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왜 그랬나 했는데, 아파도 일만 하다 바보돼"

[르포] 해고 통보 받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등록 2018.03.22 22:11수정 2018.03.2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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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주식회사 군장공장.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정문 전경. ⓒ 최은주


"아버지께서 뭉칫돈을... 시골 일 하시는데... 아빠가 알바 했어, 이러면서 돈을..."

그는 2시간 넘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감정이 격해져 수차례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문을 닫기로 결정한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아무개(38세)씨 이야기다. 그는 지난 2011년 한 인력업체를 통해 공장에 취업했고, 이후 8년 동안 근무했다. 그의 아버지는 '어이, 백수'라고, 되레 먼저 농을 던지며 아들의 걱정을 씻어주려 했다. 김씨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비정규직 해고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이정렬(48) 대변인도 함께 했다.

김씨와 이 대변인은 군산공장 근무 당시 같은 인력업체 소속 동료였다. 둘은 자동차 조립의 의장 파트 업무를 맡았다. 여기서 의장이라는 것은 차량 안쪽에 전기 배선이나 에어백, 플라스틱 류를 조립하는 일을 말한다. 올해로 14년 차인 이 대변인은 1996년 대우자동차의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잠시 공장을 떠났다가, 2006년에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한국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회사가 아닌, 언론을 통해 알았다. 당시에 대한 김씨의 심경이다. 

"해고 통보 받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

"(2월) 8일 즈음 전체 공장에서 차를 다 빼면서 '폐쇄다' '아니다, 신차가 들어오려고 준비 중이다'로 2가지 소문이 돌았다. (2월 13일) 뉴스를 보고 알았는데, 명절 이틀 전이다 보니 놀라고 충격도 많이 받았다. 26일에는 정말 더 큰 충격이었다. 매체로만 보던 문자 해고가 나한테 오다니. 그때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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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장 폐쇄 발표 후 해고 통지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정렬 한국지엠 군산공장 해고 비정규직 비상대책위원회 대변인과 해고 통지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씨. ⓒ 최은주


해고 통지는 지난달 26일에 전달됐다. 13일 공장 폐쇄 발표 이후 한국지엠도, 인력업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약 2주 만에 소속 회사와의 협의가 진행됐고, 사 측은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김씨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 먹여 살려야 하는데,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당장 다음달부터 일하지 말라고 해서 좀 울컥했었다"라고 말했다.


김씨도 한 달 근무일수가 점차 줄어들고,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했다. "내가, 설마 (해고) 당할까. 그래도 대기업인데"라며 "세계적인 기업인데 어떻게 쉽게 철수한다고 하고 바로 나가겠어, 하는 생각이 강했다"라고 회사에 남은 이유를 밝혔다. 이 대변인 또한 "시기가 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는데 군산이 자동차 생산에 특화된 지역이다 보니 대체 직업을 찾기가 어려워 쉽게 일을 그만두지 못 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장 폐쇄 발표 이후 한 달, 해고 통지 이후 2주가 지났지만 김씨는 아직도 가끔 멍하니 있는 일이 잦다. 그의 말을 옮겨봤다.

"처음에는 너무 막막해서 뭘 해야 하나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주부 우울증이 왜 생기는지 알 것 같더라. 그래도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을 확인하고, 내가 뭘 좋아 했는지 찾아보는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집에서 여전히 자주 멍하니 있다."

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김씨는 "학원도 보내주고, 학습지라든가 뭐 해주고 싶은데, 그게 많이 줄어들게 된다. 애들 옷도 사주고 싶은데, 통장에 당장 몇 십만 원도 없다"고 힘들어했다. 올해 11살인 큰 딸아이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그는, "아빠 지금 돈 없어 다음에 사줄게"라며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도 태권도 학원 등록을 해주고 싶지만, 마음만 굴뚝 같을 뿐이다.

공장 폐쇄에 이어 해고 소식까지, 아내가 받은 충격도 적지 않았다. 우선 군산을 벗어나자고 할 정도였다. 김씨도 사태 초기에는 타 지역으로 떠나겠다는 마음이 90% 였다. 하지만 주거비용이 너무 부담됐다. 그의 가족은 서울에서 반지하에 살던 전세가격으로 현재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반지하 집은 곰팡이가 골칫거리였고, 마음껏 뛰어놀 공간도 없었다.

그는 "애들 더 풍족하게 살게 해주려고, 저도 그 친구도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하는데, 앞으로는 그게 더 쪼들리게 되는 거다"라고 걱정했다. 현재 아내는 간호대학에 다니고 있다. 3년 전까지는 맞벌이 부부였지만, 아이들을 위해 아내가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까지는 앞으로 2년 더 남았고, 학비는 근로장학금과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학비 질문에 김씨는 감정을 추스르느라 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착하게 일만 했는데... 쌍용차 정말 힘들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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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공장 정상화 촉구 플래카드. 전북 군산시의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에 군산공장 정상화 촉구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최은주


전직을 위한 자격증, 학원 교육은 김씨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다. 김씨는 "주변에서 노니 뭐하나 대형 면허라도 따라 그러더라. 그런데 솔직히 돈이 드는 일 아닌가"라며 "생활비 관리는 거의 제가 하는데, 학원가면 40만~50만 원씩 든다. 당장 학원비에 투자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름 목표가 있었다. 아내의 학교 졸업까지만 참고, 이후에는 맞벌이를 하니 월급이 줄더라도 특성에 맞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꾹 참고 일했다. 김씨는 "비정규직은 한국지엠이 잘나갈 때 정규직 발탁이라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 힘들어도 힘들다, 아파도 아프다 말을 못한다. 그래서 비정규직은 참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한번은 식중독 걸렸을 때 근태 관리를 위해 회사에 나왔다. 잠깐 부탁하고 화장실 갔다 오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꿈마저 없어졌다"고 한탄했다. 이어 김씨는 힘든 심경과 현재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착하게만 살면 바보가 된다. 정말 착하게 일만 했는데, 노조 만든 것도 아니고, 일만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착하게 살면 바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까 아기 엄마가 쌍용차 사태를 얘기하더라. 그때는 이쪽 업계에 있지 않아서 왜 그랬을까 했는데, 제가 그 상황이 돼 보니까 알겠더라.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김씨를 비롯해 이 대변인, 정현철 위원장 등 130여 명에 달하는 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대위 활동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이 대변인은 "여기서 한두 달 생계가 급하다고 해서 직업을 구하면 그 직장도 불안한 자리다"라며 "실업 프로그램으로는 최장 6개월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에는 기간이 짧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전북도청과 군산시청, 한국고용정보원에 안정적인 고용을 위해 장기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군산공장 폐쇄 #한국지엠 #제네럴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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