 빨간 벽돌 빌라였던 첫 번째 신혼집 전세 기간이 끝나면서 이사 온 게 지금 살고 있는 문제의(?) 집이다. 부동산 중개인과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거실에서 빛이 났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집이었고 큰 창으로는 초록빛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바로 계약을 했다. 

이사를 오기 전, 남편과 손잡고 몇 번이나 집 근처를 서성였다. 아, 여기가 우리가 살게 될 집이구나.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믿기지 않았다. 빨간 벽돌이 아닌 집도, 현관에서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집도 처음이었다. 지은 지 4년밖에 안 된 집이었다. 한참이나 맞은 편 길에 서서 이사 갈 집을 올려다보며 행복해 했다. 이 집은 그렇게 소중한 집이었다는 걸,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까지도 정말 힘들게 왔다는 걸.

우리는 전세 계약을 2년 더 연장했다. 2층인데 아래가 필로티 주차장이라 아이는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구 뛰어논다. 아이 키우기에는 이만한 집이 없는 것 같다. 집이 터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 없는 물건은 족족 나눠주거나 중고장터에 팔고 있다(그러면서 계속 사들인다는 게 함정). 복직 후에는 집에 있을 시간이 많지 않고, 언제부턴가 육아 블로그는 아예 보지도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분양'이라는 두 글자만 봐도 눈이 쏠리고 집 샀다는 친구 이야기에 사촌이 땅이라도 산 것처럼 속으로 배가 아프지만 아파트병은 차차 치유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무엇도 쉽게 확신하지 않기로 했다. 설령 나에 대한 것일지라도.

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창비, 2017


#주간애미 #엄마의 밑줄 #아파트 #집 #산책자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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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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