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걷다가 만난 '진짜 순례자'

[미련 없이, 그곳! 산티아고 순례길 10] 벨로라도~아타푸에르카

등록 2018.04.02 10:15수정 2018.04.0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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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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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후안 쉼터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발 담그고 있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 차노휘


벨로라도(Belorado) 알베르게 주인장 요리 솜씨는 뛰어났다. 분위기도 컨트리 음악을 듣기에 적합할 듯한 체크무늬 소파, 그 위에 비스듬하게 놓인 기타, LP판들과 아기자기한 장신구 등 가정집처럼 포근했다. 허스키한 음성의 여자 주인은 훤칠한 키에 빨간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같은 색 립스틱, 매니큐어를 칠했다. 간간이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웠다. 주방을 담당하는 남자 주인은 흡사 랭보를 떠올리게 했다. 왜소한 체격이지만 큰 키, 긴 갈색 곱슬머리와 섬세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하얀 털 강아지는 주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내 주방 입구에 앉아있었다.


이곳은 공립 알베르게지만 사설 알베르게보다 3유로 비싸다. 침대 값이 8유로, 9유로를 더 내면 풀코스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 메인 요리만 주문하면 5유로다. 분위기가 좋아서 나는 풀코스 요리를 주문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 테이블에 앉은 순례자들은 다음 날 걷게 될 구간을 이야기했다. 다들 산을 올라야하니 힘들 거라고 했다. 나는 음식이 맛있어서 아무리 힘든 산이라도 끄덕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벨로라도(800m)를 벗어나면 1000m가 넘는 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 한다. 봉우리를 넘어 다음 봉우리로 이어지는 계곡마다 강이 흘렀다. 숲은 오크나무와 소나무가 주를 이루었다. 교통이 발달하기 이전, 순례자들은 산세가 험한 이곳을 지날 때면 목숨까지 담보해야 했다. 도둑들이 많았다.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산길이 좋다. 그늘진 흙길을 걸을 수 있어서다. 흙길을 지나면 돌멩이가 많은 길도 나왔지만 군데군데 나무 장식물을 보는 즐거움도 컸다. 

숲길을 걸으면서 인상적인 순례자 두 팀을 봤다. 첫째는 배낭을 수레에 끌고 가는 나이 든 순례자였다. 이곳에 오기 전, 산티아고에 관한 책에서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작가는 끌고 갈 바에야 짊어지고 가는 게 낫겠다, 라고 말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둘째는 프랑스 노부부였다. 빨간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고 생기 가득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걸었다. 영원한 청춘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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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새벽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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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서서히 터오르고 ⓒ 차노휘


산을 내려가면 산 후안 오르테가(ST. Juan de Ortega)가 나온다. 벨로라도에서 24km 지점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묵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뭐랄까, 속세를 벗어난 기분에 휩싸였다. 식수대 옆 물통에 발을 담근 순례자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와서였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순례자지만 순례자들은 으레 저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을 몽땅 안고 있다고나 할까. 그처럼 발을 넣고 쉬고 싶었지만 순례길을 완주하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물집 터진 살갗에 염증이 생길까 싶어서였다.

모퉁이를 살짝 돌면 순례길의 전통적인 풍경과 마주친다. 한적한 위치도 그렇지만 오래 된 건물들이 수도원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성당 옆에 알베르게가 있고 그 앞에 바(Bar)가 있다. 바에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음료수 등을 마시면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비명을 질러대는 발가락 때문에 이곳 알베르게에 머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잠시 머문 바에서 익숙한 몇 명의 순례자를 만나버렸다. 연석과 데이비드. 데이비는 나바레떼(7일째)에서 묵었을 때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생이다. 다들 피곤해서 요리하기를 귀찮아할 때 그는 혼자서 꼼꼼하게 장을 봤고 주방에서 파스타를 요리했다. 후식으로 사온 멜론까지 맛있게 먹었다.

