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을 넘어 '혼밥살림'으로

[시골에서 만화읽기] 오즈 마리코 <혼밥 한 달 생존기> 기본편

등록 2018.03.20 13:55수정 2018.03.2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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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포근한 단호박의 달콤한 맛에 밥이 술술!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할머니를 찾아뵀을 때 '마리코도 이 맛을 아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셔서, 집밥을 만들어 먹으며 비로소 감사의 마음을 깨달았어요.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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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숨쉬는책공장


혼자 먹어도 밥이고 함께 먹어도 밥입니다. 여럿이 둘러앉아서 먹으면 여러 사람이 곁에 있구나 하고 느끼고, 혼자 밥상맡에 앉아서 먹으면 비록 사람은 나 하나라 하더라도, 내 한끼에 깃든 먹을거리를 지은 손길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일터나 골짜기에서 홀로 한끼를 잇는다면, 이때에도 나를 둘러싼 뭇사람 손길이라든지 마음을 가만히 느껴 볼 만해요. 여럿이 둘러앉아 먹기에 이야기를 하는 밥차림이라면, 혼자 조용히 먹기에 나를 둘러싼 삶을 되새기는 밥살림이지 싶습니다.

"가계 운용과 절약에 대한 책도 다양하게 읽고 몇 가지 규칙을 정했습니다. 예산은 만 원권이 관리하기 쉽다. 매월 1일에 일반 식비용 10만 원을 만 원권 10장으로 찾아온다. 외식비는 별도로 10만 원. 일주일마다 2만 원씩 클립으로 집어 둔다. 일주일 동안 쓸 2만 원만 지갑에 넣어 둔다! 일주일간 사용할 식비가 한눈에 보여서 계획을 짜기 수월해요!" (50쪽)
"예산을 정한 탓에 생활이 빡빡해지는 건 싫은데, 하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전보다 자취 생활을 느긋하게 즐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한 달 총식비 20만 원 생활, 예상보다 즐겁답니다!"(53쪽)


<혼밥 한 달 생존기, 기본편>(오즈 마리코/김혜선 옮김, 숨쉬는책공장, 2018)은 한국말로 '생존기'로 옮겼습니다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살림한다'는 뜻이 걸맞으리라 느낍니다.

지은이 스스로 '이렇게 아무렇게나 먹으며 살면 안 되겠다'고 여기면서 '혼자 밥을 차려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가 흘러요. 돈을 아끼는 길도 좋지만, 이보다는 지은이 스스로 제 몸을 아끼면서 즐거이 돌보는 길을 걷고 싶은 줄거리라고 할 만합니다.

다달이 한국돈으로 10만 원쯤으로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다달이 10만 원쯤은 홀가분하게 바깥밥을 사다 먹기로 꾀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만큼으로 될까 걱정스러웠다지만, 정작 한 달 두 달 지내면서 이레에 2만 원씩 다달이 10만 원으로 잡은 '집밥 살림돈'은 넉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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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숨쉬는책공장


"시판 드레싱은 듬뿍 끼얹게 되어서 칼로리가 걱정되어요. 게다가 꼭 조금씩 남아서 몇 종류씩 이렇게 유통 기한을 넘기게 되죠. 병에 담겨 있어서 버릴 때도 품이 들고요. 간단하게 샐러드를 먹고 싶을 뿐이건만! 그래! 직접 만들어 보자!" (80쪽)
"자르고, 굽고, 간 보고, 30분 만에 완성! 뚝딱뚝딱 요리하고 나면 엄청난 성취감이!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단시간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자신을 위한 요리는 어느새 제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85쪽)


지난날에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밥살림을 고스란히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밥살림을 물려받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여덟 살 즈음부터 학교에 들면, 학교 다니기에 바빠서 작은 집안일 하나 거들기도 쉽지 않거든요. 중학교나 고등학교쯤 다니고 보면 입시공부에 지쳐서 어버이가 맡는 밥살림을 함께할 틈을 못 내기 일쑤예요.

<혼밥 한 달 생존기>에 지은이 이야기로 잘 나옵니다만, 어릴 적부터 대학교에 들기까지, 또 대학교를 마친 뒤로도, 우리는 저마다 너무 바쁘거나 바깥일에 매인 나머지 밥살림을 어버이한테서 배우자는 생각을 못 하곤 해요. 이러면서 막 먹는 길로 접어들어요.

이 만화책 지은이는 '이래서는 살아남지 못하겠다'고 여겨 '혼살림' 이야기를 '살아남기(생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 놓치고 사는 줄 스스로 느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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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그림 ⓒ 숨쉬는책공장


지난해 4월, 일 때문에 바빴을 때, 여기까지 해치우고 나면 셀프 포상으로 근사한 디저트를 먹으러 갈 거야! …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을 정해 놓으면 일할 맛이 납니다. (119쪽)


즐겁게 혼살림을 가꾸면서 혼밥을 먹다가, 때때로 즐겁게 바깥밥을 스스로 선물한다고 합니다. 이른바 엿새쯤 신나게 혼밥을 지어서 먹고, 하루쯤 바깥밥을 누린다고 할까요. 지은이는 지난날 딱히 살림표를 마련하지 않고 살 적에는 날마다 바깥밥을 먹어도 속이 메스껍고 몸은 고단했다는데, 혼밥살림을 지으면서 '스스로 선물하듯 바깥밥을 누리는' 이즈음 몸이 무척 튼튼하게 달라졌을 뿐 아니라 더 기운이 나서 일이 잘 된다고 해요.

혼밥일 수도 있으나 집밥일 수 있어요. 혼밥이라는 이름이지만 혼살림이기도 해요. 밥으로 짓는 살림길을 걸어가면서 새삼스레 느끼는 맛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맛투정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제는 그 어릴 적 누린 맛이 얼마나 기쁘며 고마운가를 시나브로 느낀다고 합니다.

'혼밥'이라는 말에 '혼밥살림'처럼 한 마디를 덧달아 봅니다. '혼밥짓기'나 '혼밥살림짓기'처럼 새로운 말도 덧달아 봅니다. 고작 말 한 마디 덧달 뿐이지만, 느낌부터 다르고 우리 하루도 새로울 수 있으리라 여겨요.
덧붙이는 글 <혼밥 한 달 생존기, 기본편>(오즈 마리코 / 김혜선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18.2.12.)

20만 원으로 즐기는 혼밥 한 달 생존기 - 기본편

오즈 마리코 지음, 김혜선 옮김,
숨쉬는책공장, 2018


#혼밥 한 달 생존기 #오즈 마리코 #혼밥 #만화책 #밥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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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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