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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한복판에서 책 읽던 법대생, 지금 행복하니?

[리뷰] 영화 <1987>과 나의 1987년

18.03.20 11:51최종업데이트18.03.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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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 CJ 엔터테인먼트


뒤늦게 영화 < 1987>을 보았다.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솔직히 영화가 잘 만들어 졌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마치 책이 영화화 되어서 나올 때 그 감동이 책을 읽었을 때 만큼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하물며 내가 그 지나간 역사 속에 있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었을 때 보다 더 구체적인 현장감으로 인해 객관화된 순수 관객이 되지 못한다. 자꾸 스스로 영화 속에 다큐멘터리 출연자로 등장하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영화에 대한 혹평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987년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에 의해 사망한 서울대생 박종철군 사건이 이야기의 뼈대이다."'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는 결코 웃지 못할 유행어를 남겼던 그 사건. 이것을 은폐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드러내려던 세력간의 밀고 밀리는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결국은 모든 사실이 알려지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힘으로 군부정권의 종언이 시작되게 된다.

달동네 구멍가게집 딸 연희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으로 던져진다. 민주화 운동을 암암리에 돕는 외삼촌의 부탁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지못해 들어주는 평범한 대학교 1학년생이다. 그러다가 그 폭력의 시대에 온몸으로 항거하던 연세대생 이한열의 죽음을 접한 그녀는 스스로 방관자이고자 했던 모습을 버리고  버스 위에 올라가 팔을 휘두르며 집회를 주도하는 열혈 운동권 학생이 된다. 그녀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80년대를 대표하는 운동가요 '그날이 오면'이 잔잔하게 흐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에 나오지는 않지만 동 시대에 실재했던  또 다른 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같은 학교를 다녔던 남학생이라는 것밖에 없으니 편하게 이름을 '보성'이라고 불러 보겠다. 연희가 비록 허구지만 그런 시대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인물 설정이라면, '보성'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스레 살았던 실존 인물의 가명이다.

영화속에서도 나오지만 8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광주'였다. 모든 이슈가 광주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귀착되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현재 진행형인 채로 있지만, 80년대가 더욱 광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광주의 저항을 폭력으로 누르고 권력을 찬탈한 자들이 친구끼리 주거니 받거니 권력을 농단하며 광주에 대한 진실을 틀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는 학생들에게 호기심으로 떨림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는 금단의 열매요, 금기의 언어였다.

그 민감한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했던 대학 캠퍼스는 병영이었다.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학교 곳곳에 배치되어 학생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뭔가 특이한 정황이 잡히면 바로 수갑 채워 검거하는 그런 폭압의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던  그 때의 대학생들을 모두 운동권이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최소한 '심정적 동조자'로 그 시대를 함께 호흡했다. 그때문에 그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소위 '넥타이부대'라는 이름으로1987년의 현장에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날도 수천명의 학생들이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벌였으나, 페퍼포그 장갑차를 앞세운 진압경찰의 위세에 눌려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친구 몇명과 도서관 안으로 피신을 했다. 그런데 경찰은 작심이라도 한듯 페퍼포그차를 도서관 입구에 까지 몰고와 최루탄을 끝도 없이 쏟아 부었다.

그 때 그 자욱한 최루탄 연기속에서 나와 내 친구들이 목격한 것은 도서관 창가 책상에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보성'이었다. 최루탄 연기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들 빠져 나온 도서관 열람실에는 그 친구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최루탄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뛰어든 우리의 시선을 바로 빼앗아 버렸다. 그는 손수건으로 코를 감싸 쥔 채 책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뜻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얼어붙었다.

그날 저녁 학교 근처 선술집에서 다시 모인 우리들 사이에는 낮에 목격했던 그  장면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아마도 법대생인가 보다. 책이 두꺼운 법서였고 사시공부를 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동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채 자신의 출세와 영달에만 관심있는 친구가 법관이 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그러니 그런 이기적인 친구가 시험점수만 좋으면 판사나 검사가 되는 이런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  대체적으로 '보성'이에 대해 비판적인  방향으로 결론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이런 의견을 낸 친구도 있었다. "얼마나 자신의 일에 충실 한거냐. 그 집중력, 그 흔들리지 않음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이 소수의견은 좌중의 분노에 떠밀려 더 이상 힘을 쓰지도 못했지만, 어떤 주장을 폈든 상관 없이 우리 모두가 만장일치로 인정한 것은 그 친구는 분명히 사법시험에 합격할 거라는 강한 예측이었다. 그의 마음 속에 동시대의 아픔 같은 것이 내재해 있든 없든 상관 없이 말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요?"
민주화 인사의 뒤를 돕는 삼촌에게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서는 학교 선배 이한열에게 가상의 인물 연희가 던졌던 뼈아픈 질문이다. 우리도 이십대 때 이런 질문에 끊임없이 노출됐다. '바위에 계란치기'라며 자기 앞길이나 잘 개척하라는 어른들의 충고에 우리가 주문처럼 했던 대답은 "계란으로 바위를 계속치면 그 바위는 '계란바위'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깨져 부서질 수밖에 없는 계란의 운명을 그냥 앉아서 인정할수 없어서 만들어낸, 허약하기 그지없는, 억지논리 같은 거였지만, 그때는 그나마 그 대답이 최선이었다.

아마도 실제인물 '보성'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헛수고보다는 먼저 바위가 되어 바위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보다 현실적인 신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넘어 수천만의 촛불이 1987년의 함성을 이어 또 다른 변혁의 역사를 쓰고 있는 지금,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 확실한 '보성'은 그간 무엇을 해 왔고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 진다. 바라건대, 그가 그의 신념처럼 성숙한 한국사회를 위해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멋진 길을 가기를 진정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만약 앞으로 30년이 지난 후  <2017>이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이민자로 2017년을 지켜본 나는 좀 더 객관화된 관객이 되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1987 캐나다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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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김태완입니다. 이곳에 이민와서 산지 11년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이민자로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그때그때 메모하고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새로운 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자기 모국에서도 이민자입니다. 그래서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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