더위와 피곤에 절여 있는 우리는 시원한 맥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능숙한 제안자 맥스가 한참 떠들고 있는 우리에게 6km만 더 가자, 라고 말했다. 산을 내려왔으니 평탄한 길만 걸으면 된다고 했다. 맥주로 에너지를 보충한 우리는 좀 더 걷기 위해 일어섰다. 2시 전에는 도착할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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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후안 오르테가 Bar에서(시계 방향으로 맥스, 연석, 데이비드, 노휘. 탁자 아래를 자세히 보면 다들 신발을 벗고 있다) ⓒ 차노휘


그렇게 해서 그날 밤 아타푸에르카(Atapuerca) 알베르게에서 머물 수 있었다. 아타푸에르카는 완주할 동안 묵었던 알베르게 중에서 제일 초라한 편에 속했다. 사설 알베르게만 있는 동네였다. 우리는 똑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두 군데에서 선택해야 했다. 일층이 식당인 건물에 2층부터 알베르게가 있었다. 시설이 좋지만 비쌌다. 건물 옆에, 예전에 곡물 창고였을 공간에 침대 스무 개를 넣고 샤워실과 휴게실을 만든 곳은 침대 당 5유로였다. 우리는 5유로 침대를 선택했다. 부엌도 없고 샤워실 문도 잘 닫히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우리도, 새로 도착한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도 짜증내기 보다는 실컷 웃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샤워하고 오늘 입었던 옷을 세탁하는 게 우선이다. 손빨래다. 세탁기를 사용할 때마다 3유로나 3.5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야외에 마련된 빨랫줄에 말리면 햇살이 좋아서 금방 마른다. 어두워지기 전에 걷어야 한다. 이슬 때문이다.

샤워하고 빨래를 끝내 놓으면 저녁 식사시간까지 자유시간이다. 몇은 동네 구경(너무 더워서 저녁 식사 후에 하는 사람이 많다)이나 낮잠을 잤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하루 일과를 기록했다. 내일 어떤 곳을 갈 것인지, 가지고 온 책을 읽기도 했다.

온전히 나를 점검할 수 있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왼쪽 새끼발가락 걱정만 없으면 말이다. 걷기 시작할 때만 불편하지 한 시간이 지나면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잠깐 쉴 때면 일부러 살피지 않으려고도 했다. 눈으로 보면 아무래도 다시 걸을 때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어제는 40km, 오늘은 30km를 넘게 걸었다.

샤워하려고 양말을 벗었더니 발가락 모양새가 징그러울 정도로 심각했다. 새끼발가락 중간 즈음이 물집이 퉁퉁 불어 이틀 전에 찢어졌다. 이번에는 새끼발톱이 빠져 있었다(걷는 동안 발톱 네 개가 빠졌다). 그곳에 밴드를 붙이고 걸어선지 찢어진 피부가 점점 위로 올라가서 발톱이 있어야할 곳에서 멈췄다. 빠진 발톱은 피부와 함께 뒤로 젖혀졌다. 꼭 긴 털모자를 민머리에 걸친 꼴이 됐다. 새끼발가락 절반은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다른 발 군데군데 물집이 잡힌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발을 야외 의자에 걸치고는 뜨거운 태양에 소독했다. 두 손은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며 하루 일을 메모해나갔다. 메모하면서 다시 이상한 꼴 발가락을 봤다. 메모를 했다. 또 봤다. 반복 작용을 하면서 나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저 녀석은 아프다고 투정부리지 않지? 이미 내 발가락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또 이렇게 중얼거렸다. '설마, 내가 사디스트?'

수다의 힘

걷다보면 새로운 공간과 사람을 끊임없이 만난다. 공간 안의 사람은 늘 사건을 동반한다. 큰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 속의 소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함이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다. 새로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내가 다른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관심은 애정이다.

초라한 알베르게 아타푸에르카는 앞서 말했듯이 완주할 동안 묵었던 알베르게 중에서 제일 초라했다. 하지만 제일 정겨운 곳이 되었다. 목가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힘이 컸다. 마음이 맞았다.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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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헤스에 있는 농가 ⓒ 차노휘


주방이 없어서 우리 넷은 알베르게에 딸린 식당에 각자 10유로를 지불하고 저녁 식사를 예약했다. 저녁 식사자리에서 순례자 뒷담(?)에 먼저 운을 뗀 사람은 연석이었다. 연석은 나와 맥스를 바라보며 아소프라(8일째)에서 묵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기억나지? 나와 함께 방을 사용했던 순례자?"

아소프라는 내 발 때문에 둘의 발걸음이 묶였던, 한 방에 침대 두 개만 있어서 머쓱했던 곳이다. 연석 맞은편 침대가 오후 늦게까지 비어 있었다. 뒤늦게 침대 주인이 나타났다. 연석은 흥분해서 내게 말했다. "진짜 순례자가 나타났어. 진짜 순례자."

