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정말 '과학 대통령'이었을까

[서평] 김근배 외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

등록 2018.03.23 08:30수정 2018.03.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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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대통령'은 박정희를 상징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비단 그를 그리워하는 지지자 혹은 정치인의 머릿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의 과학계 내부에서도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짙게 남아있다. 지난 2016년 3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본관에 박정희 동상이 세워진 것이 이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사실 박정희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적 담론에 대한 도전들은 이미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경제 발전에 대한 논의조차도 박정희 시대를 극복한 새로운 시야와 해석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과학'의 '부흥자'로서의 박정희에 대한 담론에는 썩 효과적인 반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본 저서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여 엮어낸 책이다. 구시대와의 단절을 선언한 진보, 개혁 정권들조차도 과학 문제를 다룰 때에는 박정희 시대 통용되었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며, 우리 과학 발전사의 구석 구석을 주제별로 찬찬히 훑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한국 과학 발전사의 본 모습을 조명하고자 노력한다.

'과학'이라는 단어의 다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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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김태호 엮음 김근배 외 지음, 2018.02. ⓒ 역사비평사


우리가 '박정희=과학 대통령'이라는 등식을 손쉽게 떠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본격화된 과학 제도 및 연구기관의 정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급격한 기술 발전을 이루었던 인물로서 박정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가파른 산업화를 이끈 대통령이기에 자연스레 과학 발전 주체의 이미지도 덧씌우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박정희가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현대의 우리들이 생각하는 순수과학과는 매우 동떨어진 이미지로서의 '과학'이었다. 이는 실제로 과학이라는 용어가 어디서 사용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 되었는지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김태호 교수의 글에 따르면 박정희 시대 내내 이루어진 주요 사업 중 하나가 농촌의 근대화였다. 일차적으로는 열악한 생산량 자체를 증대시키고, 이후로는 생산 환경 또한 효율적으로 개편하는 것을 추진해 나갔다. 그런데 이때 사용된 문구가 바로 '영농의 과학화'였다. 구체적으로 과학화의 방안으로 제시된 것들은 통일벼 재배나 집단 경작 등이었다.


한편 정부 주도의 주요 선전 기획 중 하나로 박정희 정권은 '기능올림픽'에 대한 출전을 강조하였다. 김태호 교수는 발전된 국가상과 기술력을 국내외에 알리고자 하는 목적 하에 김종필 주도로 기능 올림픽에 대한 적극적 참가가 권장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기술자를 널리 양성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게 배어 있었다.

이처럼 박정희 시대 '과학'은 현실의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하는 수단들에 일률적으로 동원되는 수사였다. 농촌에, 기능공에 '과학'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는 것은 분명 순수한 과학의 본래 의미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기한 두 경우를 제외하고도 국토의 종합개발(이주영), 생태환경 개선(김근배) 등 여러 분야에서 같은 수사법이 동원되었다.

이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근대화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그어지지 않은 시대에 일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학'이라는 단어를 그 자체의 의미로 사용하기 보다 효과적인 정책 수행 혹은 반대 여론 넘어서기를 위한 수단으로서 내세운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파악된다.

1인 영웅주의 이면의 노력들

물론 박정희 시대에 순수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탄탄하게 마련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오늘날까지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KIST, 대덕연구단지, 그리고 과학기술청 등이 정부의 후원을 받아 세워지고 번영하였다.

그런데 임재윤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정책적 결단들이 박정희 개인의 온전한 판단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 역시 취임 초기에는 과학계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나 신뢰를 지니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 정부 측이 과학 기술을 진흥하기 위한 기관 설립을 권유하고, 국내에서 과학자 집단들도 뭉쳐 정부의 신임을 얻어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들을 이어갔다. 그 결과 시간이 흘러 박정희 대통령 역시 점차 과학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띠며 각종 지원을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본 저서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최형섭을 비롯한 당대 과학 관료들의 역할이다. 이들은 직접 정부의 프로파겐다에 맞추어 과학을 테마로 새마을운동에 참여하는 등 친(親)정부적 활동을 이어갔고 그 덕에 대통령의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여기에 더해 그렇게 얻어진 기회를 허투루 날리지 않고 충분한 고민과 결단을 통해 KIST를 중심으로 하는, 차후 'KIST 모델'이라 까지 칭해진 한국형 과학기술 발전 방식을 정립하였다. 이는 비단 오늘날 뿐 아니라 박정희 집권 당시인 70년대에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 개도국들의 관심과 협력 요청의 대상이 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과학 기술의 구체적 발전 방안을 제시한 것은 그것이 산업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기를 촉구하는, 즉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연구기관, 정부기관 설계와 산업계와의 연계, 국민을 대상으로하 과학 운동 등은 모두 과학계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모든 과학계 발전의 공이 박정희 1인에게만 돌아간 것은 분명 과도한 영웅 만들기의 폐혜일 것이다. 어쩌면 불과 최근까지 살아있는 권력으로 군림했던 한 정치인의 존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박정희에 대한 향수와 신화가 약해졌을 때,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반드시 객관적인 검토가 한 번쯤 필요할 것이다. 박정희 개인의 공을 깎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온 '과학 발전'의 제대로 된 의미와 경계를 밝히고, 동시에 잊힌 공로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과학대통령 박정희’ 신화를 넘어 - 과학과 권력, 그리고 국가

김근배 외 지음, 김태호 엮음,
역사비평사, 2018


#서평 #북리뷰 #과학 #박정희 #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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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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