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냐"

아픔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극복하는 힘

등록 2018.03.16 10:18수정 2018.03.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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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pixabay


'건강은 먹고, 마시고, 일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정치하고, 꿈꾸고, 행동하고, 고통 받는자 들의 계획이다'(이반일리치)


"한동안 돈을 벌어보겠다고 욕심도 내보았는데, 이제 이후 삶은 의미 중심의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혹시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수도 있을 것도 같아 어머니에게 처음 말씀드렸더니, 3일 간 기도하고 나오시더니 "니 마음대로 해라" 하시더군요.

그동안 닉네임으로 나를 감추고 살아왔던 허울을 벗고, 나의 이름을 걸고 정신장애인권 활동가로 나서보려고 해요. 조현증 환자로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어린아이를 좋아하는데 마음 놓고 좋아라 할 수도 없습니다. 즐거운 내색을 하면 병증으로 의심하고, 조용히 있으면 그 또한 우울이라 하고. 모든 걸 병증으로 판단하지요."

처음 그를 만난 자리는 2014년 7월 12일 '함께 꿈꾸는 세상! 사회적경제 아카데미 및 실무학교'1)였다. 단기 코스가 아닌 10주차 매번 1시간씩 배치되어진 것, 그동안 의료협동조합에서 주로 진행되던 마음산책2) 프로그램이 사회적경제 분야에 첫 선을 보인 것이다. 사회복지사, 관련 단체에 근무하는 활동가들이 일부 참여했지만, 대부분은 뇌성마비, 시각장애인, 지체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이 아카데미였다.

"저의 닉네임은 보라돌이입니다. 융합, 통일, 조화를 어떻게 이뤄낼까, 정신장애인들의 빈곤문제,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보라돌이의 첫 인상은 반듯하고 균형있어 보였다. 프로그램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참여자들에게 고백했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겉으로 멀쩡해보여 나를 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나는 조현증(정신분열증) 환자다. 끝도 없는 마음의 방황, 40대의 정체성을 찾아 가고 있는 중이다.


지역라디오 방송국 국장으로 일하고 있다가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퇴원을 하고 방송국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할 수 없었다. 공인으로서 자기관리를 못한 것만 같아서 꼭꼭 숨어 지낼 때 친구가 전화를 해주었다.

"친구야~ 요즘 위가 아픈 사람은 내과를 가고, 눈이 아픈 사람은 안과를 가듯이 너는 마음이 아파서 정신과에 가는 거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아픈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친구의 위로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단다. 그는 지금도 매주 주치의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놀랐다. 마음이 찡해왔다. 그 마음을 한 편의 시로 만들어보았다. '마음이 마음에게 물어본다'는 시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마음이 마음에게 물어본다.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마음이 마음에게 물어본다.
진짜,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마음이 마음에게 물어본다.
지금, 네가 원하는 건 뭐야?
마음이 마음에게 물어본다.
아파~
마음이 마음에게 대답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아픈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괜찮아.


우리 모두는 어떤 시기, 어떤 순간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아픔 너무 꽁꽁 숨겨두지 않았으면 한다. 어느 순간 저고리 고름 풀듯 허허로이 풀어 헤치면,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 만나 위로되고 위로받을 것이다. 아픔을 고백한다는 건, 아픔을 넘어서는 것이며, 자신을 초월하는 첫 걸음이다.

2.

"제가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못 알아들었어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2017년 서울시 연구 자문을 하며 만났던 연구보조원인 그녀가 식사 대화 중에 우리에게 요청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존재,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차라리 눈에 보이는 장애라면 보여지는 것만으로 굳이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텐데. 모두가 웃을 때 함께 따라 웃지 못할 상황도 일어나겠다. 어느 순간은 자신의 장애를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 않아 못 알아 들은 채로 있을 수도 있겠구나. 자신의 아픔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그녀의 용기가 아름답다.

어느 누구든 보이지 않는 신체나 마음, 정서의 장애들을 가진 이들이 있을 거다. 감히 표현하지 못해 가슴에 돌덩이 하나 떠안고 사는 사람들 말이다.

'아픔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극복하는 힘' 의료협동조합 건강정의가 여기서 빛이 난다. 그 아픔을 중심에 두면서 '건강한 관계' 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건강마을'공동체 아닌가.


'아픔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극복하는 힘'이며, 몸, 마음, 세상의 안녕과 더불어 영적, 생태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발현해가는 과정이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건강정의)


3.

나이가 들어도 활력 있게, 병 없이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가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삶은 어떤가.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건강 수준이 과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지만, 우리는 더 많은 질병으로부터 위협 받고 있다.

한편에선 건강정보를 가지고 불안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의료시장이나 보험시장에서는 노화를 늦추기 위한 다종다양한 건강보조식품, 값비싼 웰빙 상품, 개인 차원의 건강관리 프로그램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건강'은 개인 행복의 조건으로서 조장되고, 아프지 않을 때는 '남의 이야기'다.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만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게 문제다. 건강은 협소한 개인적인 영역으로 환원시켜 출발하는 것뿐 아니라 삶의 총체성으로 접근이 필요하다. 보건의료 참여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건강은 생로병사를 아우르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건강문제는 고통의 감수성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대화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 필요하다. 건강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생활터전의 총체적인 변화가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의학이 정한 기준치로 건강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아픔을 계기로 생존의 아름다움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생명의 근원에 다가간다. 아프고 병든 채로 이웃들과 만나고 사귀며, 함께 울고 웃는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 이웃을 넘어 전 세계인의 생명에 민감하게 귀 기울이는지, 인간의 생존을 가능케 하는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감사하고 있는지, 그것들과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와 나눔의 깊이는 얼마나 깊어졌는지, 서로 두려워하며 방어하기 위해 쳐 놓은 벽을 얼마나 허물고 있는지, 그리고 이런 질문을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물을 것이다."


이제 건강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다.

1) 2014. 7. 2~10. 25, 복지부지원으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주관하여 진행한 프로그램으로 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실무학교
2)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교육연구센터가 개발한 자기 성찰을 기반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

#잇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권 #동계올림픽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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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는 시민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건강권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건강'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임을 선언하며 2003년 4월 출범했습니다. www.konkang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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