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둘, 난 여전히 '종이신문' 본다

내가 종이신문을 사랑하는 사소한 이유들

등록 2018.03.15 20:55수정 2018.03.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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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우리집에는 당시 나름 신문계의 우위를 지니던 <조선일보>가 아침마다 배달왔다. 엄마는 아빠가 다 읽은 너덜너덜한 신문을 남매에게 주시며, 반드시 한 꼭지씩 신문스크랩을 하게 하셨다. 뭔 내용인지도 이해 못할 어린 우리는, 그나마 읽기 쉬운 조그맣게 실린 '희망사례'를 쟁탈하려 항상 투탁거렸다.


나는 신문에서 나는 퀴퀴한 향이 좋아 늘 코를 맞대고 킁킁거렸던 추억이 있다. 글자마다 작게 잘라서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도 즐거웠고, 커다란 신문을 팔랑이며 넘기는 아빠의 모습도, 음식을 덮으려 씌어놓은 신문 종이도, 내가 쓴 독후감이 두번이나 신문에 실려서 학교에 자랑하려 들고가다 찢어진 슬픈 기억까지.

하지만 종이신문의 낮은 구독률과 열독률, 유료부수의 감소,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가 늘면서 신문의 디지털 전환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종이신문 구독률은 2012년 20.9%과 2017년 9.9%으로 큰 하락세를 보인다.

2000년대, 매일 아침 전국을 들썩이던 '신문 1면'은 더 이상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대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시시각각 뜨는 '특별속보'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시 찾은 종이신문, 팔랑팔랑 퀴퀴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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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신문 소소한 커피를 곁들인 아침신문보기, 참 평화롭다. ⓒ 송혜림


언젠가부터 종이신문은 문 앞에서 사라졌다. 아빠가 구독 취소를 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무료고, 편리하고, 타인의 의견까지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신문을 택했다. 사회 이슈에 관심 많던 나도 어른이 되고 나서 거치적거리는 커다란 종이신문보다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인터넷 기사를 선호했다.


그러나 기사를 보는 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곧이곧대로 믿는 팔랑귀가 눈에 있는 것이다. 기사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베스트 댓글을 여론으로 생각해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었다.

옳지 못한 내용조차 일반적인 견해에 반해 '내가 잘못 판단하는 거야'하며 댓글과 똑같이 생각하려 애썼다. 후에 군과 국정원, 그리고 경찰까지 댓글 여론조작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적잖은 충격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이듬해 초, 다시 종이신문을 구독했다. 오로지 종이에 실린 기사만을 읽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댓글은 내가 또 다른 시각과 깨달음을 주는 창구였다. 하지만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찰나를 빼앗기는 위험성이 있었다.

또 다른 소소한 이유는, 이른 시간에 소식을 가득 싣고 배달오는 신문에서 은근한 감성과 설렘까지 전해오는 느낌이랄까. 아침 10시,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신문, 새로운 일과가 나의 하루에 생성되었다.      

스물 두살에 다시 하는 신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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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 오리는 것도, 붙이는 것도, 쓰는 것도 재밋거리다. ⓒ 송혜림




사실 구독 시작할 땐 신문스크랩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대학생들이 그렇듯, 늘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문제가 화두였던 당시, 그가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인지'를 자세히 알고 싶어 요모조모 정리한 것이 신문스크랩의 시발점이 되었다.

신문은 <한겨례>를 선택했다. 신문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을 이맘 때야 알았다. 균형적인 시각을 위해 한겨례를 보면 조선일보도, 경향신문을 보면 중앙일보도, 번갈아 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분류는 정치/사회/문화/경제/세계/# 으로 나누었다. '#'은 미투운동이나 어디에 넣을지 모를 기사를 분류했다. 주로 그 날의 기조가 되는 신문 위주로 편집을 했다. 마치 역사 흐름의 한 단면을 싹둑 잘라 넣는 기분이다. 그 외에는 노동자들의 처우를 담은 기사나, 주목받지 못하는 뜨거운 투쟁들, 생활의 부당함을 알리는 시민들의 작은 목소리를 실었다. 논리적이고 훌륭한 맨 뒷면의 칼럼들도 꼼꼼히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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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의 기사들 포스트잇으로 추가적인 정보나 내용정리를 작게 넣었다. 오른쪽 아래 포스트잇은 민주당과 자한당의 젊은 의원들의 토론 당시 했던 발언 중 생각나는 걸 적었다. ⓒ 송혜림


스크랩을 통해 얻는 시사상식도 보기보다 상당했다. 기사 내용 중 핵심내용만 잘라서 붙이고, 내용 중 모르는 단어나 내용을 따로 정리했다. 관련한 구체적 수치들은 직접 찾아서 분석하고 포스트잇에 적었다. 그리고 관련 글을 쓰고 싶으면 따로 찾아볼 필요 없이 내 노트를 펼쳤다. 내 손으로 차곡차곡 정리해놓은 나의 스크랩은 '정보노트'였다.

정치내용은 과거 정부들은 현 정부와 달리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흐름을 되짚었고, 이전 대통령들을 나름대로 새롭게 재평가하는 기회도 얻었다. 문외한이던 어려운 경제분야는 단어를 공부하고 알아갈수록 무슨 정보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세계분야는 각 국가 정상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나가는지 한 눈에 보였다.

요즘 인터넷 뉴스도 분류가 잘 돼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하나하나 잘라서 정리하며 시사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재미였다. 기사에 내 의견을 보태서 포스트잇에 붙이니, 내 가치관과 주관은 어떤지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

기사를 일부러 검색하지 않는 한, 자칫하면 잊히는 중요한 이야깃거리들을 아는 것도 쏠쏠했다. 기조가 되는 기사들에 가려진 작은 기사들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나에겐 훨씬 가치있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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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길고, 요약은 짧게 이듬해 큰 이슈인 개헌 내용 스크랩. 이 것도 한국역사에 큰 흐름을 기록해 넣는 거겠지싶다. ⓒ 송혜림


기자를 준비하는 나는 기자아카데미나 강연들을 찾아봤지만, 만만찮은 가격들에 손이 떨렸다. 타고난 글실력을 지녔더라면 이런 돈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하며 무의미한 후회도 했었다.

그런데 신문스크랩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 있다. 기사 쓰는 형식이나 문체, 사회를 바라보는 다각도의 시각, 다양한 분야의 시사상식들이 그렇다. 나는 그래서 신문스크랩 대신 '기자공부'를 하고있다고 한다. 다만 가끔 스크랩 하는 시간에 어학공부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불쑥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신문스크랩은 이십대 초반의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었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거름이 되어주었다. 글쓰기의 질이 높아지고, 글을 읽을 땐 비판적으로 논증하며 새롭게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언젠가는 종이신문이 사라질 날이 오겠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신문'을 사랑한다. 팔랑거리는 그 감촉도, 물큰 풍기는 퀴퀴한 향도 좋은, 사소한 이유들도 있기에. 
#신문 #한겨레 #신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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