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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공주도 기죽인 휠체어 위 '앵그리버드'의 정체

[인터뷰] 평창 패럴림픽서 마지막 스톤 책임지는 차재관 선수

18.03.16 07:56최종업데이트18.03.1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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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그리버드 차재관... '제발, 제발' 평창패럴림픽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 차재관 선수가 14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스톤이 원하는 위치에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 소중한


"저 잘 못하는데..."

평창동계패럴림픽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차재관 선수(47)가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15일 중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른 뒤 자원봉사자가 사인을 요청하자 자신도 모르게 나온 반응이었다. 한동안 손에 펜을 쥔 채 쭈뼛대던 차재관은 어색한 듯 허리를 세워 자원봉사자 목에 걸려 있는 AD(Accreditation, 승인)카드에 사인을 해줬다.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주는 게 어색할 정도로 차재관을 비롯한 휠체어컬링 선수들은 음지에서 노력해왔다. 장애인 운동선수일 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에서 '팀 킴'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중에게 생소했던 컬링 종목의 선수이기에 설움도 겪어 왔다. 한편으론 이러한 점 때문에 최근의 관심이 부담될 수도 있고,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차재관은 다르게 말했다.

"많은 관중분들이 경기장을 찾아주고 계세요. 그 관심에 우리가 부응해야죠. 시합하기 전 동료들과 이야기합니다.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라고요. 관중들의 응원에 힘입어 기분 좋게 경기하고 있습니다."

15일 오후 강원도 강릉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컬링 대한민국 대 중국 경기에서 차재관 선수가 스톤을 보고 있다. ⓒ 이희훈


재활병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차재관은 최근 네티즌들로부터 '앵그리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짙은 눈썹이 앵그리버드를 닮은 것을 넘어, 경기 내내 마치 화난 듯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 중 그가 웃는 모습을 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재관은 이번 대회 들어 기자들로부터 "표정이 항상 어둡다"는 질문을 여러 차례 들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예선 막바지인 14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이긴 뒤엔 살짝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정말 잠깐이었다. 그가 '드디어' 미소를 보여준 이유가 재미있다.

"그때 그랬죠. 하도 안 웃는다고 하니까 '(경기에서 이긴) 지금 웃어야 하나?'라고 (서순석 선수와) 이야기하면서 웃었어요(웃음)."

▲ '무표정' 차재관, 드디어 웃었다 평창패럴림픽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 차재관 선수가 14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가 확정된 후 미소를 보이고 있다. ⓒ 소중한


차재관은 갓 서른을 넘긴 2002년 큰 사고를 당했다. 척추가 골절됐고, 그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고 만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재활병원에서 자신의 삶을 바꿔준 인연, 지금의 아내를 만난다. 아내 역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었고, 함께 배드민턴을 접하며 선수로 활동했다.

차재관은 2006년 접한 휠체어컬링에 큰 매력을 느낀다. 이전에 했던 배드민턴과 달리 춥고 정적인 경기이기 때문에 추위와 하반신 통증에 시달렸지만, 원하는 곳에 스톤이 들어갈 땐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가 컬링에 느낀 매력만큼 실력도 늘어갔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해 이번 평창패럴림픽 무대에 오르게 됐다. 원래는 세컨드 포지션이지만 이번 패럴림픽에선 마지막 두 개의 스톤을 던지는 중책까지 맡고 있다.

"책임감은 크고요. 부담감... 부담감은 좀 있어요(웃음). 근데 잊으려고 해요. 부담감을 가지면 컬링 못할 거예요. 또 팀워크를 믿어요. 다른 사람이 못했을 때 제가 잘 하고, 제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이 잘하고... 그게 팀이잖아요."

평창패럴림픽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 차재관 선수가 14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딜리버리 스틱(스톤을 굴리기 위한 막대)를 든 채 이동하고 있다. ⓒ 소중한


마지막 투구자로서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들어가지만 차재관은 이번 대회 신들린 샷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스웨덴전에서 나온 마지막 8엔드 더블테이크아웃은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당시 경기장을 찾은 이희범 평창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이 "스웨덴 공주가 제 옆에 앉아 있었는데, (차재관의 더블테이크아웃을 보고) 당혹스러웠다"라고 웃으며 말할 정도로 완벽한 샷이었다.

차재관을 비롯한 선수들의 고른 활약으로 한국은 예선 1위로 준결승에 안착했다(관련기사 : '팀킴' 잇는다! 한국 휠체어컬링, 예선 1위로 4강 진출). 그는 "금메달"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초심"을 강조했다.

"동료들끼리는 금메달 아니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죠. 금메달을 원하지 않는 선수가 어디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 잘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요. 지금 4강에 올랐기 때문에 조금 떠 있을 수도 있거든요. 앞으로의 경기도 첫 경기라는 생각으로 임할 겁니다."

경기장에 올린 목소리 "아빠, 파이팅!"

평창패럴림픽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 차재관 선수가 14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서순석 선수와 작전회의를 마친 뒤 투구하기 위해 돌아서고 있다. ⓒ 소중한


차재관에겐 아내뿐만 아니라 너무도 소중한 인연이 있다. 바로 자식 삼 남매다.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아이를 갖는 게 어려웠지만 힘들게 첫 아이를 얻었고, 이어 쌍둥이까지 낳게 됐다. 하지만 패럴림픽 준비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 점이 차재관의 가슴 속에 항상 남아 있다. 그가 메달을 따려는 이유도 아내와 삼 남매 때문이다.

"집에 있으니 답답해서 안 되겠다"며 아내와 삼 남매는 14일 오후 경기부터 경기장을 찾고 있다. 마침 차재관의 환상적인 샷이 그날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관중석에선 "아빠, 파이팅!"이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차재관은 그쪽을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아내와 삼 남매를 떠올리면, 차재관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쑥스러운 듯 기자 앞에서 표현은 길게 하지 않는다.

"매번 했던 이야기인데요. 패럴림픽 끝나면 애들하고 많이 놀아주기로 했어요. 그때까진 집사람이 많이 고생할 거예요. 항상 미안해요. 고맙고요."

차재관을 비롯해 방민자(57)·서순석(48)·정승원(61)·이동하(46)까지, 모두 성이 달라 '오(五)벤저스'로 불리는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16일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전을 치른다. 준결승전 결과에 따라 17일 동메달 결정전 혹은 결승전에 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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