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자격증 '아부인증서'라는 아이들, 반박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131] '내부형 교장 공모제' 후퇴, 기득권에 무릎꿇은 교육

등록 2018.03.16 09:30수정 2018.03.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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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은 승진하려면 윗분들에게 아부를 잘해야 한다면서요."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걸까. 아이들은 '아부'를 평교사가 교장, 교감이 되는 지름길로 아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교장, 교감이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자리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분들을 존경한다는 아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로부터 '꼰대'라는 조롱을 듣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업시간에 직접 마주칠 일이 없으니, 아이들은 교장과 교감을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투명인간'처럼 여긴다. 하긴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상을 '사무적으로만' 접하는 자리여서 둔감할 수밖에 없다. 혹, 짓궂은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그분들에 대한 '뒷담화'라도 늘어놓을라치면 대개 맞장구치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교무부장과 연구부장, 학생부장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빅3 업무'를 단골로 도맡는 교사에게는 미리 축하인사를 건넬 만큼 영악한 아이도 더러 있다. 다들 기피하는 업무인 만큼 고생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승진한다고 여길 법도 한데, 외려 교장과 교감의 측근으로 승승장구하는 것이라 여긴다. 물론, 아이들은 교사들이 그렇게 승진에 목매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다.

그저 교장과 교감이 되면 평교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급여를 받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다. 얼토당토않은 억측이지만, 그렇다고 아니라며 바루어주기도 뭣한 구석이 있다. 나 역시 승진에 목매단 동료교사들의 심리가 잘 납득이 안 되는 마당에, 지레 짐작하는 아이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능력이 없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장과 교감, 수석교사와 부장교사 등이 마치 계급처럼 나뉘어져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모두 '선생님'일 뿐이다. 그들이 교사를 찾을 때, 선생님 앞에 과목이나 이름을 넣어 부르지, 직급을 앞세우진 않는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한사코 이름보다는 직급으로 부르는 교사들의 뿌리 깊은 관행이 조금은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올해 큰 아이가 진학한 고등학교의 입학식 때 직접 겪었던 일이다. 그곳에선 교사들끼리 직급은커녕 서로 별명을 지어 부르고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앳된 평교사가 나이 지긋한 교장, 교감을 마치 친한 친구처럼 불렀고, 그들은 불쾌해하기는커녕 언뜻 자식 같은 그를 살갑게 응대했다.


더욱 놀라운 건, 재학생들도 교사들을 그렇게 대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별명을 기억해 부르는 것은 물론, 흡사 또래들끼리 대화하는 것처럼 격의 없는 모습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정규 고등학교이니 만큼 그곳에서도 교사마다 업무분장에 따른 직급과 위계가 있을 텐데도 굳이 캐묻기 전까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전체 학생 수가 120명 남짓이 소규모 학교인 까닭도 있겠지만, 교장과 교감 모두 담당한 교과 수업이 있었다. 그곳이라고 관리자로서의 잡무가 왜 없을까마는 부러 시간을 쪼개 아이들과 직접 만나고 있는 것이다. 교장과 교감이 '권위'를 내려놓을수록 교사들은 아이들과 가까워졌고, 학교는 그만큼 활기를 띠었다.

교장과 교감을 성취한 '벼슬'로 여기지 않고, 그저 담당한 '업무' 정도로 여기는 모습에서 학교개혁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학교의 변화는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교사들끼리 권력을 나누고, 그에 따른 책임도 나눠지는 모습이야말로 학교가 일상 속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참교육의 실천이다.

그러자면 기존의 '직선적인' 승진 체계부터 손 봐야 한다. 평교사가 승진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 교감이 되고, 이어 교장이 되는, 흡사 '생애주기' 같은 방식은 교육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온갖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교직 사회를 '승진에 목매단 교사'와 '승진을 포기한 교사', 두 부류로 확연히 갈라놓았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소홀해지는 건 둘 다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은 평교사도 교육자적 소명과 역량, 의지가 있다면 교장과 교감으로 일하고, 임기를 마치면 다시 평교사가 되어 교실과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일상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교사의 본령이라면, 교장과 교감이 돼서도 수업에 임해야 옳다. 단지 수업하기 힘들고 귀찮아서 승진한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많은 교사들이 기존의 교장승진제도를 대표적인 적폐로 꼽고 있다. 나아가 그것이 과연 우리 교육에 기여한 바가 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승진 점수를 쌓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도서벽지 근무 경험과 1급 정교사 자격시험 성적 등이 학교교육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반문하는 셈이다.

혹자는 이렇게 응수한다. 교장과 교감 승진이라는 '당근'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힘든 부장 업무를 맡고 궁벽한 도서벽지에서 근무하겠느냐고 힘주어 말한다. 학교의 업무는 교사들끼리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고, 도서벽지의 근무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교육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답하면, 그들은 '이상'일 뿐이라며 무질러버리기 일쑤다.

듣자니까, 학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내부형 교장 공모제'가 기존 계획보다 크게 후퇴했다고 한다. 교장자격증 유무와 관계없이 교육경력 15년 이상인 평교사가 교장 공모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 학교를 기존의 '신청학교 15% 이내'에서 50%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이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초안에선 별도의 비율을 두지 않고, 전국 국공립학교로 전면 확대한다는 방침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현직 교장과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는 예비 교장, 교감 등이 주축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국민 여론보다 무서운 것이 기득권이라더니, 전면 확대에 찬성하는 여론의 지지가 순식간에 힘을 잃었다. 각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우리 국민 열 명 중 일곱 여덟이 '내부형 교장 공모제'의 전면 확대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당장, 여론조사에서 애초 배제되었을 10대 아이들조차 '내부형 교장 공모제'에 대부분 찬성한다. 이름만 언뜻 들어서는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도입 취지와 방식을 설명해주니 '두말하면 잔소리'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개중에는 기존의 교장승진제도와 부러 대조하면서 친구들과 토론을 벌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기존의 교장승진제도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아이들의 주장을 슬쩍 엿들어봤다. 그들은 교장자격증 자체를 촌스럽게 여겼다. 한 아이는 교장자격증을 두고 '아부 인증서' 아니냐며 조롱하기도 했다. 굳이 필요하다면, 수업을 열심히 하고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를 학생들이 직접 선정해 수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엉뚱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에 무릎 꿇었다는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자, 정부는 교장 공모제 확대에 따른 찬반양론을 종합적으로 반영했으며, 급격한 변화로 인한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다고 해명했다. 대다수의 교사와 학부모, 심지어 아이들조차 찬성하는 마당에, 그들이 말한 '혼란'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기득권의 반발을 모든 구성원들의 책임인 양 '교육현장의 혼란'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더욱이 찬반양론을 들어 서로 양보를 했다는 식의 해명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명색이 교육에 관한 일일진대 옳으면 옳은 거지, 길거리에서 흥정하듯 반반씩 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교육이 무슨 '짬짜면(짬뽕 반, 짜장면 반)'인가.
#내부형 교장 공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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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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