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서 죽겠다"는 에미를 원망하지 말라니

[리뷰] 나혜석의 <조선 여성 첫 세계일주기>

등록 2018.03.16 08:13수정 2018.03.16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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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여성의 '앎'은 쓸모없는 것,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책을 읽는 여자는 어떤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획득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자존심 또한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세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상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출생과 전통으로 매개된 모습이나 남자가 보는 모습과는 분명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 슈테판 볼만,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중

이 땅에서 책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집필 활동을 했고, 그림을 그렸으며, 1920년대에 이미 세계를 유람한 여성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이른바 신여성으로서 사회의 관심과 냉대를 한 몸에 받다가 결국 무연고 행려병자로서 삶을 마감한 사람. 불꽃같은 삶이란 말이 실로 잘 어울리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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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성 첫 세계일주기 나혜석> 책표지 ⓒ 가갸날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는 그녀가 1927년 6월 19일부터 1929년 3월 12일까지 1년 8개월여 동안 세계 일주를 하며 직접 쓴 기록을 엮은 책이다. 책은 '떠나기 전의 말'로 시작하며, 그녀가 일생 동안 고뇌해야 했던 문제를 보여준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p7)


세 아이를 두고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그리고 "내 일가족을 위하여, 내 자신을 위하여, 내 자식을 위하여"(p7) 떠나기를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일주기답게, 그녀가 유람한 각국의 개괄적인 정보, 그곳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이 많다. 뉴욕이 네덜란드의 식민지로서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리다가, 영국으로 넘어가며 뉴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천혜의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스위스지만, 그녀를 통해 "스위스 전체가 경승지"(p60)라고, "그림의 대상이 될 만한 곳이 무진장"이란 말을 들으니, 먼 훗날 나 역시 그곳을 유람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기도 했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심지어 여성으로서는 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 일주를 하며 그녀는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헤이그에서는 그곳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한 이준 열사를 떠올리며 "그의 외로운 영혼이 우리를 만나 눈물을 머금는 것 같은 감"(p75)을 느꼈다고 술회한다. 관현곡이 흐르는 유람선은 행복하지만, "삶에 허덕이는 고국 동포"(p51)를 떠올렸음을 기록하기도 한다.

책 곳곳에는 그녀의 예술가로서의 면모 또한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술관 안에 발을 들여놓을 때 과도한 기대로 심장이 뛰었다. 가벼운 충동이 내 몸속을 퍼져나갔다."(p183)


스페인에서 고야의 작품을 본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그의 묘를 보고 아울러 그의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또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이 생각 들었다. 내 발길은 좀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pp180-181)


그녀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단연 프랑스였다.
"과연 파리 인심은 자유, 평등, 박애가 충분하여 누구든지 유쾌히 살 수 있다. 이곳을 떠날 때는 마치 애인 앞을 떠나는 것 같다. 나는 파리를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떠나기가 싫었다." (p190)


신문물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는 다를 것이다. 파리는 그녀에게 조선인으로서, 무엇보다 여성으로서 숨 쉴 수 있는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삼천리> 기고글에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지금까지는 중성 같았던 것이). 그러고 여성은 위대한 것이요, 행복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물정이 여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보았고 알았다." (p155)


그녀에게 이 세계 유람은 "사상적 해방구였던 동시에 나락의 길로 떨어지는 빌미"(책날개)가 되었다고 한다. 고국에 돌아온 뒤 얼마 안 가 이혼을 하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이다. 신여성이라고 불렸던 많은 이들의 일생이 평탄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2018년을 사는 나로서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는 그녀의 일생 전반을 담기보다, 제목 그대로 그녀의 여행 기록을 엮은 책이다. 당시의 세계 풍경을 엿보는 재미가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라 잃은 국민이었던, 그리고 여성이었던 나혜석을 통해 나 자신의 정체성 또한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가 흠결 없는 인간이었느냐 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지금의 한국을 들여다보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끝으로, 생동감 가득한 그녀의 글의 일부를 옮긴다.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중략)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 (p227, <삼천리>에 실린 글 재인용)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가갸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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