진짜 순례자와 가짜 순례자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호기심에 자세히 설명해주라고 했다. 연석은 그의 외모부터 말해주었다. 가톨릭 사제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나이는 오십대 중반에 카리스마가 있는 청렴한 신부. 그가 휴게실에 나타났을 때 연석은 저 사람이야, 라고 내게 속삭였다. 나도 그만 연석처럼 흥분하고 말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진짜 순례자다."

<순례자>를 쓴 파울로 코엘료 프로필 사진과 겹쳐졌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의 아우라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그는 휴게실에 앉아서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그 순간 그가 휴게실의 중심점이 되었다. 모든 흐름이 그를 중심으로 회전했다. 나는 연석에게 그를 '코엘료'로 부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래서 말이야. 그날, 코엘료가 장 보면서 포도주 고르는 것을 봤거든.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야. 이것 집어서 물어보고 저것 집어서 주인에게 물어보고. 또 뭔가를 사야하나 봐. 채소 가게를 물어보더니 그곳으로 가더라구. 그리고 그날 저녁, 요리를 하는데(나는 일찍 잤다), 와우, 아주 거창하게 하는 거야. 닭요리가 주된 메뉴였어. 오랫동안 삶았어. 닭도 두 마리였어. 혼자 먹기에는 양이 엄청 많았어. 식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 크게 함께 먹자고 하더니 아주 멋지게 포도주 코르크 마개를 따는 거야. 포도주와 닭고기는 좋은 궁합이었지.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떠들면서 음식을 나눠먹더라고. 그런데 그 밤, 나는 거의 잠을 못 잤어. 왠지 아니?"

연석은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찌나, 코를 크게 골던지..."

모두들, 웃기 시작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날 밤 코 골음을 벽 너머에서 들었다. 바깥 풀장 물 교체하는 소리와 섞였지만 분명하고 또렷했다. 그렇게 말 걸고 싶었던 파울로 코엘료가 술 취해서 드르렁거리며 코고는 모습을 상상하니, 여느 순례자와 다를 바 없었다. 정겹기까지 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휴게실로 갔을 때 그도 그곳에 있었다. 길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닌 듯했다. 배낭이 없었다.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는 것이 습관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그는 걷는 것을 즐기라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한참 웃고 떠들고 있을 때 식당으로 또 다른 예약손님들이 들어왔다. 그들과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 중에 액션 영화에서나 볼 듯한, 근육질 몸매에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가 있었다. 내가 샤워하고 머리카락를 말리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내게 아는 척을 했다. 나를 며칠 전에 봤다고 했다. 나는 그가 초면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명을 더 요구하자, 그는 내가 요리 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걷기 시작한 셋째 날에 머물렀던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볶음밥을 했을 때인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을 위한 상차림을 다들 부러워했다고 했다. 내게는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는 그 식탁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내일이 '진짜' 생일이라며 아이디카드까지 꺼내서 보여주던 데이비드가 심각하게 고개를 안쪽으로 들이대며 금방 들어온 꽁지머리 남자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낮게 말했다. "이탈리아 마피아 같지 않니?"

우리는 식탁을 치며 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남자도 코를 심하게 고는 코엘료처럼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겼다(마피아라고 놀렸던 그는 이탈리아 출신 프란체스코였다. 나는 그에게 다음날 신세를 진다). 닭고기 요리에 포도주를 마시면서 한참 떠들던 우리는 그날 하루 피로를 수다로 풀고 있었다. 수다의 힘이었다. 수다는 세계 각국의 공통 피로회복제였던 셈이다. 발이 아픈지도 그동안 음식이 맞지 않아서 거의 굶다시피 한 것도 잊을 수 있었다.

서서히 밤이 기울었고 창고를 개조해 알베르게를 만든 듯한 숙소 위에도 별이 하나둘 떴다. 그리고 나는 어둠에 휩싸인 풍경을 보면서 진짜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 한 구절을 건져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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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푸에르카 알베르게가 있는 풍경(한쪽에서는 빨래를 널고 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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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푸에르카 알베르게가 있는 밤풍경 ⓒ 차노휘


주위의 모든 것은, 불안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평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는 여전히 계속 자라나고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세상은 알고 있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격렬한 지진이나 태풍과 폭우 역시 자연의 여정 중에 있는 순환이라는 것을. 자연 역시 계시를 찾아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문학동네, p. 51~52
덧붙이는 글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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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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